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안에서 혹독한 자기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 위상에 걸맞은 신뢰를 쌓지 못했고 기존 이미지 때문에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을 받고 시청층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는데 객관적 평가를 통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최근 KBS경남이 만든 한편의 영상은 KBS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압축적으로 담겼다. “20대에게 KBS를 묻다”라는 컨셉으로 5명의 20대 청년에게 KBS 이미지와 시청 여부 등을 물었는데 돌아온 답변이 심상치 않다.

KBS 프로그램을 보느냐는 질문에 5명 청년 모두로부터 “최근엔 없다”, “1박 2일 방영할 때 이후로 본 기억이 없다” 등의 답이 나왔다. KBS 이미지에 대해서는 “진부한 방송”, “그냥 이제 유명한 지상파 3사 중 하나”, “굳이 KBS를 안 봐도 재밌는 방송사들이 많다”고 답했다. “창의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올바른 이미지”, “딱딱하다”, “긍정적 이미지는 아닌 것 같다. 방송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 같다”는 답변도 나왔다.

20대 청년들은 게임, 스포츠, 먹방 등 유튜브 채널을 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청년은 “박준형 나오는 와썹맨”을 본다고 했다. KBS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몰랐다”, “처음 들었다”, “스브스 뉴스랑 엠빅 뉴스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하는 언론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는 KBS를 답하는 청년도 있었지만 JTBC를 언급하는 청년이 많았다. 지상파 순위를 물어봤더니 한명 빼고는 MBC나 SBS에 뒤졌다. 개선점을 말해달라는 질문엔 “바라는 점이 딱히 없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과 경쟁사처럼 다른 시도를 많이 해보고 기존 이미지를 탈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KBS경남은 20대 청년 답변 중간에 ‘팩트폭행’, ‘무매력’, ‘케송합니다’라는 자막을 넣었다.

3분이 조금 넘는 짧은 클립 영상이지만 20대에게 KBS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KBS에 대한 인상 비평을 핵심적으로 포착했다는 평이다.

▲ KBS경남이 20대에게 KBS를 묻다라는 주제로 제작한 영상.
▲ KBS경남이 20대에게 KBS를 묻다라는 주제로 제작한 영상.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최근 펴낸 노보는 KBS 위기의식을 다각도로 진단하는 내용을 담아 구성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KBS는 광고와 콘텐츠 판매 수익이 떨어져 올해 4월까지 당기손익이 마이너스 68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4분기 광고 감소는 37%에 달했다. 이에 대해 KBS본부는 “KBS 콘텐츠의 경쟁력의 버팀목 가운데 하나인 9시뉴스의 시청률 하락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평균 12%까지 떨어진데 올해는 평균 11.2%까지 내려갔다. 주말 시청률이 10% 이하로 떨어진 건 오래됐다. 그나마 평일 시청률이 버티어주었지만 5월23일(목) 8.7% 등 최근엔 평일에도 종종 10% 이하로 주저앉는다. 마지노선이라 여겼던 10%가 무너진 것”이라며 현재 KBS 상황을 ‘일상의 위기를 넘어 위기의 일상화’라고 진단했다.

KBS본부는 특히 “누군가는 KBS뉴스가 정부여당을 비판하지 못하고 야당 권력에만 칼을 들이대니 불공정하다고, 그래서 시청자가 떠나가는 거라고 주장한다.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황당한 주장이니 그냥 무시 하자. 반박하기도 귀찮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시민들은 KBS에 묻고 있다. KBS는 여전히 기계적인 균형을 기준으로 보도하는 것 아니냐고? KBS는 혹시 자신들을 대단히 객관적인 저널리스트로 자부하며 모든 사안에 대해 냉소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관찰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냐고 묻고 있다. KBS가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KBS 만의 뉴스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방송사들이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을 내놓을 때 ‘전국노래자랑’, ‘6시 내고향’ 같은 대표적인 장수프로그램의 스테이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전사적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내놨다.

KBS본부는 사내 구성원간 충돌도 심각하다면서 “‘1박2일’ 관련 보도를 놓고 예능과 보도가 갈등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서로의 주장이 부딪히기 전 누구하나 예상하지도 못했고, 누구하나 조율하지도 못했다. 사후에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는 소식도 없다. 최근에는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아이템 선정을 두고 유사한 충돌이 또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고 전했다.

KBS본부는 외부의 객관적인 평가를 듣겠다며 블라인드 인터뷰도 진행했다. 전 현직 KBS 출입기자와 전직 방송기자를 모아놓고 인터뷰를 했는데 비판이 매섭다.

한 기자는 “보도 영역에서 보자면 SBS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온 느낌이고, MBC는 그나마 포장을 잘한다. SBS는 뉴스도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다음 꼭지를 보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KBS는 블록뉴스라곤 하지만 형식적으로 쪼갠 느낌이다”라고 하거나 다른 기자는 “청와대 김태우 수사관 보도를 KBS가 가장 먼저 했는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 그게 KBS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시청률, 광고 등 여러 지표상으로도 심각한 위기다. 왜 KBS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직면하지 꽤 됐다”고 했고, 다른 기자는 “8년 전 개국했을 때 비웃었던 종편을 보라. 과연 KBS가 종편보다 취재력, 방송능력 등에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나. 이 덩치에 그 정도 결과 밖에 못 보여 준다면 누가 공영방송을 인정하겠나. 가장 심각한 위기는 KBS 구성원들에게 이런 위기의식,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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