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이 원하는 건 목격자들의 번복되는 증언 속에서 죽음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달라는 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

“2016년까지 3년동안 성수역과 강남역, 구의역에서 김군을 포함해 스크린도어 노동자 3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고 3년, 단 한 명의 죽음도 없었습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노동자 정당당씨)

구의역 김군 3주기와 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가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앞에서 열렸다. 이날은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군(19)의 3주기이자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추락사한 고 김태규(25)씨의 49재가 되는 날이다.

시민들이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가 끝난 뒤 고 김태규씨에게 헌화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시민들이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가 끝난 뒤 고 김태규씨에게 헌화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120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날 문화제에 참가해 김군과 태규씨를 추모했다. 김군의 동료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와 태규씨의 누나,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등은 “더 이상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성화고 졸업생인 태규씨는 수원의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지 3일째 되던 지난달 10일 5층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숨졌다. 김씨가 탄 엘리베이터는 사람 탑승이 금지돼 있었고, 규정과 달리 건물 바깥을 향해 문이 열린 상태로 작동했다. 고층작업에 필요한 안전대와 안전망은 없었고, 회사는 안전모와 안전화, 안전벨트를 지급하지 않았다.

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경찰이 동생의 죽음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실족사로 단정한 뒤 유족을 배제한다고 했다. “태규가 절벽에 가서 뚝 떨어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요. 우리 가족은 태규의 피가 채 마르지 않은 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름 동안 조사해야 했습니다. 목격자는 태규가 8시14분에 떨어졌다고 증언했지만, 7분 빨리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해 다시 보니 해당 기록은 지워지고 21분 119 신고만 남아 있었습니다. 태규가 떨어진 경위도 목격자마다 다릅니다. 고용노동부는 수사 중이라 이야길 나눌 수 없다고 회피합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지난달 10일 숨진 김태규씨의 누나 도현씨가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지난달 10일 숨진 김태규씨의 누나 도현씨가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도현씨는 “누군가의 가족이 이렇게 죽고나서 진실이 감춰질 걸 생각하면 태규의 죽음은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다”라며 “유가족들이 바라는 건 진실이 밝혀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함경식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경기건설지부 사무국장은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인 절대공사기간과 불법 다단계하도급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보건에 참여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추모제 한쪽에는 지난해 12월 김용균씨가 숨진 뒤 현재까지 산재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연을 적은 팻말이 무대 앞에서 뒤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김용균씨가 숨진 뒤로만 해도 5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고 했다.

28일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 한쪽에는 지난해 12월 김용균씨가 숨진 뒤 현재까지 일하다 숨진 일용이나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연을 적은 팻말이 무대 앞에서 추모제 맨 뒤까지 이어졌다.
28일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 한쪽에는 지난해 12월 김용균씨가 숨진 뒤 현재까지 일하다 숨진 일용이나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연을 적은 팻말이 무대 앞에서 추모제 맨 뒤까지 이어졌다.
28일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28일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모두가 이제 갓 스무살이 넘은 청년들이다. 아이들의 꿈은 온데간데 없고, 유가족 모두가 평생을 아파하며 죽을 때까지 깊은 한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참으로 억울하다”며 입을 열었다.

김미숙씨는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 생명따윈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자본이 청년들을 죽였고, 이에 정치인들이 합세해 죽였고, 그것을 알고도 방관한 정부기관들이 죽였다. 수많은 억울한 죽음이 나라에 의해 생기고 가려져온 사실을 아들이 죽고 난 뒤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며 “또다른 김군과 김용균, 김태규를 마주치지 않으려면 기업의 산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본부장은 “산안법 개정안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 비판 받았는데, 정부는 부족한 법안마저 후퇴시키는 하위법령을 발표했다”고 했다. 김미숙씨는 “영국과 같이 중대기업처벌법을 제정해 기업이 큰 잘못을 하면 큰 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8일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가 끝난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고 김태규씨의 누나 도현씨를 안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28일 열린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가 끝난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고 김태규씨의 누나 도현씨를 안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가 28일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가 끝난 뒤 동생에게 써 붙인 메시지. 사진=김예리 기자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가 28일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가 끝난 뒤 동생에게 써 붙인 메시지. 사진=김예리 기자

추모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태규씨에게 헌화하고 게시판에 청년노동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써 붙였다. 김미숙씨는 동생 태규씨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붙이며 눈물을 흘리는 도현씨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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