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2000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시작하고, 2011년에는 ‘2022년까지 원전 제로’를 선언하는 등 ‘탈핵’ 정책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도 탈핵 정책을 시작했고 독일 모델은 참고할만 한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한국의 탈원전 정책은 독일의 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을 따라잡으려면 독일보다 긴 21년이 걸리고, 핵분열 발전(이하 원전)은 2022년까지 오히려 늘어났다가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가 수명을 다하는 2079년에야 원전 제로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원전 폐기에 걸리는 시간만 비교하면 독일의 6배에 이를 정도로 ‘과속’은커녕 점진적인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핵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언론들은 독일 탈핵 정책을 공격하면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좌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일부 언론은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의 독일 에너지 정책 관련 보도 ‘재생가능한 미래를 향한 길에서의 독일의 실패(German Failure on the Road to a Renewable Future)’(5월3일, Frank Dohmen‧Alexander Jung‧Stefan Schultz‧Gerald Traufetter 기자)를 왜곡했습니다. 이 기사를 인용해 독일 언론도 독일의 탈핵을 ‘실패’로 규정했다고 보도한 겁니다. 그러나 이는 기사 중 입맛에 맞는 부분만 취사 선택하여 기사 전반의 의도를 왜곡한 결론이었습니다.

독일이 탈원전 후회한다?

해당 슈피겔 기사를 인용한 보도들은 모니터 대상 언론 중 조선일보와 경제지에서 주로 다뤘고,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한 차례 언급했습니다. 한겨레는 5월15일 외부 칼럼에서 에너지전환포럼의 ‘가짜뉴스 바로잡기 보도자료/재생에너지 확대 과제 제시한 슈피겔지 보도, 한국의 에너지전환 발목잡는 기사로 둔갑’(5월9일)를 인용했고 5월17일 직접 다른 언론들의 주장을 팩트체크하는 기사 <독일이 에너지전환을 후회?…‘탈원전 가짜뉴스’에 갇힌 한국>(5월17일)을 냈습니다.

슈피겔 기사가 인용된 신문 기사 목록(5월8~17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슈피겔 기사가 인용된 신문 기사 목록(5월8~17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국내 언론들에 의해 왜곡된 독일 슈피겔 기사. 사진=슈피겔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국내 언론들에 의해 왜곡된 독일 슈피겔 기사. 사진=슈피겔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한겨레를 제외한 조선일보‧중앙일보‧서울경제‧한국경제는 모두 ‘독일 언론 독일의 에너지전환을 실패했다고 규정했다’는 식의 프레임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 ‘“200조원 쓴 탈원전, 값비싼 실패” 독일의 후회’(5월8일), 서울경제 ‘200조원 쏟아 붓고도 실패한 독일의 탈원전 교훈’(5월9일), 한국경제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 독일서도 비판 목소리’(5월8일) 등 보도 제목도 모두 비슷합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독일이 탈원전에 후회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묘사까지 동원했죠. 기사 첫 문장 역시 조선일보 “한국 정부가 탈(脫)원전의 모범으로 삼아온 독일에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경제 “독일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고 전기요금만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등 ‘독일 에너지전환이 실패했다는 평가’로 시작됩니다. 보도 내용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 촉구,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과제 제시 등 슈피겔의 근본적 취지는 외면하고 ‘비용 부담’, ‘전력 부족’ 등 ‘실패’를 뒷받침할 기사 일부 내용들만 강조됐습니다. 

슈피겔이 해당 기사에서 독일 ‘탈원전’ 정책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판의 초점은 국내 일부 언론들의 주장과 같이 ‘전기요금이 오르니 원전을 늘리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 전환이 너무 느리고 정책 의지가 없다’는 정반대의 취지였습니다. 이는 슈피겔이 에너지 전환이 실패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를 서술한 부분만 봐도 잘 드러납니다.

“통일 이후로 가장 큰 정치적 프로젝트였던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소위 ‘에네르기벤데’가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The so-called Energiewende, the shift away from nuclear in favor of renewables, the greatest political project undertaken here since Germany's reunification, is facing failure) 후쿠시마 이후 8년간 베를린의 총리를 포함한 독일 지도자 중 아무도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지 않았다.(In the eight years since Fukushima, none of Germany's leaders in Berlin have fully thrown themselves into the project, not least the chancellor) 입법자들은 법과 규제와 가이드라인들을 도입했지만, 누구도 에너지 정책을 조정하지 않았고, 정책에 속도를 붙인 사람은 더 없었다.(Lawmakers have introduced laws, decrees and guidelines, but there is nobody to coordinate the energiewende, much less speed it up.) 모두들 풍력발전소나 송전선로 설치가 필요할 때마다 유권자들이 반발할 것 만을 두려워하는 실정이다.(And all of them are terrified of resistance from the voters, whenever a wind turbine needs to be erected or a new high-voltage transmission line needs to be laid out.)”

한겨레 기자칼럼 ‘‘김진숙 지도’가 그린 별자리’(5월15일, 안영춘 기자)에서 지적했듯이 “‘채찍질’과 ‘박차 가하기’를 ‘제동 걸기’로 뒤집은”셈인 것이죠. 민언련에서는 언론들이 어떻게 슈피겔 기사를 왜곡했는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입맞에 맞는 부분만 취사 선택해 인용한 언론들

① 슈피겔이 지적한 전력부족 원인과 해결책

조선일보와 경제지들이 슈피겔 기사를 빌미로 특히 강조한 내용은 ‘독일이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겁니다. 

조선일보 ‘“200조원 쓴 탈원전, 값비싼 실패” 독일의 후회’(5월8일, 안준호 기자)는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 5년간 1600억유로 이상을 에너지 전환에 쏟아부었지만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치 않아 독일에는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고, 한국경제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 독일서도 비판 목소리’(5월8일, 정연일 기자)는 “슈피겔은 하지만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효율로 인해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슈피겔 기사 원문의 해당 대목을 찾아보면, 한국 언론들이 누락한, 핵심적 내용이 있습니다. 슈피겔은 우선 “독일은 에너지 딜레마에 빠졌다. 두 분리된 시스템이 평행선을 그린 채 유지되고 있다(Germany finds itself trapped in an energy dilemma, having grown used to maintaining two separate systems running in parallel.).(중략) 하나의 시스템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그 일은 비용이 더 들고 예측할 수 없게 되어간다.(But the longer it takes to shift from one system to the other, the more expensive and challenging it will become.)”고 비판했습니다. 슈피겔은 그 다음 대목에서 “만약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대되지 않는다면, 전력 부족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전력 부족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즉,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전환하지 않으면 전력 부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슈피겔의 의도를 한국 언론들이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력 부족이 발생해 독일 언론도 에너지 전환을 실패로 보고 있다’고 바꿔버린 겁니다. 

한국 언론들은 슈피겔이 제시한 전력 부족 우려에 대한 해결책도 배제했습니다. 슈피겔이 제시한 대책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도 추진하고 있는 소위 ‘수소경제’입니다. 슈피겔은 “수소는 새로운 에너지 환경의 중심 요소가 될 것이다. 수소는 어떤 해로운 연소물도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며, 무한한 양이 있다. 수소분자의 잠재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수년 전 수소 혁명이 이미 선포되었다. 그 때는 너무 시기가 일렀지만, 지금은 시기가 무르익었다.(Hydrogen will be an important element of this new energy environment. Hydrogen is an energy source that does not produce any harmful emissions and which is available in infinite quantities. The potential this molecule carries is well-known. Indeed, the hydrogen revolution was announced many years ago. It was too early at the time, but now, the time may be ripe.)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저장해서 재생에너지의 취약점을 보강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도 나옵니다. 즉, ‘재생에너지 때문에 전력부족이 일어난다’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시스템이 덜 성숙해서 전력부족이 일어난다’는 것이 슈피겔 기사의 요지인데, 국내 언론들은 이를 반대로 뒤집은 셈입니다.

② ‘모든 에너지 전환 비용’ → ‘재생에너지 비용’

슈피겔이 에너지전환의 ‘비용’을 언급한 부분도 한국 언론들에게 먹잇감이 됐습니다. 슈피겔은 기사 말미에 “시나리오대로라면, 2050년까지 비용은 총합 2조~3조4000억 유로가 들 것이다. 다른 예상에서는 5000만 유로부터 2조 유로까지 예측한다. 어쨌든, 에너지 전환 정책의 두 번째 부분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비용이 들고 힘든 일일 것이다(By 2050, the costs would add up to 2 to 3.4 trillion euros, depending on the scenario. Other forecasts fluctuate between 500 million and about 2 trillion euros. One way or the other, the second part of the Energiewende will be expensive and exhausting, a project as demanding as German reunification.)”라고 전했습니다.

슈피겔에서 에너지 전환 비용을 독일 통일 비용에 비유한 대목을 인용한 기사(5월8~17일)
슈피겔에서 에너지 전환 비용을 독일 통일 비용에 비유한 대목을 인용한 기사(5월8~17일)

 

이에 조선일보 ‘“200조원 쓴 탈원전, 값비싼 실패” 독일의 후회’(5월8일)는 ‘비용’과 관련된 언급들을 모은 문단에서 “슈피겔은 ‘2050년까지 탈원전‧탈석탄 목표를 달성하려면 약 2조~3조4000억 유로를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고 인용했습니다. 

서울경제 ‘독 탈원전 실패 위기에 처했다’(5월8일, 서정명 기자)는 기사의 맨 뒷부분과 도입부의 내용을 순서를 바꿔 붙여 놓았고 이 때문에 왜곡이 발생했습니다. 서울경제는 “슈피겔은 에너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했다면서 슈피겔 기사 맨 마지막 단락의 “에너지 전환 사업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비싼 프로젝트가 돼가고 있다”는 내용을 먼저 인용한 후 도입부의 “지난 5년 동안 에너지 정책 변환에 따라 에너지 비용은 1,600억 유로가 들었다”는 언급을 덧붙였는데요. 그러나 ‘독일 통일만큼의 비용’이라는 비유는 슈피겔이 누군가를 인용해서 나온 표현이 아닙니다. 또한 슈피겔이 도입부에서 언급한 ‘지난 5년 간의 에너지 정책 비용 1600억 유로’는 전문가가 아니라 독일 연방회계감사원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서울경제는 자신이 인용한 슈피겔이 무엇을 어떻게 인용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겁니다. 서울경제를 제외하면 한국경제의 인용문이 조선일보보다 약간 길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 바로 전의 문단이 빠져 맥락이 왜곡된 것은 같았습니다.

국내 언론들이 이렇게 인용한 슈피겔 기사의 마지막 문단 바로 앞에는 이런 대목들이 더 있습니다. 이를 보면 ‘독일 에너지 전환 실패’라는 프레임에서 해당 슈피겔 기사를 인용하가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특별히 하이테크 국가인 독일에서 2050년까지 에너지 시스템이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다. 연구, 전략, 설비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Technologically speaking, it's possible to make the energy system free of fossil fuels by 2050, especially in a high-tech country like Germany. Everything is ready: the studies, the strategies, the facilities.) 학술단체 ESYS는 어떻게 정치인, 경제계, 그리고 사회가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권고안을 내놓았다.(ESYS, the association of scientists, has formulated recommendations for how politicians, businesses and society can reach their goals.) ESYS에 따르면, 독일은 태양력과 풍력을 5배에서 7배로 늘릴 필요가 있고, 합성 연료를 에너지체계의 한 축으로 삼고 전 분야에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 ESYS의 예측에 따르면, 이런 전환에는 년간 GDP의 2%가 든다. 현재 기준으로는 약 700억 유로다.(According to ESYS, Germany needs to increase its solar- and wind-facility capacity by a factor of five to seven, make synthetic fuel a pillar of the energy system and introduce a CO2 tax in all sectors. According to ESYS predictions, the transformation would cost 2 percent of the country's annual GDP. Currently, that would be about 70 billion euros.)”

슈피겔지가 화석연료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한 것은, 기사에서 ‘첫 번째 에너지 전환’을 ‘재생에너지 도입’으로 보고, ‘두 번째 에너지 전환’을 재생에너지 저장 체계를 만들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에너지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피겔지가 비용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에너지 전환’입니다. ‘탈원전’보다는 ‘탈탄소’에 드는 비용이 중점이라는 것이죠. 이 역시 탈핵,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의 연장선인 겁니다. 이것도 국내 언론은 ‘독일 언론도 에너지 전환을 실패로 평가했다’는 정반대의 취지로 바꿔버렸습니다. 

③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비용 부담 때문에 실패했다

이처럼 슈피겔지의 비용 지적은 주로 탄소세와 탈 탄소 비용에 초점을 뒀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은 슈피겔이 기사에서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전기요금 부담’을 끼워 넣기도 했습니다. 

슈피겔 기사와 전기요금을 연관시킨 기사들 (5월8~17일)
슈피겔 기사와 전기요금을 연관시킨 기사들 (5월8~17일)

 

모두 ‘독일의 전기요금이 상당히 비싸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조선일보 사설 ‘한국이 따라가던 탈원전 독일, 스스로 ‘실패’ 판정’(5월9일)의 경우 전기요금을 근거로 “그런데도 국내 환경론자들은 독일 에너지 전환을 격찬하면서 본받아야 된다고 해왔다”며 ‘환경론자’들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경제 ‘“독일 탈원전, 통독만큼 비싼 비용”…전기요금만 올라 국민 불만 폭주’(5월8일)의 경우 아예 ‘독일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 받는 이유’ 중 우선적인 것으로 ‘전기요금 상승’을 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슈피겔은 오히려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슈피겔 기사 중 ‘비용 증가로 인한 국민 부담’이 언급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격을 높일수록, 통근자나 노후 건물에 사는 사람들, 비행기를 자주 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Either way, it's clear that the higher the price, the more people will be negatively affected: commuters, people living in older buildings, frequent flyers.) 2월에 열린 ESYS 컨퍼런스에서 경제부 산하 에너지 부서장인 소르스텐 헤르단 씨는, 정부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 다수가 이산화탄소에 더 많은 가격을 매겨야 한다고 하면서도, 만약 그게 실제로 영향을 끼칠 수준이 되면 갑자기 ‘신에 맹세코, 그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노란 조끼(프랑스에서 벌어진 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를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At the ESYS Conference in February, Thorsten Herdan, head of energy policy at the Economics Ministry, described the dilemma currently being faced by the government. He argued that although many are now pushing for higher CO2 prices, if you make them high enough to have an actual effect, people will suddenly say: "For God's sake, not that. Otherwise I'll put on a yellow vest.")

하지만 이것 역시 탄소세로 인한 화석연료비 인상에 관한 내용이지 재생에너지 관련 내용은 아닙니다. 슈피겔은 바로 그 다음 대목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것이 20년된 에너지 전환정책의 핵심 교훈인데, 정책 결정자는 시민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에너지 전환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야 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 어려운 과제인 에너지 전환의 두 번째 부분(서로 다른 분야에서의 지능형 망 연결)은 일반인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That's the core lesson of more than two decades of the Energiewende: Policymakers must ensure that people are on board. Voters must begin to understand what the transformation means for them and that it is vital that they change their behavior. Without sacrifice, it won't work. The second, more difficult, part of the Energiewende -- the intelligent interlinking of different sectors -- is bringing the Energiewende closer to ordinary people. It is influencing how and where people live, how they travel.)”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독일의 전기요금이 크게 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피겔이 전기요금 상승을 크게 부각하거나 ‘에너지전환 실패’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점점 하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럽연합통계국 통계(Statista 제공)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3년 이후로는 급격한 상승 없이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고 2018년 상반기에는 소폭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 자료(Power generation in Germany–assessment of 2017)에 따르면 독일에서 이미 재생에너지 가격(태양 : 31.55유로/Mwh, 풍력 : 27.97유로/Mwh)은 핵분열 발전(34.47유로/Mwh)보다 낮아진 상태이기도 합니다. 

꾸준한 ‘가짜뉴스’들

① 독일은 전력 수출국

일부 보도에서는 ‘슈피겔도 독일 에너지전환을 실패로 평가했다’는 스스로의 묘사를 등에 없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 <한국이 따라가던 탈원전 독일, 스스로 ‘실패’ 판정>(5월9일)에서 “(독일의) 2016년 전력 수입의 32%가 원전 국가 프랑스에서 온 것이었다. 자국의 전기가 모자랄 때는 프랑스의 원자력 전기를 가져다 쓴 것인데, 이게 무슨 탈원전인가”라고 비판했는데요. 

이처럼 독일이 재생에너지로 전력이 모자라서 이웃 나라 전기를 가져다 쓴다는 식의 주장은 오랫동안 꾸준히 제기된 허위정보입니다. 이는 독일의 전력 수출입 현황을 다룬 자료들을 보면 독일은 전력을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독일 라인-베스트팔렌 전기회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독일의 인접 국가별 전력 수출입 현황에서 수출은 총 45.35TWh(테라와트시), 수입은 32.97TWh입니다. 2018년 독일 순전력 수출량 역시 44.4TWh(수입 9.1, 수출 53.5)입니다. 조선일보는 이 전반적 수치의 일부인 ‘수입 전력 중 프랑스 비중’만을 가져와 마치 독일이 전기가 모자라 전력을 수입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륙국가인 독일이 프랑스 등 국경 인접국가와 전력을 교환하는 것은 아주 상식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송전선으로 전력을 운반할 때 전력 손실량은 송전선 길이와 정비례 관계가 있어, 전력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경과 상관없이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기준 독일의 인접 국가별 전력 수출입 현황. 출처=라인-베스트팔렌 전기회사 홈페이지
2017년 기준 독일의 인접 국가별 전력 수출입 현황. 출처=라인-베스트팔렌 전기회사 홈페이지

 

② 세계의 탈원전 추세

이미 수없이 허위정보로 지목되어 팩트체크 대상이 되어 왔던 ‘세계는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고 있다’는 주장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사설/한전 사상 최대적자... 이래도 탈원전 고집할 텐가’(5월15일)에서 “공약에 얽매이지 말고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결코 체면 깎이는 일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가 ‘17.11월 기준 세계원자력협회(WNA) 통계와 ‘17.8월 발표한 세계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를 인용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OECD 35개국 중 71%인 25개국이 원전이 없거나, 원전 제로화 또는 원전 감축을 추진 중이고 전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액 4,470억달러 중 66.7%가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사용되었고 원전은 3.8%에 불과했습니다.

중앙일보 사설에서 인용된 프랑스와 일본의 경우 역시 ‘한국식 탈원전’과는 거리가 먼 사례들입니다. 프랑스가 원전 비중을 70%에서 50%로 20% 감축하는 목표를 2025년에서 10년 늦췄다고는 하지만, 한국이 2030년이 되어도 원전 비중은 17년 30.3%에서 31년 23.9%로 10%도 줄어들지 않는다는(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점에서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닫았던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는 것이고, 그나마도 재가동 대상 중 매우 활동적인 활화산인 아소 산 영향권에 있는 이카타원전 등이 포함되어 있어 주민들이 반발(KBS뉴스 ‘‘원전제로’ 폐기 일, 이카타 원전 재가동…주민 반대 시위’(2016년 8월12일))하는 실정입니다.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을 생각하면 외교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전가동을 말려도 모자를 판인데 ‘탈원전 탓’을 하느라 무비판적으로 일본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오히려 에너지전환 앞장선 독일 녹색당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

슈피겔지를 인용한 모든 언론에서는 탈원전 방향에 대해 독일 국민들이 굉장히 반발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했습니다. 하지만, 슈피겔은 풍력발전소와 송전선 건설에 대한 지역주민 반대를 말했을 뿐 탈원전 그 자체에 대해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슈피겔 기사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면 명확해집니다.

“정치인들은 이 과제를 빠르게 국가적 관심사항으로 끌고 왔다. 환경문제의 선도자라는 것은 독일 국민 자부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독일인들은 한 때 핵 발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 수 있었다. (중략)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그 중 가장 큰 부분은 정치적 의지와 효과적인 경영의 부족이다. 독일 정부는 이 문제를 내팽개쳐 버렸다.(Politicians are quick to label projects as being in the national interest, but this one truly is -- especially given that environmental leadership has become a key element of German identity. A majority of Germans were once proud of the turn away from nuclear and toward renewables, a pride political leaders could have capitalized on.(중략) but for the most part there is a lack of political will and effective management. The German government has dropped the ball.)

즉, 독일에서 국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탈원전을 넘어 에너지전환을 강하게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는 독일 정당 지지율 변화로도 증명됩니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INSA 기준 탈원전 정책을 시작한 독일 녹색당(동맹 90)은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기 전인 1998년 선거에서는 단지 6.7%의 지지를 받았지만, 2019년 현재(5월 13일) 지지율은 19%로 기존 전통적인 야당을 모두 앞지르고 집권 기독교민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탈원전 왜곡이 계속되는 이유

슈피겔의 이번 기사는 독일에서 탈원전 다음 과제인 저탄소 사회 역시 재생에너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독일의 비전, 그리고 정책 과제를 잘 보여준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의 기사는 슈피겔이 보여준 깊은 통찰과 문제의식에 비하면 한숨이 나올 수준이었습니다.

한겨레는 ‘독일이 에너지전환을 후회?…‘탈원전 가짜뉴스’에 갇힌 한국’(5월17일, 최하얀 기자)에서 “전문가들은 국내외 에너지 정책을 두고 일부 언론이 엇나간 비판을 반복하는 이유를 ‘에너지 과소비 관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를 보면, 한국의 2017년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5.73toe(석유환산톤)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10toe에 견줘 40%나 많았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그마저도 계속 줄어드는데 한국만 증가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1천달러어치 부가가치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량(원단위)도 한국(0.16)은 오이시디 평균(0.08)의 두배다.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서울경제 관련 보도 이후 

한편, 얼마 전 서울경제가 독일 에너지분야 전문가를 인터뷰해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의 발언을 발언 취지와 정반대로 전해서 문제가 된 바 있습니다. 민언련에서 5월3일 최초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서울경제 측의 보고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검토한 이후 일부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기존 보고서를 수정 후 ‘왜곡 논란에 휩싸인 서울경제 독일 탈핵 전문가 인터뷰 보도’(5월9일)를 재송고했습니다. 

하지만 서울경제 강광우 기자 측은 기자협회보 ‘서울경제 기자 “며칠을 고민해 썼는데, 왜곡한 인터뷰라니”’(5월15일, 김고은 기자)를 통해 “절대 그분들이 하지 않은 말을 쓰지 않았고, 그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독자들에게 쉽고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며칠을 고심해서 썼다”면서 여전히 보고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에너지전환포럼에서는 15일 ‘바로잡기 보도자료/서울경제 독일전문가 인터뷰 논란’(5월15일)을 내고 서울경제의 이의제기 내용과 민언련 보고서를 다시 팩트체크했습니다. 보도자료에서는 민언련에 제보한 김성환 의원실, 독일 에너지 전문가, 서울경제와 주고받은 메일들도 모두 공개하였습니다. 긴 분량의 팩트체크를 살펴보면, 피셰디크 부소장이 기사의 많은 부분에 대해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확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맥락 왜곡이 없었다면 강광우 기자가 피셰디크 부소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거듭 정중하고 완곡하게 사과의 뜻을 전할 이유도 없었겠죠. 또한, 피셰디크 부소장이 강광우 기자의 해명 메일을 받은 후 김성환 의원실과 추가로 주고받은 메일에서도 피셰디크 부소장은 단순히 강광우 기자의 사과를 받았을 뿐이지 기사의 대부분에서 맥락 왜곡이 있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모든 기사가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음을 민언련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파성과 원전 찬반의 이분법에 갇힌 국내 언론이 피세디크 부소장의 원전에 대한 입장, 독일 내에서도 진보계열 언론으로 분류되는 슈피겔 지의 입장마저도 왜곡한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사들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보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에너지 관련 보도를 내놓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5월8~17일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서울경제·한국경제
※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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