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구글에 ‘여자 아이’를 검색해보세요. 왜 우리나라 일부 아동복 쇼핑몰 여자 아이 모델은 짙은 화장을 하고 성인모델 포즈나 시선, 표정을 따라하고 있는 걸까요? 더 심한 경우 성적인 대상처럼 그려지기도 합니다.”

한 아동복 브랜드 쇼핑몰이 사업을 시작하며 페이스북에 게시한 카드뉴스 메시지다. 5월10일 개업한 ‘라디루비’(Radiruby)라는 아동복 브랜드는 페이스북 페이지 첫 게시물을 이와 같은 카드뉴스로 시작했다. 

카드뉴스에는 “백인 아이처럼 생길수록 귀여운 거고 말라야 모델을 할 수 있어. 성인 모델을 잘 따라해야 힙한 거야”라고 말하는 이 사회 목소리에 반기를 들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아동복 브랜드 '라디루비'의 카드뉴스. 출처=라디루비 페이스북.
아동복 브랜드 '라디루비'가 제작한 카드뉴스의 일부. 전체 카드뉴스는 라디루비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 출처=라디루비 페이스북.(@radirubyofficial)

미디어오늘은 5월24일 아동복 브랜드 라디루비의 공동창업자 제충만씨를 만났다. 라디루비는 제씨가 아내 이주홍 디자이너와 함께 만든 브랜드다. 라디루비는 빛과 루비(보석의 일종)의 합성어다. 루비같이 그 자체로 보석인 아이들의 빛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브랜드 뜻을 설명하며 제씨는 “진짜 보석에는 색을 칠하지 않는다”고 했다.       

라디루비는 아동복 제작 시 과도한 장식과 불편한 실루엣 대신 아이들이 뛰어놀기 편한 옷을 주로 만든다. 촬영할 때도 아이들이 편안한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했다. 

제씨는 브랜드를 만들기 전 시민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6년간 일했다. 제씨는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옹호팀에서 아동학대나 체벌을 반대하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강조했다. 

언론에 나오는 ‘동반자살’이라는 말에 문제를 제기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는 ‘동반자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건 가운데 부모가 아이를 살해했을 경우 ‘동반 자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언론사에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해왔던 그가 아이들을 ‘어른 미’의 잣대로 보지 말고, 자연스러운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자는 신념을 갖고 아동복 브랜드를 만든 일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제충만씨. 사진=정민경 기자.
5월24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제충만씨. 사진=정민경 기자.

그는 브랜드를 만든 계기를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아이들의 주관적 행복감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며 “아이들의 행복감이 낮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자유 시간이 없고 외모에 불만족한다는 것. 자유 시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할 때 ‘놀이터를 지켜라’라는 캠페인을 했다. 아이들이 외모 불만족 때문에 불행할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시기가 맞아 아동복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아동복 디자이너인 아내 덕분에 아동복 쇼핑몰을 살펴보던 그는 자신의 직장이었던 시민단체에서 자주 보던 아이들 사진과 일부 아동복 쇼핑몰 사진의 구조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시민단체의 사진에서는 아이들의 주체적 모습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쇼핑몰들은 아이에게 어른들의 미적 기준을 그대로 투영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기도 했다. 화장을 과도하게 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보이게 만들거나 혹은 너무 귀여운 모습만 강조했던 곳도 있었다. 외모 불만족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과 아내의 창업에 대한 생각이 더해져 두 사람 모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라디루비를 만들게 됐다. 

“최근 세계적 패션 브랜드들은 환경 친화적 행보를 보이거나 플러스사이즈 모델 고용 등 사회적 메시지를 받아들여 홍보하는 추세다. 한국 아동복에서는 이런 메시지가 적다고 느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브랜드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위적 모습을 강조하며 소비를 끌어내지 말자는 문제 제기와 함께 실험을 하고 싶었다.”

라디루비의 아동복 화보들.
라디루비의 아동복 화보들. 사진출처=라디루비 홈페이지. (https://radiruby.com/)

이 때문에 아동복 촬영 시에도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나게 노력했다. 제씨는 “아이들은 스튜디오에 처음오면 낯설 수 있다. 낯선 공간에서 수많은 옷을 갈아입으며 어른들이 시키는 포즈를 취하는 방식으로 촬영하지 않으려 했다”며 “‘놀 권리’를 주제로 강연을 나갔던 유치원에서 만났던 부모님들이 섭외를 도와줬다. 첫 화보 콘셉트가 ‘삼총사’였는데 마침 그 유치원에 삼총사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작가님에게 친한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뛰노는 모습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뛰어다녀서 옷이 지저분해지거나 주름지기도 해서 ‘(패션 화보면 옷이 예뻐보여야하는데) 이런 식으로 촬영해도 판매가 될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제씨는 “패션의 전통 문법이 대상을 멋지게 보이게 해서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인데, 우리 브랜드는 그런 문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서 생존이 고민되기도 한다”면서도 “정말 두렵지만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우리 메시지에 공감하고, 옷 자체에도 매력을 느껴 많은 구매를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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