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4일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뿐만 아니라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입수해 공개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정 전 의원이 지난해 1월8일 MBN 시사토크 프로그램 ‘판도라’에 출연해 당시 청와대가 밝히지 않은 내용까지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조선일보는 “방송 4일 전(1월4일) 청와대의 서면 브리핑은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요약한 것일 뿐 정 전 의원이 말한 녹취나 로데이터로 보기는 어렵다”며 “당시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서면 브리핑한 내용을 보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 중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했다는 내용은 없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문제 삼은 부분은 정 전 의원이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통화한 것을 내가 로데이터(raw data·원자료)로 다 받아봤다”면서 “문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좀 평창 올림픽 기간에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니까 트럼프가 금방 들어줘요”라고 말한 부분이다.

하지만 함께 출연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정 전 의원에게 “녹음을 받았느냐?”고 묻자 정 전 의원은 “녹음을 받았다는 게 아니라 녹취(록)”라고 정정했다. 배철수 진행자가 “이거 2급 비밀 아니냐?”고 묻는 장면에선 ‘※이미 청와대에서 언론에 공개한 내용입니다’라는 방송 자막이 나갔다. 

지난해 1월8일 MBN ‘판도라’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해 1월8일 MBN ‘판도라’ 방송 화면 갈무리.

실제로 정 전 의원의 발언은 이미 청와대에서 서면 브리핑 등으로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게 모두 전달해 기사화된 내용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와 달리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더 이상 도발하지 않을 경우에 올림픽 기간 동안에 한미 연합 훈련을 연기할 뜻을 밝혀주시면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고 흥행에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께서 저를 대신해 그렇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 군사 훈련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되겠다”고 화답했다. 이는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에게 밝힌 내용이고, 이를 전한 언론 기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윤 전 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양국 정상은 평창 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양국 군이 올림픽의 안전 보장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이 방송에서 “(문 대통령이 말하기를)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 북한에 강경하게 나온 것이 결국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였는데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서 화해 제스처를 한 것은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다(라고 했다)”라고 한 부분도 청와대가 브리핑한 내용이다. 

윤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해 확고하고 강력한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 남북대화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월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두고 트위터에 “실패한 한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확고하고 강하며, 또 강한 의지로 북한에 우리의 모든 힘을 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남북 대화가 마련될 수 있었겠느냐”며 “바보들아, 하지만 회담은 좋은 거야(Fools, but talks are a good thing!)”라고 적었다.

이처럼 정 전 의원의 ‘공개했다’는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은 청와대와 언론에서 이미 전한 내용에서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강효상 의원을 외교상 기밀 누설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 정 전 의원의 발언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주장대로 정 전 의원이 정말 한미 정상 간 통화 녹취록 원본을 확보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사실은 명확히 확인된 데 반해 정 전 의원이 봤다는 녹취록 출처는 불명확하다. 정 전 의원이 방송에서 말한 내용도 ‘기밀’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편 정 전 의원은 현재까지 한미 정상 통화 녹취록 입수 의혹을 묻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있다.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24일 논평을 통해 “스스로 통화녹취 전체를 입수했다던 정 전 의원의 자랑은 합법이고, 청와대가 거짓말이라며 사실과 다르다고 했던 강 의원의 비판은 불법인가. 적반하장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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