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가운데 그가 영화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52시간 근로를 준수한 것이 화제다. 

봉준호 감독은 ‘씨네21’ 인터뷰에서 52시간 근무제를 긍정하고 이에 따른 제작비 상승에도 “좋은 의미”라고 했다. 봉 감독은 “내 예술적 판단으로 근로시간과 일의 강도가 세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다. 이제야 정상화돼 간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화 현장에서 52시간 근무제 준수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정착되는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있다. 

전국영화산업노조(위원장 안병호)는 영화 스태프 임금 체불 문제와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안병호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안 위원장은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계약서를 체결하거나 52시간을 준수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한 건 2014~2015년 정도”라며 “봉 감독이 이를 언급하고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 이례적이긴 하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일부 영화감독들은 근로시간 준수가 창작력을 발휘하는 데 불편하다고 이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만 언급해왔다”며 “봉 감독의 현장만 52시간 근무제가 지켜진 건 아니지만 봉 감독 발언은 유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감독이 이렇게 대놓고 발언한 적은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스태프들이 백날 52시간제를 이야기해도 큰 화제가 되지 않던 것이, 유명 감독이 이야기하니 이렇게나 주목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몇몇 기사는 마치 봉 감독이 이런 상황을 다 만든 것처럼 느껴지게 써있기도 해서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봉 감독처럼 발언한 사람은 드물었으니 긍정적이다.” 

다만 안 위원장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 사전 준비를 하는 미술팀 등 일부 스태프들은 여전히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현장에서 사용하는 근로 계약서도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반영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안병호 위원장(왼쪽)과 이상길 수석부위원장. 사진출처=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안병호 위원장(왼쪽)과 이상길 수석부위원장. 사진출처=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

 

안 위원장은 “일부 매체는 봉 감독이 ‘표준근로기준법’을 지켰다고 보도했는데 용어를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근로기준법과 표준근로계약서 이야기를 동시에 하면서 그런 보도가 나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화산업노조는 2005년 설립 이후 영화계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실제 적용된 것은 2014년 이후부터였다. 약 10년의 간극이 있었다. 

2012년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CJ ENM, CGV, 영화산업노조,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을 맺었다. 2014년 3차 노사정 이행협약 주요 내용은 4대보험 적용,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영화산업단체협약 준수와 임금체불 등으로 분쟁 중인 제작사의 투자 및 배급, 상영 금지 등이다. 이 협약 이후 일부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등이 현장에서 적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현장에서 지난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턴키 용역 등을 해왔고 그 관행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노사정 협약을 체결하면서 영화 제작 시 근로계약을 맺고,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협약 주체에 투자사도 포함됐다. 투자사가 제작사에 이런 사항들을 준수해야 한다고 하니 투자사 돈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들도 비로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이 협약이 제대로 적용된 사례로 영화 ‘국제시장’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전에도 일부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근로계약서 체결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긴했지만 다수의 스태프들이 적용받은 것은 국제시장 현장부터라 보도가 많았다. 최근에는 일부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 등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근로계약을 맺는다.”

안 위원장은 영화 현장이 바뀐 것처럼 방송 현장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영화에서 투자자들이 제작사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라고했던 것처럼 방송사가 나서서 제작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방송할 수 없다고 외주제작사 등에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제작사와 계약을 맺을 때 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방식 등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은 내달 20일 영화 스태프의 근로자성 확인 재판에 관심을 촉구했다. 안 위원장은 “2017년 임금을 체불한 영화를 상대로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 위반을 이유로 소를 제기했다. 사용자 측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스태프들을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에서는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나왔다. 2심에서도 이 같은 판례가 확립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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