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치권에 ‘20대 남성’을 다룬 토론회가 성행했다. ‘문재인 정부 지지 이탈층’으로 지목된 이들 표심을 잡는 데 여야가 나섰고, 이들은 대부분 성평등 정책 등으로 인한 ‘역차별’ 피해를 호소하는 집단으로 묘사됐다. 지난 2월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여성 편향적 정책 행보”, “정부 정책에 대한 20대 남성의 불신”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20대 여성’은 누구인가. 20대 여성과 남성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을까. 정의당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여성·젠더 의제에 적극적인 20대 여성 △지난 대선 심상정 후보 득표율이 높았던 공단 지역 20대 여성 △정의당 당원인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표적집단 면접(FGI·Focus Group Interview) 분석 결과를 29일 토론회에서 공개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20대 초반대 여성은 최근 총선에서 가장 급격한 투표율 상승세를 보였다. 2008년 18대 총선 24.1%였던 투표율이 2012년 19대 총선 40.4%, 2016년 20대 총선 54.2%로 올랐다. 같은 기간 20대 전반대 남성 투표율도 40.9%→50.0%→56.4%로 상승세였지만 상승률은 상대적으로 완곡했다. 20대 후반대의 경우 남성은 23.4%→36.3%→47.3%, 여성은 25.0%→29.5%→52.6%였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20대 총선에서 20대 여성 유권자는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테러방지법 도입에 반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의 속기록을 엮은 책자 구매자는 78.8%가 여성, 20대 여성이 37.5%로 가장 많았고 30대 여성이 30.9%로 뒤를 이었다.(2016년 4월 기준 인터넷 서점 알라딘 집계)

이 대표는 “막힌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공수처 신설 및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개혁입법안과 선거제 개혁안을 묶는 전략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버닝썬-장자연-김학의 사건 실체가 드러나고 있던 시기”라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국면에서 나타난 국민적 공감대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폭력을 저지른 남성 권력자를 국가권력을 이용해 비호한 남성 카르텔이 수면 위에 등장한 이후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 29일 정의당 주최 '이슈&트러블? 메이커스! - 20대 여성을 통해 정의당을 보다'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9일 정의당 주최 '이슈&트러블? 메이커스! - 20대 여성을 통해 정의당을 보다'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반면 20대 여성이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 즉 정치 참여 효과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조혜민 정의당 대의원은 “거리에 나온 여성들 외침에 정치권이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모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국회, 정치인에 대한 효능감에 회의적 답변을 내놓았다”며 “이미 많은 시간을 거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의제에 대해서만 반응할 뿐, 지금 20대 여성들이 언급하는 의제들에 무관심하다고 덧붙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순간은 전체 성별과 연령대가 참여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로 나타났다.

전홍기혜 프레시안 기자는 언론이 ‘20대 정치의식’에 대한 여론을 일정 부분 왜곡시켰다고 봤다. 그는 “조중동의 문재인 지지율 하락 의미 부여 속에서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며 ‘20대 남성’들이 반(反) 문재인 세력으로 ‘찾아졌다’고 표현했다. 전홍 기자는 최근 6개월 동안 ‘20대 남성’ 또는 ‘20대 여성’ 관련 뉴스를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분석했더니, 언론이 20대 남성을 정치적 주체로 호명한 것과 달리 20대 여성을 분석 대상으로 한 정치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은 ‘20대 여성’의 정치적 요구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비가시화시켰다. 이들 목소리를 ‘메갈’ 논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20대 여성들 주장을 ‘과격’, ‘극단’, ‘패륜’, ‘일베’류 혐오발언 집단과 동일한 범주 집단으로 인식시키려는 ‘정치적 기획’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전홍 기자는 “문재인 정부가 대선공약 등으로 약속했던 여성정책 상당 부분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런 도식은 더 문제”라며 “이런 문제의식은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보고서, 민주당 내 최재성 의원과 표창원 의원 등이 ‘젠더 갈등’ 토론회를 주최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 이준석 최고위원 등이 ‘반(反) 페미니즘’ 정치적 대변자로 나서는 등 ‘백래시’도 정치적으로 가시화시켰다”고 주장했다.

▲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 4대 비전 12대 약속 중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대한민국' 분야 공약 이행도. 사진=오김현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발제문 발췌해 정리
▲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 4대 비전 12대 약속 중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대한민국' 분야 공약 이행도. 사진=오김현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발제문 발췌해 정리

오김현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은 현 정부가 실질적이고 장기적 변화를 위한 선택 측면에선 지지부진하지만, 적극적인 ‘보여주기’ 전략을 통해 여성들이 기다리도록 이끌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은 지지를 철회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20대 여성 판단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올해 버닝썬, 김학의, 장자연 사건 등을 통해 굵직한 사건들이 불거졌고 이에 대한 수사, 판결이 흐지부지될 경우 쌓인 불만들이 어떻게 지지율로 이어질지 좀 더 두고봐야 할 시점”이라며 “20대 여성들 지지율이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젠더폭력 해결이 다른 문제들을 압도할 만큼 절실하다는 반증”이라고 해석했다.

‘한국, 남자’, ‘잉여사회’ 등을 쓴 최태섭 작가는 “정치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막중함에도 오늘날 정치는 분열과 혐오의 반사이득을 먹고 사는 존재로 전락”했다며 “젠더 관련해 중요한 것은 담론의 바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에 정치와 정당 역할에 고민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권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정의당은 20대 여성을 우리당 핵심 지지층으로 타깃팅한 정책을 펴고, 더 나아가 이들을 정치인으로 성장시켜낼 전략까지 모색하고자 한다”며 “정당 내부의 20대 여성 활동가의 참여를 지원하고 여성의제를 적극 수용,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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