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SKT는 “SK 텔레콤-서울시, 5G와 AI로 완전자율주행 시대 앞당긴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SK텔레콤과 서울시가 ‘자율주행 시대를 위한 정밀도로지도 기술 개발 및 실증 협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다.

SKT는 “양측은 시내버스·택시 1700대에 5G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를 장착해,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C-ITS) 실증 사업 구간의 HD맵 실시간 업데이트 기술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도로시설물 관리시스템과 교통안전서비스 개발 등에도 나설 계획”이라며 “5G ADAS는 차선 이탈 방지 경보, 전방 추돌 방지 기능 등을 갖춰 운전자의 안전 운전을 돕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SKT는 ADAS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근거로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BS) 분석에 따르면 ADAS를 장착한 차량은 93.7%의 사망 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공식 명칭은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다. 약자는 NTSB인데, SKT는 NTBS라고 잘못 썼다. 한국어 명칭으로 풀어썼기 때문에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지만 영문 약자로 보면 분명 틀린 명칭을 언론에 배포했다.

언론 보도는 어땠을까. ‘서울시 자율주행 NTBS’라는 키워드로 포털에서 검색한 결과 모두 68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SKT 보도자료를 검증 없이 따라 쓰다 보니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약자가 NTBS가 돼 버렸다. 통신사 기사도 예외가 아니다.

SKT 보도자료 일부.
SKT 보도자료 일부.

유일하게 똑바로 쓴 언론은 ‘서울신문과 문화일보’ 정도다.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업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언론의 관성이 만들어 낸 상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한 기자는 언론이 잘못된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받아서 오타를 낸 일반적 경우지만 하나같이 그대로 베껴 쓰는 문제를 기자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SKT도 뒤늦게 관련 표기가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관계자는 “국문 표기는 정확히 해놓고 영문 약자 표기는 쉽게 헷갈릴수 단어이고 생소한 기관이라 오타를 냈다. 보도자료 배포 후 인지했지만 혼선을 줄 수 있어 별도의 자료는 배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해프닝으로 넘길 순 있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누군가의 실수로 명기된 한 국가의 기관 약자가 수정되지 않으면서 공식화돼버린 측면이 있다. 잘못된 표기가 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포털에서 ‘NTBS’를 검색하면 이번 보도자료를 받아쓴 기사 뿐 아니라 과거 여러 언론 기사에 보인다. 가장 오래된 기사는 1997년 8월 연합뉴스의 괌 현지 특별취재반이 쓴 기사다.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 801편이 괌 공항에 착륙하려다 산중턱에 추락해 2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조사결과가 주목되는 시기였는데 연합뉴스는 부제에 NTSB라고 바르게 표기해놓고 정작 본문에서는 한 정치인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NTBS라고 표기했다.

1999년 기사에서도 “지난 97년 8월에 발생했던 대한항공 괌사고에 대한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최종보고서가 빠르면 3월께 공식 채택될 전망이다”라고 바르게 표기해놓고, 건교부 관계자의 말을 소개하면서 “당초 2월초에 워싱턴에서 최종보고서 채택을 위한 양국 정부간 실무회담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짐 홀 NTBS 위원장이 오는 11일 방한하는 바람에 순연됐다”고 잘못 표기했다. 심지어 KBS 방송 리포터에서도 제목은 ‘NTBS’라고 잘못 표기하고 본문에선 ‘NTSB’라고 표기했다.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 홈페이지.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 홈페이지.

이후 기사에서도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약자는 버젓이 두개로 쓰였다. 그러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 보잉777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류하던 중 활주로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은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가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NTBS’라고 잘못 표기해 보도했다. 언론이 혼용해 표기하다 2014년부터는 아예 ‘NTBS’라는 잘못된 약자만 표기했다. BMW 화재 사고나 테슬라 탑승 운전자 사망 사고 등 주요 교통사고에서도 여지없이 미국교통안전위원회를 NTBS로 표기했다.

SKT 보도자료 역시 과거 언론이 잘못 표기한 것을 참조하면서 ‘사고’를 냈고, 다시 언론이 받아쓰는 악순환이 재현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 기자는 “기업 홍보실에서 쏟아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쓰는 기자들 문화로 인해 웃지 못할 오타가 났다”며 “특히 기업 출입기자들이 홍보팀에 의존해 기사 쓰는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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