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노동3권과 국가기간산업 안정성이 충돌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와 관련 세 차례 전문가 기고를 받습니다. 김영훈 전 철도노조 위원장이 파업때 겪은 필수유지업무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를 담은 첫 번째 기고를 해 주셨습니다. 다음 기고는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입니다. - 편집자 주

 

철도노조가 2006년 3월1일 ‘KTX승무원 정규직화, 철도 상업화 저지’ 요구를 내걸고 결행한 파업으로 열차 운행이 4일간 중단됐다. 당시 직권중재 제도는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했고, 철도노조의 모든 파업은 불법이 됐다.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개정을 요구한 직권중재 제도는 폐지되고, 같은 해 정기국회는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의 쟁의권 보장과 쟁의권 제한을 통한 공익보호의 조화’를 이룬다는 명분으로 필수업무유지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10년이 지난 2016년, 박근혜 정권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은 9월27일 시작돼 대통령 탄핵이 의결된 12월9일까지 이어졌다. ‘최장기 철도파업’으로 기록된 74일간의 파업이었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철도노조가 파업 중인 것을 인식한 시민도 많았다. 과연 필수업무유지 제도로 인해 ‘쟁의권 보장과 공익 보호의 조화’는 이뤄졌는가?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공운송사업 필수유지업무지정 폐기를 담은 입법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공운송사업 필수유지업무지정 폐기를 담은 입법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시민 생활과 밀접한 철도노조 장기 파업은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철도노조의 조직률이나 단결력이 높기 때문에 장기파업을 전개한다는 말도 가능하지만, 파업의 위력이 없기 때문에 단체교섭이 이뤄지지 않아 ‘파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장기파업에 따른 무노동 무임금을 감당할 대책이 없는 노조는 파업을 결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말도 된다. 실제로 장기파업이 있던 해 철도공사는 인건비 절감으로 오히려 경영 수지가 개선됐다.

필수유지업무 제도에 따라 파업 중에도 일정 비율의 열차 운행율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필수유지업무 담당자로 지정된 조합원은 현장 근무를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정부와 사측의 ‘불법적인’ 대체근로 투입으로 파업초기 KTX고속열차 운행율은 100%를 유지했고, 출‧퇴근 시간대 수도권 전동열차 운행도 큰 무리 없이 운행됐다. 하루 이틀 파업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현장에서는 차라리 불법으로 매도되더라도 직권중재 제도가 낫다는 한탄이 나온다.

보수언론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철도파업을 비난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은 ‘불편함’을 전제로 한다. 파업권은 조합원이 노동력 제공 거부를 통해 노동조합 요구를 관철할 권리이며, 파업기간 사회 공론장에 노동자들이 직접 뛰어들어 토론하고 주장할 권리, 즉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에게 주어진 핵심적인 시민권이다. 

2016년 파업 기간 국방부에서 투입한 특전사 요원들의 미숙한 운전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수도권 전철운영에서 파업 효과보다 큰 위험을 발생시켰다. 수서고속철도 분할 민영화 저지를 위한 2013년 파업에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대학생의 출입문 오작동 취급으로 승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파업은 불편하지만 불법적인 대체근로는 시민들을 위험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 행사로 발생한 불편함을 국가 재난으로 규정하고 노동현장에 군대 투입이 용인된다면, 이것은 일상적인 헌정 중단 사태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 파업으로 인해 철도서비스가 중단되면 시민의 생명이나 공공안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지는가? 2002년 국제노동기구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필수공익사업의 항목에 남아있는 철도, 도시철도, 석유사업 등은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국정부에 권고했다. 

국제기준에 따르면 철도는 필수(essential)유지업무 사업장이 아니라 파업 중에도 최소업무는 유지돼야 하는 최소(minimum)유지업무 제도 적용 사업장이다. 그리고 최소유지업무는 파업으로 인해 가장 큰 불편을 겪는 오지의 주민들을 위해 유지돼야 한다. 즉 철도 이외에는 대체 교통수단이 없는 주민들을 위한 지역철도는 파업 중에도 최소한으로 운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역으로 지역철도 운행을 중단하고 남는 인력으로 고속철도 운행에 투입한다. 정부의 필수유지업무제도 운영의 기준은 시민 위험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용자 영업이익 손실 여부에 있는 것이다.

▲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2016년 9월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2016년 9월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더 이상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변칙으로 운영되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노동조합은 ‘불편한’ 파업을 통해 ‘위험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상업화 시도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노조법상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권은 시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엄격하게 제약하지만 공공부문 필수업무에도 여전히 비정규직들이 난무하는 역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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