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피고인 입장시키세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3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 박남천) 311호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지난 29일 첫 공판에 이어 두 번째 공판에 검사 14명과 변호사 12명이 나섰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효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전 내내 공방을 이어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3인의 혐의는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등이다. 

이날 오전 공판의 쟁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USB에서 나온 증거의 무결성이었다. 임 전 처장은 2012~2017년 사법농단 의혹을 실행에 옮기고 지시한 혐의로 앞서 구속됐다.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에 직권을 남용하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소송, 통합진보당 직위 확인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하거나 특정 법관에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다. 

▲ 3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 박남천) 311호 법정 앞 모습. ⓒ정철운 기자
▲ 3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 박남천) 311호 법정 앞 모습. ⓒ정철운 기자

변호인단은 임종헌 전 처장의 USB를 두고 “적법하지 않게 증거가 수집됐다”며 검찰이 압수한 증거문서와 관련 “증거능력 없는 사본”이라며 “어디서 왔는지 어느 출력물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증거물로는 동의하지만 내용이 사실이라는 취지의 증거라면 동의할 수 없다”며 “수고스럽더라도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물어 문서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검찰이 가져온 증거 서류더미는 어림잡아도 1m가 넘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절차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맞서면서 “증거물로서 동의하겠다면서 증거의 압수 이전 출처까지 입증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증거 내용이 문제라면 작성자를 찾으면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피고측은 “(증거에 해당하는) 보고서 작성자인 심의관이 원래 작성한 것과 원본이라는 보고서 내용이 같은지 불러서 신문해야 한다”며 “제대로 증거능력이 부여되려면 작성자뿐만 아니라, 작성자가 어떤 과정에서 작성해 인쇄했는지 부가적 사실 증명까지 결합 돼야 완전한 증거능력 부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최초 문서가 있을 것이고, 검찰이 제출한 것은 임종헌 USB에 담겨 있던 것이다. 내용이 다르다면 이는 증명력의 문제이지 증거능력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재반박했다. 서로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자 재판부는 “심리의 효율성을 위해 피고인이 문제 삼는 부분을 특정해서 동일성과 무결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하자. 그렇지 않으면 동일성과 무결성 심리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중재안을 냈다. 그러나 피고측은 이를 거부했다.

검찰은 “변호인들에게 검사실에 와서 (증거를) 대조할 기회를 줬는데도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판례에 따라 재판에서 직접 대조하는 방법으로 (증거의 무결성을) 입증해야 한다. 법정에서 실물 화상기로 원본을 띄우고 직접 변호인들이 하나씩 대조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 2회 정도 특별기일을 지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자 피고측은 “전수조사 할 필요는 없다. 증명 요청 범위를 한정하거나 특정하겠다”며 입장을 바꾼 뒤 검찰에 증거 파일 전부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미 확인 기회를 재판장 밖에서 줬다”고 밝힌 뒤 “공판정에서의 증거 입증으로 진행하겠다. 다음 기일까지 피고측은 임종헌 USB 출력물 가운데 원본과 동일성·무결성 확인 요구자료를 특정하고, 검찰은 변호인이 요구하는 부분을 증명하라”고 결정했다.

이어진 쟁점은 검찰이 작성한 증거설명서였다. 피고측은 “증거설명서에 검찰 의견이 지나치게 개입됐다. 입증 취지가 아니라 의미 부여·법률 주장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증거신청인으로서 쟁점 사항과의 관련성, 입증 취지 등을 설명할 수 있다”며 반박했다. 이에 재판부는 “검찰측 증거설명서를 보지 않고 반환하겠다”고 정리했다. 이번 재판을 맡은 박남천 부장판사는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근무경력이 없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과 인연이 없다. 

▲ 지난 29일 첫 공판에 나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 지난 29일 첫 공판에 나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이날 공판에서 등장한 쟁점은 앞선 공판준비기일에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사법부 고위인사였던 대법원장·대법관 출신인 상황에서 ‘사법농단’이란 사안의 특수성과 높은 사회적 관심, 여기에 더해 재판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변호인단의 전략이 더해져 기존 공판에서 보기 힘들었던 상당한 법리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재판부는 정식 증거 조사도 시작하지 못했고 증인신문 순서도 정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공판을 이어갈 계획이다.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9일 첫 공판에서 검찰 공소장을 가리켜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공소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조사를 해보니 재판거래라고 할 만한 부분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검찰은) 통상적인 인사문건을 갖고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거짓) 포장이 300페이지가 넘는 공소장에 넘쳐 흐르고 있다”며 자신을 정치적 피해자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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