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있어선 안 될 일”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 유출 논란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통화내용 유출이 의도적 행위였다고 밝히며 엄중한 처벌을 예고했다.  

전직 외교부 장관인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도 지난 24일 CBS 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현직 외교관이 기밀 사항을) 대외적으로, 특히 정치권에 누설했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지적하는 등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어 언론들은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 통화 유출되면 어느 나라가 상대하겠나’ 제하의 사설에서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 유출은 경위가 어떻든 간에 잘못된 일”이라고 질타했다. 3급 국가기밀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마음대로 공개할 경우 생기는 국가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외교 기밀을 줄줄 흘리는 국가를 어느 나라가 믿고 깊숙한 이야기를 하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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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앙일보는 강효상 의원의 폭로에 “보수 성향의 전 고위 외교관과 같은 당 의원마저 ‘국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한 사실을 강 의원과 한국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한국당 측은 강 의원의 폭로를 놓고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 준 공익 제보 성격’이라고 감싸지만 이는 자기 편의주의적 해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치인들이 알 권리 등 온갖 구실을 대며 국가기밀의 중요성을 무시해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이런 악습을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야당이 제기한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기밀유출 의혹도 짚어 봐야 한다”고 여당 관계자의 책임론까지 끼워넣었다. 

정청래 “난 청와대 공개 내용 말한 것뿐”

이는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월8일 MBN 시사토크 프로그램 ‘판도라’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통화한 것을 로데이터(raw data·원자료)로 다 받아 봤다. 녹음이 아닌 녹취”라고 말한 걸 조선일보와 한국당 쪽에서 문제 삼은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정 전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은 내용은 방송 중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도 청와대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미정상 통화 관련 서면 브리핑 내용을 내려받아 확인했기에 그것을 토대로 얘기했다”면서 “양 정상 발언이 인용부호로 서면 정리돼 있었기에 이것을 ‘로 데이터’라고 표현한 것이지, 공개되지 않은 한미정상의 대화 내용을 나는 모른다”고 밝혔다.

결국 정 전 의원의 ‘로 데이터’ 발언은 시사 예능 방송의 재미를 위해 평소 자신의 식견과 유머를 가미한 문학적 상상력이었다는 해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내 단어 선택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빌미 삼아 강효상 의원이 저지른 외교기밀누설이라는 범죄에 물타기를 하는 것이 지금 한국당이 벌이는 수작의 본질이다. 가련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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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최근 외교부에서 기강해이를 보여주는 사고가 빈발한 것을 생각하면 이번 사건은 예사로 넘길 수 없다”며 “본분을 망각한 외교관은 엄중히 단죄해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강 의원의 기밀 유출을 두둔하는 한국당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정 전 의원이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예능프로그램에서 가볍게 한 말을 시비 삼아 위기를 넘기려는 모습이 우습다”며 “한·미 동맹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미국의 신뢰를 허무는 일을 하고도 이렇게 대응하다니 적반하장이 지나치다”고 질타했다.

이어 “강 의원과 한국당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번 사건의 본령은 누설될 경우 한·미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국가기밀을 거의 실시간대로 폭로한 것”이라며 “한국당은 더 이상 억지 주장을 펴지 말고 즉각 사과부터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강 의원을 출당해야 한다고 한 것을 경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신문 “노회찬 판례대로라면 강효상도 형사책임”

서울신문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강효상 의원에게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적용될지는 강 의원의 SNS 게시물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강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7일 정상 간 통화에서 나눴다는 대화 내용 일부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공개했다. 강 의원은 또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기자회견 사진과 보도자료 내용을 게재했다.

서울신문은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2005년 이른바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실명을 보도자료 행태로 공개했다. 대법원은 노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떡값 검사 명단을 올린 것은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결국 강 의원이 대화 내용을 페이스북에 게재한 행위가 면책특권 범위를 벗어난다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다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미 대사관 소속 외교관 K씨가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3급 기밀인 한미 정상 통화내용을 유출한 사건에 대해 강 장관은 업무상 과실이 아닌 고의적인 유출로 규정했다.

강경화 “고의적 유출, 용납 안 돼”

강 장관은 프랑스 파리 출장을 마치고 25일 오후 귀국해 ‘기밀을 유출한 해당 외교관이 강 의원과 짜고 폭로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쨌든 기밀을 대외적으로 유출할 때는, 그리고 여러 가지 1차적 조사를 봤을 때 의도가 없이 그랬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강 장관은 24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상간 통화라는 민감한 내용을 실수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흘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커리어 외교관으로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용납이 안 된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일보는 “강 장관이 언급한 ‘의도’는 일단 주미 대사관 소속 외교관 K씨가 단순 과실로 기밀을 유출했을 리는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20여년간 공직생활을 한 K씨가 강 의원의 행보를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측면에서 대화 내용이 공개될 것을 알면서도 진행한 고의성이 짙게 의심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일보는 “외교가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 정부 간 이견이 있다는 논란이 일자 K씨가 이에 대한 답답함을 강 의원에게 토로하면서 통화내용을 알렸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라며 “정부 정책과 K씨 생각과의 간극이 의도적 유출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K씨 뿐 아니라 해당 통화내용을 권한 없이 열람한 외교관, 그리고 조윤제 주미 대사 등 관리자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외교가 중론”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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