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중앙 전원을 갑자기 내린다. 사람들이 고성을 지르고 욕을 한다. 게임이 이렇게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고 기자가 강조한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의 문제적 리포트다.

‘게임’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 코드로 지정하면서 셧다운제 논란, 4대 중독 논란에 이어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봐야 하는지 사회적 쟁점이 됐다. 게임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 2011년 MBC 뉴스데스크의 게임 폭력성 실험 보도.
▲ 2011년 MBC 뉴스데스크의 게임 폭력성 실험 보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07년 9월1일부터 2017년 9월30일까지 ‘게임’ ‘중독’ 등 키워드로 보도 646건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인 기사는 58.2%인 반면 긍정적인 기사는 8.8%에 그쳤다. 게임 관련 기사에 의료계 전문가는 12.2% 등장한 반면 게임산업 종사자는 4.3%에 그쳤다. 의료계 전문가는 게임에 부정적인 의견을 적극 피력했다. 연구 결과 학부모들은 게임에 관한 정보를 얻는 공간이 대부분 인터넷 서핑, 언론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친모 살해한 게임중독 20대에 징역 20년 선고”(2010년 7월 조선일보) “게임중독 중학생 어머니 살해뒤 자살”(2010년 11월 한겨레) “묻지마 살인 부른 게임중독”(2010년 12월 한겨레) “칼싸움 게임 중독된 명문대 중퇴생 갑자기 거리로 뛰쳐나와 행인 살해”(2012년 2월 조선일보) “게임중독 20대 여성, PC방서 낳은 아기 살해”(2012년 4월 동아일보) “폭력 게임중독 10대, 친척들에 살인 칼부림”(2013년 3월 동아일보) “굶어죽었다던 두 살배기 아들 게임중독 아빠의 손에 숨졌다”(2014년 4월 한겨레)

▲ 게임 중독을 범죄의 원인으로 묘사한 기사들.
▲ 게임 중독을 범죄의 원인으로 묘사한 기사들.

 

사건사고 기사에서 ‘게임’은 단골 소재다. “평소에도 공부는 소홀히 한 채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한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경찰이 ‘게임 중독’을 강조하면 언론이 받아 쓰는 식이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는 일방적 주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012년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 당시 피해자 어머니는 ‘게임중독자’로 언론에 묘사됐으나 집에 PC가 없어 종종 PC방을 다녔을 뿐 ‘게임중독자’는 아니었다. 2014년 게임중독 아버지가 자녀를 살해했다는 보도 당시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게임중독이 범죄를 일으키는, 또는 살인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게임 중독’ 문제를 적극적으로 쟁점화한 시기 언론은 ‘게임’을 ‘학습’의 대척점에 두고 ‘게임’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유해하다는 주장에 ‘확성기’ 역할을 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2012년 1~2월 동안 ‘게임 또 다른 마약’이라는 이름의 기획 기사를 20여건 냈는데 게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단적으로 부추기는 내용이 많았다. “인터넷 게임 중독 지능 떨어뜨린다” “유아에 게임기 주는 건 음식쓰레기 주는 셈” “게임중독 뇌, 마약중독처럼 변해... 폭력성 띠고 ADHD 위험” “어릴 때 중독된 뇌, 평생 게임기만 봐도 손 움직여” “게임좀비... 괴물처럼 변해가는 아이들” “게임중독 뇌... 관제탑이 테러범에 접수된 격” “어릴 때 게임 중독되면 커서 마약 도박에 잘 빠져” 등이다.

게임을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해로운 ‘원인’으로 지목하는 프레임은 사회적인 맥락을 빼놓는다는 점에서 문제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지난 4월 청소년 2000명을 추적 관찰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과몰입 상태인 청소년은 1.4%에 그쳤다. 정 교수는 “자기통제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이 과몰입 판단을 받았는데 자기통제 하락 원인은 학업과 관련한 과잉기대, 양육적 태도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게임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 조선일보의 게임 중독 기획기사.
▲ 조선일보의 게임 중독 기획기사.

 

다른 측면에서 언론은 ‘산업’적인 접근을 하며 게임계를 보호한다. 2010년 중앙일보의 “게임 과몰입 잡으려다 게임 산업 잡을라” 기사와 2019년 5월 조선일보의 “게임에 질병 낙인? 13조 게임업계 골병 든다” 기사는 ‘판박이’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한 것과 더불어 국내 게임산업이 팽창하면서 보수언론 경제지를 중심으로 ‘산업’ 프레임으로 보는 기사가 많아졌다.

이 같은 프레임에도 한계는 있다. ‘산업적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산업을 저해할 결과를 불러오는 비판 자체를 차단하는 역효과가 있고, 역으로 게임이 산업적으로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중독 우려’와 ‘산업 부흥’, 두 프레임 모두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화해 호명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게임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 따르면 국내외 게임 중독 연구 671편 가운데 게임 이름을 1개 이상 구체적으로 언급한 논문은 8%에 불과했다. 언론과 학계가 게임에 관심을 제대로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게임의 긍정적 측면도 있고 다른 요인에 의한 과몰입 등 부작용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언론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보도로 대립하는 내용을 다룬다. 게임 문화, 비평, 이론 등을 다룬 주요 언론의 제대로 된 보도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특히 요즘은 게임 자체에 대한 비평, 종사자 노동권, 젠더 문제 등 논의해야 할 이슈가 많은데 관련 논의는 10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한치도 앞으로 못 나가게 하는 데 언론이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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