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독립(외주)제작사와 수학교육 콘텐츠 제작과정에서 ‘갑질’을 했는지를 두고 다투면서 법원 제출 서면에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EBS는 담당자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부분이 EBS가 갑질하지 않았다는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라서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학교육 콘텐츠를 만든 제작사 대표 A씨는 지난해 7월 EBS가 하도급법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장을 보면 A씨와 EBS는 2015년에 5분짜리 영상 24편, 2016년에 7분짜리 영상 26편을 제작키로 계약했는데 EBS가 해당 분량에 담기 벅찬 내용을 요구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실제론 긴 영상을 요구했지만 계약서상에선 짧은 영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계약했으니 A씨가 제작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EBS는 법원에 제출한 서면에서 ‘오히려 EBS가 짧은 영상을 필요로 해 A씨에게 분량 축소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즉 처음 계약보다 실제 영상이 길어졌는데 양측은 영상이 길어진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고 다투는 중이다. 이 책임이 EBS 쪽에 있다면 EBS가 제작비를 적게 주려고 불공정 계약을 했다는 A씨의 주장이 타당하고, 영상이 길어진 책임이 A씨에게 있다면 A씨는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제작자가 된다.

▲ EBS 로고
▲ EBS 로고

[관련기사 : EBS, 수학 콘텐츠 제작사 ‘갑질’ 논란]

EBS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A씨와 일했던 과거 사례를 들었다. EBS가 지난 3월 수원지법에 낸 준비서면에는 “A씨는 2013~2015년 중등 수학 동영상을 제작하면서도 RT(러닝타임, 영상시간)를 잘 맞추지 못하고 길게 늘였는데 당시에도 A씨가 최초 납품한 RT보다 수정작업을 통해 최종 확정한 동영상의 RT가 대부분 짧아졌다”고 주장하며 2013년 기하(단원) 20편 제작 당시 ‘최초 납품 RT와 최종 납품 RT 비교표’를 첨부했다. 

EBS가 법원에 낸 해당 표를 보면 전체 20편 중 4편을 제외하고 A씨가 처음 만든 영상(최초제출본)이 더 길고 이를 EBS가 수정지시한 뒤 나온 영상(최종확정본)이 더 짧았다. 하지만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EBS가 제출한 표에서 ‘최초제출본’과 ‘최종확정본’이 모두 뒤바뀌었다. 실제 A씨가 만든 20편 중 16편의 최초제출본 영상길이가 짧았는데 EBS의 수정지시 이후 길어졌다.  

▲ EBS가 지난 3월 수원지법에 낸 준비서면 중 조작(착오) 표의 일부. 이 표엔 전체 20편 중 16편의 러닝타임(최초본)이 비고(최종본)보다 긴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4편만 최초본이 최종본보다 길었다.
▲ EBS가 지난 3월 수원지법에 낸 준비서면 중 조작(착오) 표의 일부. 이 표엔 전체 20편 중 16편의 러닝타임(최초본)이 비고(최종본)보다 긴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4편만 최초본이 최종본보다 길었다.

 

▲ EBS MATH 홈페이지에 올라온 '직선의 세가지 이름' 편 최종본. EBS가 법원에 낸 자료를 보면 최초본이 8분33초라고 돼 있지만, EBS MATH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종본 영상이 8분33초임을 확인할 수 있다.
▲ EBS MATH 홈페이지에 올라온 '직선의 세가지 이름' 편 최종본. EBS가 법원에 낸 자료를 보면 최초본이 8분33초라고 돼 있지만, EBS MATH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종본 영상이 8분33초임을 확인할 수 있다.

 

▲  EBS PD와 A씨 등 제작진이 최초본과 수정본 등 자료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직선의 세가지 이름' 편 최초본. EBS가 법원에 낸 자료를 보면 최초본이 8분33초라고 돼 있지만, 해당 카페에 올라온 최초본 영상은 8분18초임을 확인할 수 있다.
▲ EBS PD와 A씨 등 제작진이 최초본과 수정본 등 자료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직선의 세가지 이름' 편 최초본. EBS가 법원에 낸 자료를 보면 최초본이 8분33초라고 돼 있지만, 해당 카페에 올라온 최초본 영상은 8분18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오늘은 EBS에 EBS PD들, EBS 법무팀, EBS의 법률대리인 중 어느 선에서 잘못 했는지 등을 물었다. 이에 EBS는 “제출 서류에서 RT의 앞뒤(최초본과 최종본)가 바뀐 것은 내용을 기재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인한 담당자 실수”라며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정정요청 하겠다”고 했다. 이어 “해당 RT 세부 내용은 A씨도 확인할 수 있고 최종 RT는 제3자도 확인할 수 있는 공개된 자료로 의도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했다. 

EBS는 최근 법원에도 “표에서 ‘최초제출본’과 ‘최종확정본’ 값이 서로 통째로 뒤바뀌어 기재된 사실을 최근 확인해 표를 정정한다”며 바로잡은 표를 제출했다. EBS는 “악의적으로 데이터 조작의도를 가졌다면 두 값을 통째로 바꿔 기입하는 단순한 방식을 선택했을 리 없으며 조작여부를 숨기기 위한 다른 노력이 수반됐어야 한다”며 단순실수임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A씨가 영상을 길게 만들어와서 EBS가 길이를 줄이도록 했다’는 EBS의 주장은 무너졌다. 이에 EBS는 준비서면에 “정정내용에 따를 때도 20편 중 4편은 최종확정본의 RT가 줄었고, 유의미하게 RT가 증가한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 2015년 A씨가 EBS에 낸 입찰제안서. 해당 입찰제안서를 보면 A씨가 분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EBS의 강요로 영상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 2015년 A씨가 EBS에 낸 입찰제안서. 해당 입찰제안서를 보면 A씨가 분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EBS의 강요로 영상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A씨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는 “영상제작에 몇 개월에 걸려 최초제출본을 네이버 카페에 업로드한 날짜와 EBS가 EBS 홈페이지에 최종확정본을 업로드한 날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며 “소송의 핵심 증거를 수집하고 확인하는데 날짜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최초제출본은 (EBS와 A씨 등 제작진이 따로 만든) 네이버 카페에서만 찾을 수 있고, 최종확정본은 EBS MATH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하므로 절대 최초본과 최종본을 혼동할 수 없다”며 “심지어 네이버 카페에는 최초제출본만 따로 모아져 있는 게 아니라 20개가 넘는 메뉴에 26페이지가 넘게 다른 콘텐츠(최초제출본 뿐 아니라 2차·3차수정본 등)와 섞여 있어 일일이 검색하며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EBS 측이 지난 3월 제출한 준비서면은 변론 20여쪽에 입증서류 첨부까지 합해 200쪽에 달한다.   

한편 A씨는 하도급법 소송 전에 공정거래위원회에 ‘EBS가 갑질했다’며 신고했다. EBS는 과거 기업들과 공정위가 소송할 때 공정위를 대리해오던 변호사 두 명을 EBS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또한 A씨와 공정위 관계자간 지난달 중순경 통화녹취를 보면 EBS는 공정위에도 수차례 영상시간 관련 자료를 제출했고, 마지막 제출 자료에는 민사소송에 제출했던 조작(착오)한 표를 첨부했다. EBS가 불공정거래 전문변호사까지 선임했는데 공정위와 법원에 두 번씩이나 이 착오를 잡아내지 못했겠느냐는 게 A씨 주장이다. 

EBS에 따르면 재판부는 공정위 처분 결과를 재판에 참고하려 했다. EBS가 공정위를 대리하던 두 명의 변호사를 선임했고, 공정위에도 조작(착오)한 표를 제출했는데 공정위가 이를 잡아내지 못해 EBS 손을 들어줬다면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해졌을 거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이에 EBS는 미디어오늘에 “A씨가 공정위 신고를 취하해 종결됐기 때문에 (민사소송) 자료 착오와 (공정위) 심의 종결은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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