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분당 차병원에서 신생아가 사망했지만 의료기록을 조작하는 등 이를 은폐한 혐의로 의사들이 구속됐다. 같은해 강남 한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받다 환자가 사망했는데 CCTV를 확인해보니 의사들이 수술실을 비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선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수술하다 환자가 뇌사로 사망했고, 같은해에는 성형외과 전신마취 수술 중 의료진이 환자를 성희롱한 녹취가 공개됐다.  

이에 환자단체들은 이런 의료계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는 반발했다. CCTV를 설치하면 위험한 수술을 피하게 되고 아무래도 수술실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으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해 오히려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하지만 CCTV는 환자 보호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2017년 국정감사에는 한 대학병원 교수가 제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문제가 됐다. 원래 주치의가 아니었는데 대리 수술한 사실도 함께 지적됐다. CCTV 도입 요구가 커지면서 경기도의료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의료진과 환자 등의 동의를 받아 CCTV를 설치했다. 이를 토대로 경기도, 경기도의료원 등의 주관으로 30일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경기도가 지난 9월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19세이상 경기도민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91%로 나타났다. 수술받을 때 CCTV 촬영에 동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87%가 동의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불신에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불신을 걷어내는 일이 필요하다”며 “의사와 환자 동의하에 촬영할 것이기 때문에 인권침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CCTV로 본 수술실. 사진=노컷뉴스
CCTV로 본 수술실. 사진=노컷뉴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멀리서 광각으로 CCTV를 촬영해 수술의 구체적인 장면이 보이지 않고 누가 있는지 정도를 촬영했다”며 “과거에 있던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료원 운영실적을 보면 지난해 10월 환자들의 CCTV 촬영 동의율이 53%였는데 지난달은 85%까지 오르는 등 7개월 평균 66%(전체 수술건수 1192건 중 791건)의 환자가 촬영에 동의했다. 5월부터 경기도는 수술실 CCTV 설치를 도의료원 산하 6개병원으로 확대했다. 

시민단체도 CCTV 설치를 환영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현재 CCTV는 보편화 돼 있어 국민이 불안하거나 인권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되려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도 같은 입장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인도 영리 목적의 무자격자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등 인권 침해 유혹이 있다”며 “의료인이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CCTV를 설치해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실을 기록하는 시스템은 외국에도 있다. 태원준 국민일보 논설위원의 지난달 27일자 칼럼을 보면 캐나다 토론토의 세인트 마이클스 병원은 수술실에 ‘블랙박스’가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로 수술 전 과정을 녹화·녹음한다. 수술실 블랙박스는 의료사고 예방을 위해 만들었고 데이터를 이용해 수술환경을 개선하기도 한다. 블랙박스는 CCTV보다 훨씬 자세하게 수술실을 기록하지만 더 나은 수술을 위해 의료진이 먼저 도입한 장치였다. 

CCTV. 사진=pixabay
CCTV. 사진=pixabay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시험 볼 때와 같이 집중하고 있을 때 누가 보고 있다고 인식을 하면 긴장을 하게 마련”이라며 “CCTV를 설치하면 수술하는 의료진을 위축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의료진을 감시하면 점점 의사들이 수술을 피하게 될 것이고, 수술을 하더라도 소극적으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은 “의료인에 대한 의심과 감시는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며 “수술실에 불신이 가득찬 CCTV 의무화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록한 CCTV 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도 반대 논리다. 이 이사는 “정보유출을 걱정 말라고 하는데 주로 정보관리자가 아니라 해킹에 의해 정보가 유출된다”며 “원치 않게 해킹으로 신체부위나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발간한 이슈리포트를 보면 개인정보 유출 오남용 사례 중 해킹 유출이 52.3%에 달했다. 관리소홀로 노출된 비중은 6.8%였다. 

이 이사는 “의료사고 증거를 목적으로 하려면 수술과정을 정밀하게 찍어야 한다”며 “몇 가지 의혹 사건이 있다고 해서 온 국민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록은 10년을 보관해야 하는데 그 어마어마한 정보는 어떻게 관리하고 (정보 관리와 CCTV 설치 등) 비용문제는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수술실에 CCTV 설치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발의 하루 만에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공동발의자 절반이 철회하면서 법안이 폐기됐다. 며칠 뒤 15명 의원의 동의를 받아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그러자 의학계는 30일 성명을 내 반대 입장을 다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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