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16·17 사번 아나운서 10명은 회사와 싸우고 있다. 이들 지위는 특별하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MBC에 입사했지만 신분은 1년 단위 계약직이다.

이들은 지난해 회사로부터 계약만료 통보를 받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판정을 내리며 회사에 제동을 걸었다. 최승호 MBC 사장은 노동위 처분에 행정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법원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 판결에 앞서 지난 5월13일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보전하는 가처분을 인용했다. 10명 가운데 가처분을 제기했던 7명의 아나운서들은 지난 27일부터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출근하고 있다. 그러나 아나운서 업무는 받지 못하고 있다. 배치된 곳도 기존 아나운서국이 아닌 별도공간이다. 회사 게시판과 이메일 접속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MBC 직원인 걸 확인할 수 있는 건 통장에 찍히는 월급 정도다.

29일 오후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를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 휴먼에서 만났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으로 비정규직 등 노동 전문이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 휴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 휴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 계약직 아나운서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아나운서 분들이 먼저 찾아오셨다. 비정규직 사건을 많이 맡았고 민변 활동을 하고 있어 절 찾으신 게 아닌가 싶다. (사건에 앞서) 아나운서들 기록을 쭉 읽었다. MBC는 분명 잘못했다. 계약 갱신기대권이 발생한 것 같았고, 해고 절차도 석연치 않았다. 해고 동기도 정무적 판단에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노동인권을 고려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증거들을 더 꼼꼼하게 살펴보니 명확했다. 법원도 기각을 시키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계약 갱신기대권’이 쟁점이었는데 용어가 생소하다. 쉽게 설명하면?
“기간제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정당하게 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기대를 부여받았을 때 생기는 권리다. 계약 갱신기대권이 발생한 기간제 노동자의 노무를 회사가 형식상 계약 만료를 이유로 거부할 수 없다. 계약 만료를 이유로 쫓아내면 형식은 계약 해지일지 모르나 실질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부당해고가 된다. 갱신기대권 효과는 이전 근로관계와 동일하게 계약이 갱신된 걸로 간주한다. 통상 기간제 근로자 최장 사용 기간은 2년이다. 소송을 진행하는 중 계약기간 2년이 초과되곤 하는데 이 때문에 승소 시 실제 효과는 대부분 정규직 전환이다. 기간제법을 보면 2년을 초과한 뒤에도 기간제 근로자를 계속 사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즉 정규직 근로자로 간주한다고 돼 있다.”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부당 전보와 퇴사 등으로 부족했던 인력을 한시로 보강하려고 채용했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계약해지는 규정에 따랐다고 주장한다.
“쟁점을 보면 크게 채용, 신입사원 교육, 아나운서 업무 등으로 나뉜다. 먼저 채용에선 정규직 아나운서 채용 때와 차이가 없었다. 면접시 질문도 ‘여러분의 20년 후 MBC에서의 모습을 이야기해보라’, ‘장기적으로 MBC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나’ 등 정규직 아나운서에게 묻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기간제 근로자에게 이런 질문을 할 필요는 없다. 면접부터 계약 갱신기대를 갖게 했다. 계약직 아나운서 선발 당시 경쟁률은 1700대 5 정도였다. 1년짜리 계약직을 뽑기 위해 1700명에 달하는 지원자를 받고, 4~5차에 이르는 채용절차를 거쳤다고? 상당한 비용이 든다. 계약직 근로자를 1~2년 사용하려고 뽑는 절차라고 보기엔 그 규모가 방대하다. 2012년 파업 당시 MBC가 시용 인력을 알음알음 뽑았을 때와는 다르다.”

-업무에서 봐도 기존 아나운서와 차이점이 없나?
“이들은 기존 아나운서들과 아나운서국에서 함께 근무했다. ‘16사번’, ‘17사번’ 등 사번도 부여됐다. MBC 스스로 대외 홍보할 때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신입 아나운서’라며 3년 만에 선발된 신입 아나운서들 소식을 사보에 실었다. 정규직 아나운서를 뽑은 것처럼 대외적 외관을 갖췄다. 업무도 같았다. 정규직 아나운서가 신입사원일 때 담당하는 MBC ‘우리말 나들이’ 등도 거쳤다. 심지어 급여 체계도 같았다. 무기 계약직만 해도 정규직 일반직과 급여 체계가 다르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MBC의 정규직 일반직과 급여 체계, 방송비 등 받는 항목이 모두 같았다. 급여 내역서 양식도 똑같았다. 무엇보다 업무 중 아나운서국장이나 관련 인사권자들이 ‘너희는 정규직이다’, ‘형식적 계약서에 구애받지 말라’, ‘너희는 우리 후배다’라며 반복적으로 확신을 줬다. 인사권자의 언어적 확신 부여다. 대법원이 인정하는 계약 갱신기대권 지표에 다 들어맞는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는 지난해 4월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특별채용 전형을 실시했고, 그 결과에 따라 근로관계를 종료했기에 문제일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16·17사번 계약직 아나운서 11명 가운데 특별채용된 이는 단 한 명이었다.
“MBC 취업규칙을 보면, 계약직 근로자를 특별채용으로 정규직 전환하는 규정이 있다. 특별채용은 업무 성과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계약직 아나운서에겐 업무 평가는 없었다. 단지 신입사원 채용과 같은 시험을 봤을 뿐이다. 법원은 MBC가 말하는 특별채용에 ‘MBC 취업규칙에 나와 있는 특별채용 절차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른바 ‘특별채용’을 시행한다는 사실도 PD 등 타 직군과 달리 인사팀을 통해 공지 받지 못했다.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앞으로 평가 시험이 있을 거라는 언질 정도였다. MBC는 아나운서들이 이런 채용 방식에 동의했다고 주장하지만 평가를 진행할 거라는 회사 설명 앞에 다른 토를 달긴 어려웠다.”

-5월27일 첫 출근했지만 가처분을 신청한 7명의 아나운서는 별도공간에 배치됐다. 예상했나?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창조컨설팅 같이 반노동 법률 자문을 주로 하는 노조 파괴 자문 단체나 유성기업, KEC, 발레오처럼 반노동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회사에서 쫒아내려고 고사시키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까. 창고 같은 곳으로 격리하거나 전산망을 차단하고, 업무를 주지 않고, 근태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최승호 MBC 사장이 이런 방법까진 하지 않겠지 생각했다. 왜냐면 2013년 MBC 아나운서들이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해 이겼을 때 바로 복직했기 때문이다. 별도 공간에 격리되지 않았다. 아나운서국에 정상 배치됐다. 라디오 프로그램도 했다. ‘적폐’라고 이야기하는 시절인데….”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했던 5월13일 회사 반응은 어땠나?
“법원 결정이 나온 날 사측이 내게 전화했다. ‘어떻게 하실 계획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결정문대로 이행하면 아나운서들은 출근한다’고 했더니 ‘회사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임금은 지급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나운서들에게 물어보니 출근 의지가 강했다. 그들은 MBC 아나운서 일을 하고 싶은 거다. MBC 돈 받으려 소송하는 게 아니다. 일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거다. 커리어로 보면 한창 일할 나이에 단절되면 사람은 피폐해진다.”

-MBC 조치가 법률적으로 문제 없는 것 아닌가?
“법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올 7월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시행된다. 그러면 이 문제는 저촉된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정서 문제가 있다. 일부 독자나 대중 여론을 봐도 그렇다. ‘적폐’라 불리는 경영진이 채용했다. 그 때 정규직 아나운서들은 비제작부서로 배제됐다. 아나운서국은 어느 조직보다 그 피해가 컸다. 그런 사실이 주는 감정이 누구도 이 문제에 쉽게 나서지 못하게 하는 요인 아닐까 생각하는데?
“전적으로 이 사람들 책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승호 사장에게 적폐청산 기대가 크다는 거 잘 안다. 최 사장도 일정 부분 강박이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정작 2012년 파업 때 채용된 시용기자 청산은 못했다. 비정규직 아나운서들만 계약 만료라는 명분으로 괴롭힘 당하고 있다. 적폐청산의 타깃이 잘못됐다. 지지부진한 시용기자 청산에 비판 성명을 냈던 노조가 계약직 아나운서 문제에 침묵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비제작부서로 배치됐다가 MBC 정상화 국면에서 복귀한 아나운서나 구성원에겐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껄끄러운 감정이 가지는 이들을 이상한 존재라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런 감정, 물론 들 수 있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은 구 경영진의 구조적 악행으로 향해야 한다. MBC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지원한 청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다 묻는 것은 가혹하다. 서로 성찰이 필요하다. 한번 차분히 돌아봤으면 한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갖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정당한지. 감정이 껄끄럽다고 부당하게 해고해선 안 된다. 노조 지도부가 용기를 내셔야 한다. 최 사장도 적극 나서 설득해주길 바란다. 앙금은 대화와 설득,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 계약직 아나운서도 비판받을 점이 있다면 받아야 한다. 공론에서 해결할 것이지 지금처럼 부당해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 휴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 휴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 파업 언론인들과 연대 차원에서 2016~2017년 아나운서 채용에 지원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 일부에선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느냐는 지적도 한다. 결국 본인이 선택한 일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런 말과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가혹한 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당시 지상파 3사 공채가 안 나온 지 오래됐던 시기다. 잘 아시듯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언제 공채가 나올지 모르는데 언론 자유를 위해 아나운서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나이와 외모 등은 중요한 변수라 한 해만 지나도 그들의 잠재적 몸값은 뚝 떨어진다. 대부분 오래 준비한 이들이다. 실제 지원을 포기하는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존경한다. 다만 그런 분들은 극소수다. 그분들을 존경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를 벌할 수는 없다. 평범한 사람들을 벌주는 게 진보는 아니다. 그런 이들을 보듬고 이해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타파하는 게 개혁이고 진보 아닌가.”

-왜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비정규직으로 파업에 참여한 이들을 존경한다. 그렇다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적폐’로 간주하는 건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하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정규직과 같은 방식의 시험을 치러 어렵게 뽑힌 만큼 파업이라는 태풍 앞에서 불안감이 매우 컸다. 차라리 기회비용이 적었다면 고민을 덜했을 것이다. MBC 입사 전의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안정’을 포기하고 온 이들이었다. MBC에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고뇌, 언론 자유에 복무해야 한다는 고뇌, 양자 사이에서 번민했다. 분명한 것은 파업하면 계약직들은 해고 위험에 놓인다는 사실이다. 무턱대고 파업에 불참했다고 이 사람들을 욕할 수 없다. 이들의 고뇌와 번민이야말로, 구 경영진이 아나운서를 계약직을 뽑은 이유다. 그 비열한 술책을 비난해야 한다.”

-이 사건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어떤 이유일까?
“보편 인권 개념이 우리 진보·개혁 진영 안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리트머스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MBC는 노동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어떻게 최승호로 대표되는 MBC 경영진이 노동권을 선별로 적용할 수 있나. 인권감수성이 결여된 진영논리의 종착은 총과 칼을 든 전쟁일 수밖에 없다. 쪽수와 힘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거하지 말자고 헌법을 만든 것이다. 법리적 괴롭힘을 계속한다면 역풍을 피할 수 없다. ‘진보입네 하는 너희들도 위선자’라는 비난이다. 과거 블랙리스트 논란 때와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자 권리는 누구나 인정받아야 하는 보편적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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