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1도1사’란 언론정책 하나만으로도 만고의 독재자다. 1개 시·도에 1개 신문만 있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덕분에 6공화국 초기 1988년 11월 언론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청문회 화두는 ‘5공 언론 적폐 척결’이었다. 국민적 요구도 높았다. 

그러나 1989년 봄 문익환 목사 방북을 계기로 지리멸렬하던 적폐 세력이 반공에 기대어 기지개를 폈다. 적폐 언론은 1989년 현대중공업 사태를 계기로 과거의 위세를 회복했다. 당시 언론의 노동보도는 기업주 의견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공안당국의 협조자로 기능했다. 데스크의 장난이 돋보였다. 연조가 짧아 현장 취재에 능하지 않은 기자를 골라 울산에 보냈다. 현지 송고기사는 ‘참고용’일 뿐, 데스크 책상 위엔 현대그룹이 전해준 자료가 수북이 쌓였다. 현지 취재진들은 현대그룹이 제공한 호텔에 묵으면서 술과 음식을 접대 받았다. 

언론은 민주노조운동을 노조 싸움으로 몰아갔고 파업의 파괴성과 폭력성만 부각시켜 공권력 투입의 정당성만 키웠다.

동아일보 1987년 8월27일 1면.
동아일보 1987년 8월27일 1면.

노동은 취재하기 어렵다. 노동만의 문제도 아니고 해당 산업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업 보도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1987년 대우조선만 해도 기업주가 협상보다 언론을 이용해 신규 노조집행부를 고립시키는데 주력했고 모든 언론은 이를 충실히 따라 김우중 회장은 손쉽게 이겼다. 김 회장은 옥포관광호텔을 기자들에게 무료로 내놓고 숙식을 제공했다. 

대우조선은 경찰 개입과 최루탄 난사에 따른 이석규씨 죽음이란 악재에도 언론 덕에 승기를 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제 현장에서 노사 중재에 나섰지만 기업주를 대변하는 언론 앞에 무력했다. 공안권력은 이 과정에서 성가시게 구는 노무현 변호사를 구속시키기까지 했다. 기자들 중 일부는 농성장에선 노조간부를 회유하고 밖에선 기관원과 만나는 낯뜨거운 장면도 연출했다. 협상타결 뒤 호텔을 떠나는 기자들에겐 대우의 ‘봉투’가 하나씩 건네졌다. 

1988년 겨울 울산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중공업도 노조와 대화보다 언론플레이에 열중했다. 현대중공업은 기자들에게 다이아몬드호텔을 내주고 무료 숙식을 제공했다. 덕분에 신문 헤드라인엔 ‘장기 노사분규, 산업마비’ 같은 제목이 걸렸다. 1989년 1월8일 괴한이 석남사와 해고노동자 사무실을 습격해 식칼테러를 벌였는데도 보도한 곳은 한겨레신문 정도이거나 단신 처리했다. 현대중공업 서태수 노조위원장은 1988년 12월18일 조합원 의견도 묻지 않고 회사와 직권조인하고 잠적했다. 노조는 잠적한 위원장을 대신해 이원건 부위원장을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뽑고 울산시에 노조 임원변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시청은 이를 반려해 버렸다. 바로 옆 미포조선에선 노조설립신고서를 탈취하고, 경찰이 대낮에 현대중공업 직원 기숙사에 난입해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면서 단순가담자까지 650명을 연행했지만 언론은 침묵했다. 

1989년 2월21일. 현대중공업은 파업중이던 조합원들에게 총무부직원과 경비대를 동원해 식칼로 등과 옆구리를 마구 찔러 피바다로 만든 테러를 자행했다. 일명 ‘식칼테러’를 당한 진아무개씨는 중태에 빠졌고 박아무개씨 등 여러명도 중상을 입고 해성병원(현 울산대학교병원)으로 긴급호송되어 수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홈페이지
1989년 2월21일. 현대중공업은 파업중이던 조합원들에게 총무부직원과 경비대를 동원해 식칼로 등과 옆구리를 마구 찔러 피바다로 만든 테러를 자행했다. 일명 ‘식칼테러’를 당한 진아무개씨는 중태에 빠졌고 박아무개씨 등 여러명도 중상을 입고 해성병원(현 울산대학교병원)으로 긴급호송돼 수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홈페이지

대신 기자들은 호텔 방에 앉아 직접 현장을 확인취재한 것처럼 회사가 불러 주는대로 출근율을 키웠다. 52%, 62%, 82%, 92% 마치 회사의 홍보실처럼 최선을 다했다. 

정확히 30년이 지나 다시 현대중공업 노사갈등이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몇 년 동안 조선업 불황을 틈타 고졸 정규직 여직원과 간부들을 구조조정했다. 현장직원들은 순환 휴직시켰다. 급기야 노조의 반발에도 4개 회사로 분할하는데도 성공했다. 이번엔 대우조선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31일 주주총회에선 법인 분할도 추진한다. 직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 당연한 목소리가 우리 언론에겐 잘 들리지 않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