문재인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첫 대북인도적 지원을 의결했다. 규모도 800만 달러(약 94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미 정부는 2017년 9월에 같은 결정을 내리고도 실제 집행하진 않았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에 눈치를 보느라 의결을 하고도 정작 돈은 안보냈다는 평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대북제재 유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정부가 이번에는 미국을 의식하지 않고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통일부는 5일 제305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서면으로 개최하고 ’WFP(세계식량계획)‧UNICEF(유엔아동기금) 북한 영양지원‧모자보건 사업 남북협력기금 지원(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안건을 제안한 이유를 두고 통일부는 “최근 WFP‧FAO(유엔식량농업기구) 식량 조사 결과 발표, 북한의 국제기구 등에 대한 긴급 식량 원조 요청 등 북한 내 식량 사정 악화로 북한 취약계층 삶의 질 저하를 우려해 국제기구가 적극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는 WFP의 북한 영양지원 사업(450만달러)과, UNICEF의 북한 모자보건 사업(350만달러)에 남북협력기금 800만 달러를 무상 지원할 계획이다.

지원 항목은 △WFP 북한 영양지원사업의 경우 9개도 60개군 탁아소, 고아원, 소아병동 등의 영유아와 임산부‧수유부 대상 영양강화식품을 분배하고 △UNICEF 모자보건 및 영양사업은 아동, 임산부, 수유부 등 대상 치료식, 기초 필수의약품 키트, 미량영양소복합제 등을 제공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2년 전인 지난 2017년 9월에 내렸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교추협이 의결을 하고도 지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눈치를 보느라 인도적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통일부는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인도적 지원 사업은 처음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훨씬 이전에 같은 형식의 첫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과 접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과 접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의결을 해놓고도 집행 못한 이유가 미국 눈치를 봤기 때문이 아니냐는 질의에 통일부 담당사무관은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017년 의결 이후) 국제기구와 지속적으로 협의했으며,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추진한다는 입장에서 지원시점을 검토했으나 결국 집행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년 전 의결사항에 따라 집행하지 않고, 재의결 절차를 거친 이유를 두고 통일부는 국가재정법 48조2항에 따라 사업을 당해연도에 집행못할 경우 한해에 한해서만 이월할 수 있을 뿐 재이월은 되지 않기 때문에 지출원인행위인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교추협)를 다시 열어 ’재의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미국 눈치를 보다 실제 지원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통일부 관계자는 “최대한 조속히 집행하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답했다.

대북 식량지원 계획 시점을 두고 통일부 담당사무관은 “북한주민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하는 문제를 협의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 NSC는 5일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번 대북 인도적 지원 관련 논의를 했다. 청와대는 이날 “상임위원들이 북한 내 아동과 임산부에 대한 영양 및 의료 지원 사업을 위해 우리 정부가 WFP와 UNICEF에 800만 불을 지원하는 취지와 관련해 국민과 소통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NSC 상임위원들은 18차 아시아 안보회의(5.31~6.2, 싱가포르) 및 미일중 등 주요국들과의 국방장관회의에서 국방 분야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정착 달성을 위한 외교 노력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것을 평가하면서 안보협력을 더욱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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