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생명과학이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 주 성분을 허위제출해 허가 받은 혐의가 드러나면서 바이오산업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해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폐기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애먼 바이오산업계로 인보사 불똥이 튀어선 안 된다는 반발도 일고 있다.

식약처가 인보사 허가 취소를 발표한 지난달 2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인보사 성분이 바뀐 사실이 알려진 게 3월22일이자만 식약처는 9일이 지나 3월31일에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며 “9일을 지체시키고 식약처가 추진하고 있는 줄기세포·유전자치료 허가의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첨단재생의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도 이날 “식약처는 지난 4월에도 인보사 사태 재발방지책으로 인체세포 등 관리업을 신설해 세포 채취부터 처리·보관·공급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안전·품질관리기준을 마련하겠다며 오늘 발표와 똑같은 재발방지책을 말하고,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에 해당 규제를 신설한다고 한 바 있다”고 지적한 뒤 “인보사 사태를 이용해 첨단재생바이오의료법을 통과시키려는 꼼수를 버리지 않은 듯하다. 문재인 정부와 식약처는 첨단재생바이오의료법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첨단재생의료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지자 바이오업계 우려를 전하는 보도들도 이어졌다. 파이낸셜뉴스는 28일 “인보사 사태로 첨단재생의료법 통과가 어려워졌고 IPO기업들 기술성 평가에도 일정 부분 악영향을 미쳤다”며 “개별 기업 사건이 정부의 규제 강화나 산업 신뢰도 하락 등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업계 관계자 우려를 전했다. 한국경제는 30일 “2005년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 이후 국내 과학계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며 “인보사 사태가 황우석 사태로 비화돼선 안 된다”는 업계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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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4월7일 매일경제(인보사와 무관한데…첨단바이오법·DTC 확대 난망)는 “인보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유탄을 맞은 대표적 사례가 신약 시장 출시 시점을 기존보다 4년가량 확 당겨 바이오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첨단바이오법”이라며 “첨단바이오법 통과 무산에 대해 업계는 ‘황당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바이오업계 숙원인 첨단재생의료법은 인체세포 등을 이용한 세포치료·유전자치료 등을 의미하는 ‘첨단재생의료’의 임상연구 및 관리체계 구축과 관련한 내용이다. 재생의료 임상연구 활성화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신속처리 지원을 통해 희귀·난치질환자 치료기회를 확대하고, 첨단재생의료와 첨단바이오의약품 특성을 고려한 전주기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의됐다.

지난 2016년 김승희 새누리당 의원과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7년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지난해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서 발의된 법안들을 포괄하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초기 법안들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이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줄기세포 규제완화를 지시한 시점과 발의 시기가 비슷하다는 이유 등으로 ‘최순실 특혜법안’ 의혹을 받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법안을 ‘규제 개악법’으로 규정해 왔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줄기세포·유전자치료 허가규제를 완화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악법”으로 규정하며 “완화된 기준의 학술연구를 거친 의약품이 조건부 허가로 이어지는 규정도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기존에는 첨단바이오의약품 학술연구를 할 경우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와 임상시험계획승인절차(IND)를 거쳐야 했으나, 이 법은 ‘임상연구’ 규정을 만들어 고위험군을 제외하고는 심의위 통과 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반면 당정은 최첨단 바이오헬스 분야 육성 일환으로 첨단의료재생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고, 지난 3월 관련 법안이 3년 만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지는 못했다. 인보사 사태로 식약처 부실 허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4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연구대상자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이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음에도 그 대상자가 동의만 하면 임상시험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은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사위 법안2소위에 회부된 상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번 (인보사) 사태는 제대로 검증이 안 된 바이오 제약 분야에 대한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핵심 문제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첨단재생바이오법을 내세워 첨단 재생 바이오 분야의 허가신속등재와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완화 정책은 제2, 제3의 인보사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중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국회가 정상화될 경우 관련 법안 논의 방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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