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에게 기습시위는 절박함이다. 그러나 대개는 항의 받는 자와 충돌 강도를 다룬 소식으로 흘러가버린다. 비판보다 아픈 건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일에 목소리만 높인다는 냉소다.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해찬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이 ‘민주주의 순례의 길’ 출정식을 하던 중, ‘과격하게’ 기자회견장을 들이닥친 시각장애인과 부모들과 당사 안으로 들어간 이 대표 모습이 보도됐다. 김성환 의원(당대표 비서실장)과 이재정 의원이 수십 분간 이들 목소리를 듣고 만남의 자리를 주선한 상황이 전해진 뒤에는 ‘경청’이란 덕목을 지킨 의원들 칭찬이 보도됐다.

물론 설명은 있었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라는 단체가 ‘가짜 등급제 폐지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는 짤막한 문장들. 문재인 정부가 장애인들의 숙원이었던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다는 데 왜 ‘가짜’라며 분노하는지 충분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당 행사 현장을 찾아가 목소리를 들어달라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 관계자들과 면담이 성사됐으니 기대할 만한 효과를 얻을 거라 볼 수는 있는 걸까.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강윤택 대표를 그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울 동작구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23일 만났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강윤택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 사진=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강윤택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 사진=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난해 처음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으로 ‘돌봄필요도 조사’가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 요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고 심지어 시각장애인들이 받는 서비스가 기존보다 9시간 감소하는 걸로 나타났다. 당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련) 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충격 받았다. 안 보여서 겪는 어려움, ‘터치’ 장비를 사용 못해 식당에서 주문을 못한다든지, 낯선 데서 일상생활과 이동이 어렵다든지 등 평가 문항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복지부에 제안했다. ‘돌봄’ 필요도 조사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애들이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자 복지부는 이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로 이름만 바꿔서 성인용·아동용을 배포했다. 시각장애인 대상 서비스가 엄청 늘었다고 자랑했는데, 정작 문항은 하나도 안 바꾸고 배점만 조금 바꿨더라. 한시련은 기존 서비스 대상자들이 탈락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복지부 입장을 수용했지만,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복지위원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관련 기관들을 만나고 설득했고, 연대가 꾸려졌다. 현재까지 20여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다. 요구는 딱 하나다. 시각장애인의 장애 특성과 필요를 반영한 문항을 만들어내는 거다.”

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6등급의 장애 등급을 폐지하되,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종합조사는 기능제한, 사회활동, 가구환경 영역 등 총 36개 평가지표로 구성됐다. 지난 4월 복지부는 588명에게 이를 모의적용한 결과 기존 2등급의 경우 서비스 급여 시간이 55시간, 3등급은 27시간이 늘어난다는 사례도 공개했다. 모의적용 결과 기존 이용자 중 탈락자는 13%, 대부분이 시각장애인이었다. 복지부는 시각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6.33시간 증가한다고 밝혔지만, 강 대표는 이것이 “완전한 통계적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작년에는 탈락자에게 0시간 주던 걸 앞으로는 2년 동안 45시간 주고, 활동지원서비스 등급을 4단계에서 15단계로 세분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항은 그대로다. 이건 동정이지 권리를 보장해주는 복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배변하기’ 항목이 있는데, 시각 장애인은 휴지를 찾기 힘드니까 점수를 좀 더 주겠다는 식이다. 나는 불빛도 안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사람 치고 엄청 안 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전화 사용’의 경우, 음성 기능 이용해서 문자 메시지도 잘 쓴다. 그런데 못한다고 해야 점수를 받는 거다. 실제 우리가 홀로 못하는 것들을 쓰다 보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불이 나면 연기가 난다는 건 아는데 어디서 나는지 모른다. 어디서 불 났는지 알아야 피할 수 있지 않나. 5cm 턱만 있어도 엄청 발목을 삔다. 다른 장애인은 다 되지만 안 보여서 못하는 것만 따져도 엄청 많은데 어떻게 거짓말을 강요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나. 이런 굴욕적인 문항은 받을 수 없다는 거다.”

복지부가 발표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 사진=시각장애권리보장연대
복지부가 발표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 사진=시각장애권리보장연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가 대안으로 제시한 종합조사표 항목. 사진=시각장애권리보장연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가 대안으로 제시한 종합조사표 항목. 사진=시각장애권리보장연대

 

복지부는 지난 4월 종합조사가 부실하다는 보도에 해명하며 “장애계 의견수렴, 전문가 연구, 시범사업 등을 거쳐 종합조사표를 마련하였으며, 향후 장애특성 반영을 위한 제도개선·보완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 대표는 그러나 “완벽한 거짓말이다. 민관협의체를 꾸렸다고 했는데 그 안에 시각장애인단체가 들어가 있지도 않다. 또 협의체가 합의해서 선택하는 권한이 있는 조직도 아니다”라며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것인데 진행과정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당사자 목소리를 들었다는 건 완벽한 사기다.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반영을 해야지. 전시용 조직 만들어 전시용 협의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연대는 지난 20일 복지부에 현행 성인 종합조사표 대안으로 시각장애인 종합조사 도구안을 제안했다. 보행, 배변, 이동 등의 항목 대신 ‘건물 내 보행’과 ‘집 근처 산책’, ‘낯선 장소에서 화장실 위치 확인’, ‘대중교통 수단(버스·지하철 등) 이용’ 등으로 구체화한 항목들이 담겼다. 일상생활동작, 수단적 일상생활동작, 인지행동특성으로 나뉜 기능제한 항목은 보행, 정보접근, 일상생활 지원, 대인관계 지원 등으로 재분류했다. 복지부가 당장 7월부터 종합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시각장애인연대는 “시각장애 특성과 필요를 반영한 종합조사가 마련될 때까지 비인권적이고 모욕적인 종합조사 적용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종합조사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습시위를 한 이유는.

“연대를 구성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면담을 요청해왔다. 민주당 의원 중 연락오는 분들도 있었는데 ‘복지부가 시각장애인들이 서비스 하향만 없다면 문항 자체는 괜찮다고 했다’면서, ‘7월까지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의원을 만나면 해결하겠다는 답도 나와야 하는데 바뀔 가능성이 없어 만남은 어렵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다급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해찬) 대표에게 알릴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이 모였는데 아침에 활동보조를 해줄 분들도 없었고, 우리와 가줄 사람들은 엄마들 밖에 없어서 어머님들과 청년들이 같이 가서 시위를 했다. 그나마 민주당이 제일 이 문제에 관심 보이는 것 자체는 아니까 미안함도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당시 시위 이후 “처음에 기사가 많이 났는데 목소리를 제대로 전해주는 분들이 거의 없었다. 기습시위에만 초점을 맞췄다. 자막을 이상하게 단 데도 많아서, mbn이나 TV조선 같은 데에는 수정을 요청했다”며 “이해찬 대표가 봉변 당하고 도망갔다고만 초점을 맞춘 보도들이었다. 그래도 김성환 의원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약속한 것들은 지켜서 27일에 만남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1일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 기습시위 소식을 다룬 TV조선 보도(왼쪽)와 22일 MBN 보도 갈무리.
21일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 기습시위 소식을 다룬 TV조선 보도(왼쪽)와 22일 MBN 보도 갈무리.

강 대표는 “정부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노력 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부족하고 실수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안 들리고 안 보이는 분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은 고민도 안 되는 것 같다. 복지부에서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깽판’쳐서 목소리를 내는 것만 듣지 말고, 서비스·정책·제도적 지원이 많이 필요한 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고민해주면 제대로 된 개인맞춤형 복지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처음 목소리를 내는 거다. 꼭 받아들여져서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고, 언론에서도 이걸 그냥 ‘마음씨 좋은’ 국회의원들이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정책에 반영되도록 촉구해주길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당부했다.

강윤택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 사진=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 사진=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한 시각장애인이 기타를 들고 강 대표 방문을 열었다. 강 대표는 웃으며 “지난번 시위에 참여했던 ‘나쁜 장애인’ 중 한 명”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은 늘 착해야 하는데, 우리는 ‘나쁜 장애인’들”이라는 것. 그는 평소 언론이 장애인을 다루는 극단적 사례들을 지적했다.

“장애인 삶을 언론이 다룰 때 대부분 감동이나 극복 스토리를 전한다.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물론 감동도 있지만 대부분 장애인들은 평범하다. 훌륭한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 사람들이 겪는 걸 봐야 장애를 볼 수 있다. ‘슈퍼’(super) 장애인들은 나와 너무 동떨어진 얘기다. 또 하나는 너무 불쌍하게 보는 거다. 장애인도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쾌감과 만족을 느끼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불쌍하고, 더듬고, 흘리고 이런 모습에만 관심을 갖는다. ‘심금’을 울려줘야 하니까. 장애인의 삶은 거기서 또 왜곡된다.”

강 대표는 5년 전 서울 용산역에서 발생한 시각장애인 추락 사고를 떠올렸다. 2014년 9월20일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시각장애인이 발을 헛디뎌 철로에 떨어졌던 사건. 강 대표는 “그때 언론은 처음에 시각장애인이 자살을 하려고 뛰어들었다는 추측을 전했다. 실제로는 친구를 만나려고 기다리다가 스크린도어가 없어서 떨어진 거다. 장애인은 너무 괴로워서 자살만 하려고 생각하는 줄 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기 전에 으레 ‘그럴 거다’ 생각하고 보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재활’이 아닌 ‘자립’ 패러다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활은 의사·물리치료사·상담사 등이 장애인을 환자·내담자·클라이언트 입장으로 수직적 관계에서 ‘너는 아무리 수술·훈련시키고 상담해도 재활 안 되니까 시설에서 살고 너는 자립해 살면 되겠다’고 보는 거다. 자립생활 패러다임은 동료 입장에서 활동지원서비스 이용해봐, 함께 놀러가자며 정체성을 갖고 지역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끌어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안 보여서 책을 못 읽으면 음성·점자 책자 주는 것, 턱이 있어 휠체어 이동이 안 되면 경사로를 만들어 길을 내면 되는 것이다. 재활은 신체손상에 주목하고, 자립은 이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재활패러다임을 버리고 자립생활패러다임으로서 접근해야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손상된 인간’으로 밖에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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