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지역 주민들이 2017년 지진 피해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 앞 상경집회를 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각각 만났다. 민주당은 진상규명 등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과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를, 한국당은 정부 예비비 편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포항에 지역구를 둔 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 일정이 진행되는 장소에 나타나 배석하겠다고 주장해 한동안 소란이 일기도 했다.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방문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포항 11·15 촉발지진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전했다.

대책위는 호소문을 통해 “51만 시민의 42%가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6만3000여 건의 물적 피해와 5000여명의 인구 감소는 물론 부동산 가격 폭락, 기업유치 실패 등 경제적 손실이 1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밝힌 뒤 “포항지진이 인재로 밝혀진 만큼 정부가 지진피해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참고 기다려 왔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사과는커녕 부처 간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구체적 대책 마련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데 대해 시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17년 11월15일 경북 포항 지역에서 발생해 118명 사상자(사망 1명)를 낸 지진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지열발전으로 인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했다. 지열발전은 지난 2010년 국책사업으로 추진됐고,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지하에 물을 주입하는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방문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포항 11·15 촉발지진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전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방문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포항 11·15 촉발지진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전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대책위는 “포항이 지진 피해를 극복하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완전한 피해 배상 및 지역재건, 진상규명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민생법안인 포항지진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함께 힘써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호소문을 전달 받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호소문을 낭독하는 목소리에 절박함과 절실함이 고스란히 담겨 절대 소홀하게 듣지 않고 마음 깊이 새기겠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원내대표가 되고나서 곧바로 포항을 찾아 도움을 나누고 싶었지만 국회 정상화를 통해 지진대책과 관련한 추경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이 실질적 도움이 되는 길이라 생각하고 몰두하다보니 차일피일 늦어졌다”며 “국회가 정상화되는 대로 가장 우선적으로 포항 지진과 관련한 대책들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들을 챙겨서 고통을 겪고 계시는 포항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방안을 우선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또 “호소문에 있듯 포항지진은 인재(人災) 이고 우리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감사원 감사를 포함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고 저와 민주당에서도 국회 차원에서 진상규명하도록 더 노력하겠다. 정부 지원이 확정됐지만 지진이 휩쓸고 간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전해들었다. 그래서 추경예산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내년에 더 필요하다면 추경편성 예산 외에도 더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 자유한국당 박명재, 김정재 의원이 포항지진 범대책위원회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면담에 배석하겠다며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향하자 홍의락 민주당 의원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자유한국당 박명재, 김정재 의원이 포항지진 범대책위원회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면담에 배석하겠다며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향하자 홍의락 민주당 의원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한편 민주당 전달식에 앞서 포항 지역구의 한국당 의원들이 민주당 회의실에 나타나 배석을 요구하면서 민주당 관계자들과 고성을 주고받기도 했다. ‘촉발지진 피해 특별법을 제정하라’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메고 민주당 회의실에 찾아온 한국당 김정재, 박명재 의원은 배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원내대표에게 직접 말하겠다며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향했다.

두 의원의 돌발행동에 취재진이 몰려들어 서로 밀고 밀리는 상황에 이르렀고, 홍의락 민주당 의원(민주당 포항지열발전소지진대책특위 위원장)은 “카메라만 있으면 이러느냐”며 두 의원들에게 항의했다. 김정재 의원이 “지진에 여야가 어디 있느냐”고 반발하자, 오중기 민주당 포항시북구 위원장은 “이인영 원내대표와 범대위 시민들이 만나는 자리다. 이런 식으로 포항지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시는 건가. 쇼(show)하시는 것이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에 이어 대책위를 만난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3월 찾아뵙고 (지진 피해) 현장을 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주거도 안정되지 않고 상가지역들이 파괴된 걸 봤는데, 그동안 보상이나 배상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고 원인에 대해서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깝다”며 “포항지진특별법을 중점추진법안으로 당론을 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방문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포항 11·15 촉발지진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전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방문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포항 11·15 촉발지진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전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나 원내대표는 “정부에 예비비 사용을 요구하겠다. 자꾸 특위 구성하자는 게 잘못하면, 원인에 대해서도 조금 더 따져보겠다는 거 아닌가. 너무 장기화되면 적절치 않기 때문에 먼저 피해구제하고,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면 정부가 먼저 책임 이행해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당으로 인해 국회 정상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국회 정상화에 대해 저희는 준비가 돼 있다.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지만 의회민주주의 가장 기본인 선거법이라든지 이런 건 합의에 의해 해야 하는 거였고 일방적으로 처리한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민주당이 결자해지하는 쪽으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그러한 부분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지진 대책위는 이날 양당 원내대표 면담에 앞서 국회 앞에서 포항시민 약 800명이 참석한 집회를 열고 △지진피해 특별법 즉각 제정 △포항 11·15 촉발지진 책임자 구속 △실질피해 보상으로 포항경기 회복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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