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의 공갈미수혐의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이 공갈미수혐의로 김씨를 기소할 경우 손석희 JTBC사장이 김씨에게 업무계약 등을 제안했던 대목은 공갈에 따른 수세적 대응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웅의 공갈미수’ 사건은 ‘손석희 배임 혐의 불기소 논란’ 사건이 되어버렸다. 조선일보가 경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손 사장의 배임 혐의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라며 관련 단독보도를 내는 식으로 이 사건의 의제를 선점한 결과다. 

3월1일 마포경찰서에 출석한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 ⓒ연합뉴스
3월1일 마포경찰서에 출석한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5월1일자 팔면봉 코너에서 “경찰, 손석희 ‘배임미수’ 혐의 털어줄 듯. 약점을 취업으로 무마하려 한 육성은 배칠수 성대모사였나?”라며 경찰 수사 과정을 조롱했다. 이 신문은 같은 날 “손석희에 폭행 혐의만…배임죄는 적용 않기로 가닥”이란 단독기사를 내고 경찰이 손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배임죄가 적용된다. 배임 행위가 미수에 그친 경우도 처벌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경찰은 내외부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당연히 적용돼야 할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았으니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논조였다. 

이런 가운데 서울서부지검은 5월7일 손 사장의 폭행·배임 등 혐의를 수사 중이던 서울 마포경찰서에 수사를 보완해 사건을 송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다음날 5월8일자에서 조선일보는 “경찰, 손석희 배임혐의 적용 검토 때 민변 출신 연예 전문 변호사에 자문”이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이 사건 법리 검토 회의는 4월 초 열렸는데 서울경찰청 소속 로스쿨·사시 출신 경찰 3명과 외부 변호사가 참석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대한 자문을 구한 외부법률전문가가 민변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 법률지원단 활동을 했었다고 강조했다. 

해당 변호사가 형사사건도 많이 맡았던 인물임에도 정부편향에 전문성마저 떨어지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틀 지으며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배임 부분에 대해 왜 불기소 의견으로 정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경찰의 수사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 실체를 알 수 없는 ‘법조계 의견’을 통해 배임 무혐의는 부당하다는 논조를 강화하는 대목이다. 

5월10일, 조선일보는 “검찰 ‘손석희 사건 수사 부실’…경찰에 보완 지시”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예상대로’ 경찰수사가 부실했으니 검찰이 보완을 지시했다는 것. 이 신문은 “경찰이 손 대표의 배임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로 결론 내리고, 폭행혐의만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려 하자 검찰이 반려했다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손석희 JTBC 사장. ⓒJTBC
손석희 JTBC 사장. ⓒJTBC

그러면서 또다시 쟁점은 ‘배임죄 적용 여부’라며 “법조계에서는 손 대표가 회사와 합의한 구체적 내용을 김씨 측에 전달했기 때문에 배임 미수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보도는 손 사장 배임 혐의를 논란으로 만들고, 대신 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김웅씨의 공갈미수 혐의를 뉴스수용자 대다수에게서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5월10일 미디어오늘에 “수사 전반을 보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사 지휘를 한 것이지 ‘전반적으로 부실하다’는 표현은 부적절하고 특정 혐의와 관련된 지휘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도 미디어오늘에 “통상 수사 기록을 검찰에 보내면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지휘가 있는데 이 사건도 그런 통상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갈등 관계를 지속 중인 경찰과 검찰의 긴장 관계를 부추긴 셈이었다. 

5월14일, 조선일보는 “‘손석희 수사, 정권 눈치 본 판단’ 현직경찰이 공개 비판”이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이 사건 수사담당도 아니었던 충남 홍성경찰서 이아무개 경위가 12일 경찰 업무 포털 사이트에 “손 대표 사건에 민변 출신 변호사가 경찰 앞마당에 똬리 틀고 들어앉아 감 내놔라, 배 내놔라했다”고 적었는데 조선일보는 “이 경위 주장에 동조하는 글이 대부분”이라며 강조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서울시경 소속 간부가 답글을 달아 △자문회의에는 민변 출신 변호사뿐만 아니라 복수의 경찰관계자가 참석했고 결과는 참고사항에 불과했으며 △검찰 수사지휘는 사건의 사실관계에 관한 것으로 경찰의 법리판단에 검찰이 문제 삼은 건 아니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대목은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손 사장은 단순 폭행혐의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그러자 5월22일, 조선일보는 “손석희 수사 보강 지시받고도…경찰, 또 똑같은 결론”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경찰을 비판했다. 경찰은 조선일보에 “(배임) 실행 착수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배임) 미수로도 볼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날 조선일보는 팔면봉 코너에서 “권력에 설설 기는 경찰. 결국 손석희 배임 혐의 배제”라고 적었다.

5월 중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한 '손석희 배임 혐의' 관련 기사들.
5월 중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한 '손석희 배임 혐의' 관련 기사들.

이 사건 주요 대목은 김웅씨의 공갈미수혐의가 인정돼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씨가 △2017년 4월16일 접촉사고 논란 △소위 ‘동승자’ 주장 △1월10일 폭행 논란 등을 손에 쥐고 손 사장에게 취업을 요구한 행위를 경찰이 ‘공갈’로 인정했다는 점에 미뤄보면 손 사장의 용역계약 등 제안은 공갈에 따른 결과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또한 5월22일자 신문모니터 보고서에서 조선일보의 손 사장 관련 기사를 가리켜 “일반인 시각에도 손 사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 기자에게 JTBC 돈이 지급된 적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배임 미수’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김 기자의 공갈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간 제안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5월23일 조선일보는 “‘2년 계약’ ‘월수 1000만 원 보장’ 등 상당히 구체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배임 미수에는 해당 될 것”이라는 한 변호사의 의견을 실으며 여전히 ‘손석희 배임’에 지면을 할애했다. 이제는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을 향한 ‘압박’이다. 

앞서 2월7일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손석희 논란, 그 참담함의 본질”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 방송사가 개인을 수호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비상식 앞에 몸이 떨려온다”고 적었다. 사주일가를 수호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조선일보 지면에서 등장할 문장은 아닌 것 같아 이 문장을 “한 신문사가 개인을 비방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비상식 앞에 몸이 떨려온다”로 바꿔 조선일보 편집국에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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