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지난 3월15일(현지시간) 이슬람 사원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 추정 남성이 범행 장면을 SNS에 실시간 중계했다. 그는 범행 직전 자문자답 형식으로 “폭력과 극단주의를 게임 등에서 배웠느냐”고 묻고 “포트나이트가 날 킬러로 훈련시켰다”고 답하는 듯하더니 “아니다(NO)”라고 덧붙였다. 강력 범죄가 벌어지면 폭력 성향의 게임과 연결 짓는 언론보도를 미리 조롱한 퍼포먼스였다. 포트나이트는 지난 2017년 출시한 슈팅게임으로 전 세계 2억명이 이용하는 인기 게임이다. 

국내 언론은 엉뚱하게 이를 보도했다. “뉴질랜드 총격 참사 용의자 훈련시켰다는 게임 ‘포트나이트’ 무엇?”(한국경제 3월15일), “‘킬러로 훈련시켰다’ 뉴질랜드 테러 추정범이 언급한 ‘포트나이트’는?”(파이낸셜뉴스 3월15일), “49명 사망 뉴질랜드 총격참사 용의자 킬러로 훈련시킨 ‘포트 나이트’”(서울신문 3월15일) 등 총기난사의 원인을 게임 ‘포트나이트’로 규정했다. “게임하듯 범행 ‘17분 생중계’” 등의 표현으로 게임과 범행을 구분하지 않는 보도도 쏟아졌다. 

지난 3월15일 뉴질랜드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게임 '포트나이트'로 보도한 매체들.
지난 3월15일 뉴질랜드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게임 '포트나이트'로 보도한 매체들.

유튜브 크리에이터(G식백과) 김성회씨는 28일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팩트체크 없이 이렇게 보도할 수 있는 건 게임을 나쁜 것, 만만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강력범죄가 벌어지면 다 게임 탓을 하게 되는 상황, 즉 게임을 쓰레기통으로 활용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해당 토론회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제11차 국제질병 표준분류기준 개정안(ICD-11)’을 통과하자 열렸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게 된 배경과 분류할 경우 일어날 부작용을 지적했다. 한국은 ‘한국 표준질병 사인분류(KCD)’에 게임을 질병으로 넣을지 결정해 2025년 KCD를 개정하게 된다.  

김씨는 지난 21일 관련 주제로 진행한 MBC ‘100분토론’을 보고 “절망했다”며 “10년전 아침마당에 프로게이머 임요환씨가 나와서 중독자 취급받던 때에서 (사회의 인식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이날 100분토론에서 한 패널은 ‘게임이 정권의 비호를 받아 컸다면 이제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김씨는 “게임 개발자로 업계에 20년 넘게 종사했지만 한 번도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내 직업을 얘기한 적 없다”며 “게임개발하면서 공무원들 상대하다 더러워서 관두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 게임이 만만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프로게이머 임요환. WHO에 따르면 그 역시 질병에 걸린 환자 취급을 받을 수 있다. ⓒJTBC 화면 갈무리
프로게이머 임요환. WHO에 따르면 그 역시 질병에 걸린 환자 취급을 받을 수 있다. ⓒJTBC 화면 갈무리

이날 토론회에선 과학적으로 게임중독이 질병이라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다수였다. 전영수 건국대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은 “(임상)현장에서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중독됐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중독을 분류하는데는 가족 내 친밀감이 낮은 등 개인의 심리사회적 측면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하거나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않아서 게임을 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게임을 해서 친구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난다. 강경석 콘진원 게임본부장은 “매년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과몰입 실태조사를 하는데 과몰입률은 3% 미만으로 나온다”며 “2014년부터 5년간 청소년 2000명을 추적조사를 했는데 과몰입군에서 일반군으로, 일반군에서 과몰입군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빈번했고 5년간 과몰입군에만 있던 이는 1.4%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강 본부장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이를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 게임과몰입 학생들 뇌에 구조적인 변화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 압력으로 이런 결정이 났다는 주장도 있다. 게임이용장애 권위자인 크리스토퍼 퍼거슨 미국 스텟슨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WHO에 압력을 가했다”는 WHO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며 이를 중국과 한국으로 꼽았다.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는 “플라톤 시대에도 연극·희극이 태만을 유발한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미디어를 폭력의 원인으로 보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관련 학계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의 주 원인을 부모의 양육태도로 본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실 등이 28일 국회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열어 WHO 결정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실 등이 28일 국회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열어 WHO 결정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결국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분류하겠다는 것은 아주 일부의 문제(약 1~2%)를 잡기 위해 국가와 의료계 등이 나서 규제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임상혁 게임법과정책학회장(변호사)은 “보건복지부도 전체 게임인구의 1~2%만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는데도 곳곳에서 비판 입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법을) 제한적으로 행사해야한다는 과잉금지 원칙(비례원칙)을 위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디까지 게임중독으로 볼지 모호한 것도 문제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중독이라면 금단증상, 내성 등을 충족해야 하는데 게임은 몰입기간이 짧고 진단기준에 금단증상과 내성이 없다”며 “게임 대신 등산·자전거타기 등을 넣어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임업계 뿐 아니라 학계와 공공기관 등은 오는 2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를 꾸려 보건복지부 항의 방문, 국회의장 면담 등을 추진하며 대국민 여론전을 병행할 예정이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6월 중으로 게임이용장애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 질병코드 도입을 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게임을 문화·놀이로 봐야 한다며 WHO 판단에 비판적인 문화체육관광부 주장에 “WHO의 국제적 통계 기준을 국내에 도입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과 치료하는 게 핵심”이라며 “게임중독과 게임산업육성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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