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획취재부 이진희·박소영 기자는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모두 4차례 걸쳐 ‘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기획기사를 냈다. 6개월 동안 20대 산업재해 통계를 구하고, 산재 유형을 분류하고, 사례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첫번째로 내놓은 기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고 김유리(가명‧당시 27세)씨는 지난 2017년 서울의 한 제조업 회사 서비스센터에서 고객 응대일을 하면서 직원 이재민(가명‧31세)씨와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씨가 버스정류장에서 불법 촬영을 하다 적발돼 경찰 조사를 받다 이씨의 휴대폰 안에서 김유리씨가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는 영상이 나왔다.

김씨는 충격을 받아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전신마비까지 와 응급실에 실려가 뇌출혈 진단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져 100일 뒤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불법촬영에 노출된 피해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김씨 죽음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놀라웠다.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 사회는 그의 죽음은 조명하지 않았다.

전북 김제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영양사 최인정(가명‧사망 당시 27세)씨 사연도 안타깝다. 출퇴근 기록에 따르면 최씨는 2015년 김제시 소재 고교에서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해왔다. 그리고 2017년 전북교육청에 급식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급식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은 오롯이 최씨의 몫이었다. 식단 수정을 해봤지만 학교 측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급식 불만은 해결되지 않았다. 최씨는 스트레스로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결국 사표를 냈지만 대체 영영사를 채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최씨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해 7월 자택 인근 아파트 뒷마당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씨의 언니는 전북교육청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담당자로부터 돌아온 말은 ‘어차피 돈 뜯어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였다. 언니는 학교를 찾아갔지만 학교 이사장과 교장은 최씨의 아버지 옆에 앉아 ‘빨리 (대체)인원 채용 공고를 내라’는 대화를 했다고 한다. 최씨는 산업재해로 인정받긴 했지만 억울한 죽음이 인정받기까지 가족은 모욕을 견뎌야 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부는 4차례 연재기사에서 모두 10꼭지의 기사를 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보고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분석 보고서, 근로복지공단 자료 등을 인용하고 사례를 발굴했다.

▲ 한국일보 '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기획기사.
▲ 한국일보 '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기획기사.

이진희 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2017~2018년 산업재해로 숨지거나 장애 진단을 받은 통계를 정보공개청구해 받았지만 개인정보에 해당되는 부분은 비공개라 간략하게라도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 자료를 달라고 해 추적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사건을 대리한 노무사 연락처를 파악해 접촉하거나 경찰 조사보고서를 입수해 사건 개요를 취재했다. 어렵게 접촉한 유족은 ‘더 이상 사건을 들춰지 마라’고 말하며 취재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진희 기자는 “통계에서 드러난 기본 정보를 가지고 사망한 분은 경찰에 사망사고 접수가 되니 담당 경찰관에 연락해 알아봤다. 유족의 경우 취재에 응해주면 좋은데 싫어하는 유족도 있어 바로 접촉할 수 없어 경찰에게 대신 취재 여부를 물어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면서 “유족들이 한이 맺혀서 아예 생각하기 싫다라는 분이 많았다. 트라우마가 상당했다. 일부러 기사에서 특정되면 피해가 갈 수 있어 지역까지도 표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경찰 쪽에서 적극적으로 찾아주려는 게 거의 없었다. 산재사건은 담당자가 바뀌면 기억도 못하고 접근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은 최종 변사 사건으로 파악해 취지를 설명하고 부탁을 드려도 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의 한 전기도금업 사업장에서 도금액 교체 작업 지시를 받고 일하다 쓰러져 사인안화수속 중독으로 호흡부전 및 화학성 폐렴악화로 끝내 뇌사상태에 빠졌다 숨진 김동규씨(가명‧당시 23세), 소화기 제조업체에서 충전 및 주입하는 작업하다 액체 상태의 화학물질(HCFC-123)에 노출돼 급성 간부전으로 사망한 박민석(가명)씨도 한국일보의 끈질긴 추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 한국일보 '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기획기사.
▲ 한국일보 '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기획기사.

한국일보가 만난 유족 중에는 적극 사건을 공론화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경우도 있었다. 이진희 기자는 “제가 들어도 억울한 입장이더라. 동생(최인정씨)이 죽었는데 언니가 학교와 교육청을 찾아갔는데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돼서 해명을 들어봤는데 사람의 죽음에 대해 사과한다는 느낌은 없고 곤경을 어떻게든 빠져나갈까 궁리만 하더라”라고 했다. 이 기자는 “최씨의 유족은 기사가 나간 다음 아무도 관심이 없고 신경도 안 썼는데 감사하다고 전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한국일보의 기획기사 취지는 산업재해에 노출된 20대는 적극적으로 입증하고 대응하지 못하면서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권위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75.7%가 최근 1년 간 현재 직장에서 한 번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 다른 연령의 괴롭힘 경험률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2017년 산업재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로 인정받은 절반 이상이 6개월 미만 노동자였다. 2013~2018년까지 직장내 성희롱으로 산재를 신청한 32건 중 13건이 20대 청년이었다.

이진희 기자는 “10대 산재는 배달 오토바이 사고가 대부분이라 결론도 한 가지지만 20대는 성폭력부터 추락사까지 산재 유형이 다양해 별도의 개선점이 있어야 한다”면서 “우선 자신이 겪은 일을 산재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20대는 사회 초년생으로 노동자로서 권리의식보다는 어떻게든 책임지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취업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직장을 잡아서 잘 해보려는 20대 청년의 절박한 심정을 구조적으로 이용하면서 산재를 은폐한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산재 사례를 발굴하면서 어쩔 수 없는 사건이 아니라 충분히 막을 사건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왜 산재 사건은 주목받지 못할까 의아했다. 주변에서 벌어지고 구조적 문제인데 살인사건보다 주목받지 못한다. 김용균씨 사건은 노조가 공론화했지만 하청 노동자 산재는 대부분 묻히고 있다”면서 “사업주 처벌 강화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건설현장은 안전조치보다 사람이 죽어 벌금내는 것이 비용이 적다는데 사법 당국이 산재 냈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산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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