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체육관 10분 주총’의 전말
현대중공업 ‘체육관 10분 주총’의 전말
장소‧일시 기습변경, 사측 용역들 소액주주 노조원 물리력으로 막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결정하는 주주총회 의안이 31일 오전 통과됐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물적분할과 주총 개최에 반대해 닷새 전부터 주주총회장으로 공지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주총 시간과 장소를 기습으로 바꾸고 용역을 동원해 새 주총장을 막아 10분 만에 의결을 끝냈다.

애초 주주총회는 이날 10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을 비롯한 3000여명이 새벽 5시께 기상 알림을 듣고 일어나 경찰과 사측 진입에 대비했다. 이들은 30일부터 한마음회관 앞에서 밤을 지샜다.

노동자들은 아침 7시께 한마음회관 정문과 후문을 꽉 채웠다. 울산지법이 결정한 주주총회 방해금지 가처분 효력은 8시부터 생겨, 이 때를 기점으로 충돌이 예상됐다. 노조는 정문에 선 조합원들에게 “비폭력 무저항으로 주주총회에 반대하려 한다. 주주총회를 노조와 동의 없이 여는 데에 안타까움을 표하자. 우린 노동자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키 위해 여기 있다”며 물리력을 먼저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에 모인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에 모인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 앞 도로를 채운 현대중공업 경비대와 일용직 용역, 경찰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 앞 도로를 채운 현대중공업이 동원한 용역직원과 경찰들. 사진=김예리 기자

오전 7시45분께 현대중공업 최헌 상무가 1000여명 직원을 데리고 한마음회관 정문 앞에 왔다. 사측 경비대와 용역은 정문 앞에 가로 놓인 도로에 빽빽이 늘어섰다. 최헌 상무는 주총을 열도록 길을 비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가 물적분할의 부당함을 강변하자 “회사가 필요해서 하는 거고 법적 무리는 없다. 노동자 미래를 생각해서도 회사도 발전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 상무가 “다시 오겠다”며 돌아선 직후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현대차지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과 사측이 농성장에 침탈하려 하면 전면 파업에 들어간다’고 선포했다.

8시20분께 사측은 ‘주총 검사인’을 데리고 다시 와 마주 섰다. 검사인은 주총 소집절차와 의결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법원이 선임하는 임시 감사기관을 말한다. 이들은 9시께 다시 찾아와 조경근 현대중공업지부 사무국장과 언쟁을 벌였다. 이들은 ‘노사가 알아서 하라, 진행이 어려우면 거칠 건 거쳐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윽고 주총이 예고된 10시를 10분 앞둔 시각, 경비대나 용역직원과 달리 양복이나 사복차림을 한 남성 5명이 지부 대오와 마주 섰다. 한 기자가 현대중공업 주주인지 묻자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조원들이 이들을 사측이나 주주로 여겨 ‘법인분할 척결하자’ 등 구호를 외치는 동안 이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는 주총이 열리는 10시를 훌쩍 넘긴 10시35분까지 이어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후 이들 5명이 실제 주주인지를 놓고 “모른다”고 했다.

▲현대중공업 최헌 상무(맨 왼쪽) 등 임직원과 주주총회 검사인(맨 오른쪽)  등이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대치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현대중공업 최헌 상무(맨 왼쪽) 등 임직원과 주주총회 검사인(맨 오른쪽) 등이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대치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자신을 현대중공업 주주라고 밝힌 남성 6명이 31일 주총이 임박한 시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 앞에서 사측 경비대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자신을 현대중공업 주주라고 밝힌 남성 6명이 31일 주총 시각을 넘긴 10시께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 앞에서 사측 경비대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때 한 용역직원이 ‘주총 장소가 변경됐다’고 소리 쳤다. 다른 용역들은 작은 종이뭉치를 노조를 향해 뿌렸다. 주총 장소 변경 안내문이었다. 이들은 주총을 여는 때와 장소를 11시10분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울산대학교는 한마음회관으로부터 18km, 차량으로 36분 걸리는 거리다. 노조는 울산대학교 앞에 만약에 대비해 집회신고해뒀지만 조합원은 배치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이 소식을 접한 뒤 각자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대학교 체육관을 향해 달렸다. 첫 타자가 도착한 건 주총이 막 시작한 11시12분께. 경찰은 조합원들이 체육관 방향으로 길을 들지못하도록 대학 정문 길목에 방패를 들고 빈틈없이 막아섰다. 용역이 주총장 문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조합원들을 몸으로 막았다. 닫힌 문은 열지 못하도록 안쪽에서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고용한 일용직 용역직원들이 31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을 향해 ‘임시주총 장소 변경 안내’ 종이를 뿌리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현대중공업이 고용한 일용직 용역직원들이 31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을 향해 ‘임시주총 장소 변경 안내’ 종이를 뿌리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조원들도 상당수기 우리사주 형식으로 현대중공업 주식을 소유한 주주다. 자신이 주주라고 밝히는 노조원까지 막아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용역들이 주총장을 둘러싸고 입장하고자 하는 조합원들을 주주인지와 무관하게 막는 것은 맞다. 질서유지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에 따르면 한 조합원이 주총 출석통보서를 내밀며 들어가려 했지만 역시 들어가지 못했다. 상법과 현대중공업 정관 등은 회사가 소액주주를 포함한 주주들에게 2주 전 주총 소집을 통지하도록 정했다.

당시 주총장을 찾은 현대중공업지부 노조원은 “정문에 깔린 경찰과 용역이 노조 진입을 막자 유리를 깨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후문으로 들어온 노조원들은 주총장에 들어서자마자 주주들이 이미 문을 나서 뒷꽁무니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부는 “우리사주조합장과 주주들이 도착하기 전에 날치기로 법인분할 임시주총을 끝내고 뒷문으로 서둘러 도망갔다”고 했다.

▲31일 현대중공업이 장소를 변경해 주총 연 울산대학교 체육관 바닥에는 주총 관련 서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현대중공업이 장소를 변경해 주총 연 울산대학교 체육관 바닥에는 주총 관련 서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현대중공업이 때와 장소를 기습 변경해 주총을 열고 마친 뒤 울산대학교 체육관 모습. 용역이 뿌린 분말소화기 가루가 내려앉아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현대중공업이 때와 장소를 기습 변경해 주총을 열고 마친 뒤 울산대학교 체육관 모습. 용역이 뿌린 분말소화기 가루가 내려앉아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주총이 끝난 지 30분 정도 지난 뒤 체육관은 뿌려진 분말소화기 탓에 시야가 탁했다. 주총이 진행되는 동안 후문 통로에서 사태를 목격한 비즈한국 기자는 용역이 소화기를 쐈다고 전했다. 기자는 “노조원들이 후문으로 주총장에 들어서려 하자, 용역이 이들을 향해 먼저 분말 소화기를 쐈다. 노조원들이 쏘는 모습은 내가 있을 땐 못 봤다”고 했다. 실제로 후문 통로 바닥과 물건들엔 소화전 분말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 기자들은 진위를 확인하고자 체육관 CCTV 관련 문의를 하려고 울산대 본관을 찾았지만 울산대 교직원과 보안요원은 본관 문 6개를 모두 잠그고 대화를 거부했다. 울산대학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설립자다.

이같이 주총장을 주주가 도착하기 어려운 때와 장소에 기습 변경하는 행위가 절차상 위법이란 지적도 나온다. 법원은 장소 변경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당초 소집장소에 출석한 주주들로 하여금 바뀐 장소에 모이도록 상당한 방법으로 알리고 주주들의 이동에 필요한 조치를 다 해야 한다’고 밝힌다.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면 주주의 권한을 박탈한 것으로 봐 주총 결의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현대중공업 주식을 약 3% 지니고 있다.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총이 끝난 뒤 기자들이 찾은 울산대 본관은 잠겨 있었다. 내부에 울산대 설립자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총이 끝난 뒤 기자들이 찾은 울산대 본관은 잠겨 있었다. 내부에 울산대 설립자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금속노조 법률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 “상법은 물론 현대중공업 정관 18조는 주주들에게 2주 전에 주총 소집을 통지하도록 했다. 노동자들은 이번 주주총회 안건이 통과하면 고용관계나 노조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입음에도 의견 표명은 커녕 참석도 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도 “현대중공업 사측은 오늘,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반대해 온 법인분할 주주총회를 중대한 절차위법까지 해가며 강행했다”며 “원천 무효”라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주총에서 통과한 분할계획서에 따라 1일 법인을 분할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주주총회와 법인분할 결정에 무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오는 3일 전면파업에 다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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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2019-06-01 09:40:53
주주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이렇게 하면 어떤 소리를 듣겠니?? 나보다 못난 자들아~~

하늘 2019-06-01 01:40:43
권리를 가진만큼 행사하면 되는데 노조는 표대결은 하기 싫은 가보군. 현대중공업도 구세대 적인 주총 하지 말고 전자투표 도입해라. 사무직원들 들러리 교육시켜서 사전주총 하는 것도 없애라. 그리고 노조는 경영에 참여하려면 주식부터 정당하게 사라.

바람 2019-05-31 21:41:16
물리적 충돌과 돌발상황을 최소화했다면 노조가 잘했다고 본다. 상방 폭행에서는 둘 다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미국 자체도 winner takes it all이란 정치구호가 있지 않은가. 이런 약한 상황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노동자와 지역을 발전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국회의원과 당을 뽑아야 한다.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고, 누구도 모든 걸 가져갈 수 없다. 국회가 튼튼해야 노동자의 목소리도 국민에게 직접 전달된다.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꾸준하게 총선까지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수록 노동자의 지위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