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 위기의 본질은 고부가가치로 산업 진화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그 결과 지난해 상장기업 7곳 중 1곳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못 대는 좀비기업이 됐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대응은 정책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집권 2년차부터는 혁신성장이란 구호 아래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 대규모 토건사업과 재벌중심의 신성장동력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민주노총이 29일 오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 평가와 총선 의제 기획토론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이 29일 오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와 총선 의제 기획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이정호 기자
민주노총이 29일 오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와 총선 의제 기획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이정호 기자

이 자리에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규제 완화로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모델은 개도기 시대의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6년 5~6월 전국 제조업체 2400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의 절반(49.9%)이 지금의 수익원은 사양화 단계라고 답했다. 한국 제조업의 핵심인 자동차만 해도 2013년 10.4%였던 현대·기아차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불과 4년 뒤 2017년엔 5.0%로 급격히 떨어졌다.

박상인 교수는 “구체적 사례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는 산업은행이 부담을 털어내기 위해 현대중공업을 끌어들였다는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얻는 이익보다 불이익이 더 크다. 두 초대형 조선사의 합병은 조선 기자재 산업의 수요독점으로 협력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가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광주형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이는 결코 새로운 일자리 창출 모델이 될 수 없다. 가격경쟁력 상실과 스마트자동차로의 혁신이라는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모형이다. 무엇보다도 노사상생협의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맹점을 지적했다.

박상인 교수는 정부 역할의 대전환을 요구했다. 재벌 중심의 경제블록화를 해소해 공정경쟁과 혁신의 기틀을 제공해야 한다.

박 교수는 재벌개혁과 새로운 산업정책 수립을 위해 “노동계가 시민사회와 손잡고 ‘경제구조 고도화 위원회’를 구성해 정치권과 정부에 구체적 개혁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왼쪽부터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박상인 서울대 교수,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사진=이정호 기자
왼쪽부터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박상인 서울대 교수,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사진=이정호 기자

토론자로 나선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우리 자동차 부품사 수가 과도하다. 미국은 연 1200만대 생산하는데 부품사가 5800여 개인데 한국은 연 466만대 생산하는데 부품사가 1만 981개나 된다. 우리 자동차 산업은 이미 구조적 과잉상태다. 순차적인 퇴각을 고심해야 할 단계”라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밀어붙이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부영 지부장은 현대차노조를 포함한 노동계에도 “저숙련 고임금 체제에서 고숙련 고임금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노사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2부 발제에 나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대선 때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모든 정당이 공약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재계와 보수언론의 주장과 달리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 폭은 지나치게 빠른 인상이 아니라 예상한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유선 이사장은 “최저임금 공세는 지난해 서울경제가 4343건, 아시아경제 3082건씩 기사를 쏟아내 경제신문이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김 이사장은 “최저임금 인상만으론 소득주도 성장이 불가능해 재정지출 확대와 소득재분배, 경제민주화 등을 병행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미 올해부터 최저임금 속도조절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김 이사장은 취업자 증가세 둔화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보수언론의 지적에 “취업자 증가세 둔화는 이미 2013년 11월 이후 계속돼왔다. 따라서 2017년 이후 현 정부 들어 둔화된 게 아니다”고 했다. 자영업자 감소 역시 2012년부터 감소세를 유지해 왔기에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이 주범일 순 없다.

자영업자 가운데에도 직원을 고용하지 않은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직원을 고용해온 자영업자는 오히려 늘었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은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영향과 무관한다.

김 이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축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고용에 미친 영향은 연구결과에 따라 엇갈린다”고 해석했다.

김 이사장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컨트롤 타워 부재 속에 변화와 개혁보다는 단순 유지 관리로 돌아섰는데, 이런 전략을 통해 지지층 확대를 노리는 듯하지만 사실은 지지층 이탈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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