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냄비같다’는 말이 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은 앞다퉈 보도하지만 관심이 차차 줄어들면 보도량도 썰물 빠지듯 준다는 뜻이다. ‘제주 2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끈질기게 보도를 이어가는 기자들이 있다”는 안도감이다. 채승민(42) KBS 기자는 그중 하나다. 그가 지난 10개월간 만든 리포트는 60여개, 온라인 기사까지 합하면 80개가 넘는다. 한 달 평균 6개씩, 1주일에 한 번 꼴로 1년 가까이 리포트를 냈다.

제주 2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2015년 11월10일 국토교통부의 ‘건설 추진’ 일방 발표로 시작됐다. 건설부지는 제주 성산읍 수산1리·신산리·난산리·온평리.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가 없었기에 주민들에겐 날벼락이었다. 문제는 민주적 절차보다 ‘부실 계획’이었다. 국토부가 근거로 든 2015년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 보고서엔 문제가 많았다. 반대 주민들이 보고서를 해부하다시피 분석해 오류를 찾아냈다.

당시 이들에 귀 기울인 전문가 집단은 없었다. 단식을 불사한 제주 2공항 건설 불복종운동에도 국토부, 제주도는 절차를 강행했다. 싸움을 지켜봤던 채 기자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다. 2공항 사업 타당성이 불명확할 뿐 아니라 언론의 중계식 보도도 문제였다고 여겼다. 2018년 1월 끝났던 ‘KBS 공정방송 쟁취 파업’을 계기로 시간적 여유를 얻은 게 기회였다.

▲지난 4월4일 KBS 제주총국이 보도한 ‘국토부 거짓말 확인’ 보도 갈무리.
▲지난 4월4일 KBS 제주총국이 보도한 ‘국토부 거짓말 확인’ 보도 갈무리.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단식 15일 차인 2017년 10월 25일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장에 앉아 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단식 15일 차인 2017년 10월 25일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장에 앉아 있다. 사진=오신범씨 페이스북

KBS 조합원들은 파업 후 한 달 간 제작거부를 이어갔는데, 채 기자는 이때 반대 주민들 주장을 살폈다. 사전 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읽으며 관련 정보공개 청구도 미리 해놨다. 그렇게 2018년 7월 “동부 폭설·폭우…공항 입지 영향 없나?” 보도를 시작으로 첫 기획 보도 내리 5건을 보도했다.

채 기자는 ‘부실’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질이 낮았던 보고서에 천착했다. 성산 지역 적설량이 제주공항 지역 적설량을 훨씬 상회하는 상식도 반영되지 않았고 부지 선정에 영향을 줄 천연 동굴도 보고서엔 ‘부존재’로 처리되거나 비행기와 조류 간 충돌 위험도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정석비행장 안개 발생일수 오류는 더 놀라웠다. 연구진은 한진그룹 측이 소유한 정석비행장은 ‘바람과 안개 등 악천후가 많아 입지로 부적절하다’ 결론냈으나 채 기자 취재 결과 연구진이 “정석비행장 측의 운행 데이터만 갖고” 낸 결론이었다. 국토부가 과업지시서를 통해 의무로 정한 지반조사는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영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연구 용역 보고서와 비교했을 때 차이는 뚜렷했다. 영남권 신공항 보고서엔 분석에 쓰인 원본 데이터들이 공개됐으나 제주 2공항 보고서엔 필수 원본 데이터 누락이 많았다. 특히 미국 버지니아 공대 자문 보고서나 연구 용역진의 자문회의 자료엔 기존 제주공항 확장안의 장점을 분석한 내용이 있지만 보고서엔 모두 누락됐다.

채 기자가 60건이나 보도를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정보공개청구에서 나왔다. 정보공개포털로 구하기 힘든 자료는 발로 뛰어 구했다. ‘미국 버지니아텍 용역 자문 결과 보고서’,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 용역 하도급계약 승인 요청서’, ‘2015년 사전 타당성 용역 전문가 자문회의’,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협의체’, ‘제2공항 입지선정 재조사 용역 중간 보고서’ 등의 비공개 자료가 공개됐다. 채 기자는 자료마다 4~5꼭지로 기사를 만들어 일주일 동안 기사를 내보냈다.

▲ 채승민 KBS제주총국 기자
▲ 채승민 KBS제주총국 기자
▲채승민 기자가 보도한 ‘ADPi 보고서 전격 공개…제주공항 확충 대안 제시 확인’ 리포트 갈무리.
▲채승민 기자가 보도한 ‘ADPi 보고서 전격 공개…제주공항 확충 대안 제시 확인’ 리포트 갈무리.

채 기자는 “국토부가 애초 상식적으로 추진했다면 제주도 내 갈등은 심해지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예산 5조원이 들어가는, 150만 평 부지를 밀어낼 수 있는 대형 국책 사업”이라며 “투명하게 사업을 검토하고 주민들에게 알려 합당한 근거를 충분히 보여줘서 납득을 시켜야 하는 게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채 기자는 “취재 중 국토부 관계자가 수신 거부를 해놓기도 했다”며 “공직에 있는 실무진이 이렇게 (취재진을) 차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사업 타당성을 검토했던 연구진도 모두 채 기자 전화를 받지 않는다. 1년 가량의 집요한 취재 결과 반론 취재가 어려워졌다.

채 기자는 ‘기사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필요한 자료를 찾으면 공유해주고, 기상·지질·항공 등 전문분야 지식이 필요할 땐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제주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용역 재조사 검토위원회는 오는 6월 권고안을 작성해 국토부에 제출한다. 국토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강행에 주민 불복종운동도 그대로다. 채 기자도 관련 보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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