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에서 처참히 망가졌다는 국민의 비판을 받은 공영방송이 촛불 혁명으로 탄핵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과연 ‘정상화’됐을까. 공영방송을 망친 부역자로 지목된 이들의 퇴진과 ‘언론 적폐 청산’을 위해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파업과 투쟁은 승리로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KBS·MBC 등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은 교체됐지만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조직문화와 관행, 수익성 악화와 방송사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구조적 적폐는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지난달 초 강원도 산불이 확산하던 긴급 상황에서 외려 다른 방송사들보다 늦게 특보로 전환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방송 부재, 고성군 화재 생중계를 강릉시에서 허위로 보도하는 등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MBC는 지난 3월18일 메인뉴스 뉴스데스크 확대 편성 등 개편 첫날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이자 강제추행 사건의 핵심 증인 윤지오씨를 인터뷰하면서 뉴스 앵커의 무리한 질문과 요청으로 논란을 빚었다. 결국 다음 날 앵커는 뉴스데스크 오프닝 멘트에서 윤씨와 시청자에게 공개 사과했다.

지난 2017년 9월2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가 총파업 25일차 결의대회에서 고대영 사장 퇴진 피켓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2017년 9월2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가 총파업 25일차 결의대회에서 고대영 사장 퇴진 피켓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는 지난 25일 충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광장 촛불 그 후, 언론의 변화를 묻는다’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기획섹션 발제에서 지금도 언론 스스로 언론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고, 이런 조직과 관행이 바로 ‘적폐’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강사는 “지배구조가 바뀐 언론사 또한 여타 언론사와 다른 시선과 기준으로 평가를 받을 수 없으며, 되레 높은 기대 수준과 이전 정권 시기 언론 적폐와의 비교라는 더욱 강한 평가 기준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다”며 “파업과 적폐청산을 지지했던 시민과 시청자에게 이후 어떤 개혁과 혁신을 추진할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 강사는 “이사나 사장 등 한 개인의 자격에 맞춰진 적폐 청산은 개혁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든다. 개인의 자격과 행적에 대한 시비가 길어질수록 조직의 문제는 은폐되기 쉽기 때문”이라며 “언론사에 정치권과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사장을 교체하고 인사권을 휘두르는 ‘언론장악’보다 더 치명적인 경우는 조직의 문제가 무엇인지 규명되지 않은 채 사장 등 핵심 인사들이 교체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11월13일 오후 4시께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파업 71일차 결의대회를 진행하던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 사장 해임안 가결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2017년 11월13일 오후 4시께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파업 71일차 결의대회를 진행하던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 사장 해임안 가결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또 최근 공영방송 등 일련의 논란들이 가져올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언론사뿐 아니라 언론 종사자가 독자나 시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지금보다 더욱 회피하면서 폐쇄적 조직문화에 안주할 경우라고 내다봤다.

김 강사는 “예컨대 재난 방송의 매뉴얼을 만들 때 언론사는 방송통신위원회 비롯한 관련 기관의 지침만 기다릴 뿐 해당 피해 지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다른 재난을 겪었던 시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었는지 의문”이라며 “‘대통령과의 대담’(KBS)에서도 시민의 목소리는 몇 분짜리 편집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소재였을 뿐, 질문을 만들고 진행 방식을 기획할 때 시청자위원회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저널리즘에서 시민의 참여는 의견의 제시가 아닌 보다 높은 수준의 관여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참여한 보도와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단순한 평론과 비난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시민 참여의 형식에 대한 과감한 실험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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