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신사다’, ‘칼러가 약하다’, ‘좋은 게 좋은 사람이다’….

대종의 평가가 이러했던 엄기영 국장이 MBC의 신임 보도국장으로 선임됐을 때 기자들 사이에선 “크게 달라지는 게 있겠느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자기 스타일을 앞세우기 보단 사실 보도를 강조하고 불편부당을 지향하던 그의 태도를 볼 때 특별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엄국장이 부임한 직후 이뤄진 보도국 부장단 인사나 편집회의의 변화는 이같은 평가를 무색케했다. 신임 부장단 인사는 세대교체라고 불릴 정도로 대폭적인 물갈이와 발탁 인사로 채워졌다. 또 의례적인 일일보고와 지시 사항으로 끝나기 일쑤였던 편집회의에선 주요 기사에 대한 부장들의 토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엄국장은 또 부장들에게 “열린 귀를 갖고 기자들의 얘기를 들으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이런 변화는 엄국장이 나름대로 파악한 MBC 보도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처방으로 보인다. 엄국장은 “후배에게 밀려난 선배기자들이야 고통스럽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져서 기자 생활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며 “한편으론 위기감을 느끼겠지만 그보다는 헌신적으로 자기 계발에 힘쓰고 심기일전하라는 게 이번 부장단 인사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편집회의의 변화를 보도국 구성원간의 원할한 의사소통 구조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편집회의가 달라지면 각 부서의 분위기도 바뀔 것이다. 토론하는 분위기를 정착시키겠다. 그동안 기자들은 분출 욕구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했고, 변화를 희망하는 기자들의 염원이 반영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일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구성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국장과 부장, 기자들 사이에서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의사교환의 통로를 열어 놓겠다.”

엄국장은 카리스마를 앞세운 선봉장의 이미지보다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통한 역량의 극대화를 보도국장의 필요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진정한 리더십은 조직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전사령관의 ‘보스’ 이미지 보다는 민주적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엄국장은 또 뉴스의 차별화를 위해 기획 취재와 심층 보도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뉴스의 80% 가까이가 발표성 기사, 관급 뉴스로 채워져 왔다. 이제는 사실 보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발표 기사를 줄이고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고, 또 알려야 할 내용을 기획, 심층 보도로 다뤄나갈 계획이다.”

또한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선정적 보도 보다는 유익한 뉴스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뉴스 시청률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MBC 뉴스의 공정성과 관련해선 지난 97년 대선 당시 자신이 정치부장으로 있을 때 정치권의 외압을 이겨낸 사례를 들면서 “우리가 얼마나 지켜내느냐의 문제”라며 “과거 시행착오의 아픔을 겪으면서 공정보도를 이뤄낸 만큼, 기자들은 건전한 판단에서 벗어난 뉴스를 내보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국장은 또 기자들에게 자긍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시대가 필요로 하는 뉴스를 발굴할 수 있고 압력이나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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