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의 공갈미수혐의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이 공갈미수혐의로 김씨를 기소할 경우 손석희 JTBC사장이 김씨에게 업무계약 등을 제안했던 대목은 공갈에 따른 수세적 대응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웅의 공갈미수’ 사건은 ‘손석희 배임 혐의 불기소 논란’ 사건이 되어버렸다. 조선일보가 경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손 사장의 배임 혐의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라며 관련 단독보도를 내는 식으로 이 사건의 의제를 선점한 결과다.
조선일보는 5월1일자 팔면봉 코너에서 “경찰, 손석희 ‘배임미수’ 혐의 털어줄 듯. 약점을 취업으로 무마하려 한 육성은 배칠수 성대모사였나?”라며 경찰 수사 과정을 조롱했다. 이 신문은 같은 날 “손석희에 폭행 혐의만…배임죄는 적용 않기로 가닥”이란 단독기사를 내고 경찰이 손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배임죄가 적용된다. 배임 행위가 미수에 그친 경우도 처벌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경찰은 내외부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당연히 적용돼야 할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았으니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논조였다.
이런 가운데 서울서부지검은 5월7일 손 사장의 폭행·배임 등 혐의를 수사 중이던 서울 마포경찰서에 수사를 보완해 사건을 송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다음날 5월8일자에서 조선일보는 “경찰, 손석희 배임혐의 적용 검토 때 민변 출신 연예 전문 변호사에 자문”이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이 사건 법리 검토 회의는 4월 초 열렸는데 서울경찰청 소속 로스쿨·사시 출신 경찰 3명과 외부 변호사가 참석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대한 자문을 구한 외부법률전문가가 민변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 법률지원단 활동을 했었다고 강조했다.
해당 변호사가 형사사건도 많이 맡았던 인물임에도 정부편향에 전문성마저 떨어지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틀 지으며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배임 부분에 대해 왜 불기소 의견으로 정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경찰의 수사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 실체를 알 수 없는 ‘법조계 의견’을 통해 배임 무혐의는 부당하다는 논조를 강화하는 대목이다.
5월10일, 조선일보는 “검찰 ‘손석희 사건 수사 부실’…경찰에 보완 지시”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예상대로’ 경찰수사가 부실했으니 검찰이 보완을 지시했다는 것. 이 신문은 “경찰이 손 대표의 배임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로 결론 내리고, 폭행혐의만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려 하자 검찰이 반려했다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러면서 또다시 쟁점은 ‘배임죄 적용 여부’라며 “법조계에서는 손 대표가 회사와 합의한 구체적 내용을 김씨 측에 전달했기 때문에 배임 미수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보도는 손 사장 배임 혐의를 논란으로 만들고, 대신 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김웅씨의 공갈미수 혐의를 뉴스수용자 대다수에게서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5월10일 미디어오늘에 “수사 전반을 보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사 지휘를 한 것이지 ‘전반적으로 부실하다’는 표현은 부적절하고 특정 혐의와 관련된 지휘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도 미디어오늘에 “통상 수사 기록을 검찰에 보내면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지휘가 있는데 이 사건도 그런 통상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갈등 관계를 지속 중인 경찰과 검찰의 긴장 관계를 부추긴 셈이었다.
5월14일, 조선일보는 “‘손석희 수사, 정권 눈치 본 판단’ 현직경찰이 공개 비판”이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이 사건 수사담당도 아니었던 충남 홍성경찰서 이아무개 경위가 12일 경찰 업무 포털 사이트에 “손 대표 사건에 민변 출신 변호사가 경찰 앞마당에 똬리 틀고 들어앉아 감 내놔라, 배 내놔라했다”고 적었는데 조선일보는 “이 경위 주장에 동조하는 글이 대부분”이라며 강조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서울시경 소속 간부가 답글을 달아 △자문회의에는 민변 출신 변호사뿐만 아니라 복수의 경찰관계자가 참석했고 결과는 참고사항에 불과했으며 △검찰 수사지휘는 사건의 사실관계에 관한 것으로 경찰의 법리판단에 검찰이 문제 삼은 건 아니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대목은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손 사장은 단순 폭행혐의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그러자 5월22일, 조선일보는 “손석희 수사 보강 지시받고도…경찰, 또 똑같은 결론”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경찰을 비판했다. 경찰은 조선일보에 “(배임) 실행 착수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배임) 미수로도 볼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날 조선일보는 팔면봉 코너에서 “권력에 설설 기는 경찰. 결국 손석희 배임 혐의 배제”라고 적었다.
이 사건 주요 대목은 김웅씨의 공갈미수혐의가 인정돼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씨가 △2017년 4월16일 접촉사고 논란 △소위 ‘동승자’ 주장 △1월10일 폭행 논란 등을 손에 쥐고 손 사장에게 취업을 요구한 행위를 경찰이 ‘공갈’로 인정했다는 점에 미뤄보면 손 사장의 용역계약 등 제안은 공갈에 따른 결과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또한 5월22일자 신문모니터 보고서에서 조선일보의 손 사장 관련 기사를 가리켜 “일반인 시각에도 손 사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 기자에게 JTBC 돈이 지급된 적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배임 미수’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김 기자의 공갈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간 제안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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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5월23일 조선일보는 “‘2년 계약’ ‘월수 1000만 원 보장’ 등 상당히 구체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배임 미수에는 해당 될 것”이라는 한 변호사의 의견을 실으며 여전히 ‘손석희 배임’에 지면을 할애했다. 이제는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을 향한 ‘압박’이다.
앞서 2월7일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손석희 논란, 그 참담함의 본질”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 방송사가 개인을 수호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비상식 앞에 몸이 떨려온다”고 적었다. 사주일가를 수호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조선일보 지면에서 등장할 문장은 아닌 것 같아 이 문장을 “한 신문사가 개인을 비방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비상식 앞에 몸이 떨려온다”로 바꿔 조선일보 편집국에 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