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언론사 사주 비리의혹이다. 한국일보의 장재국 회장이 96년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지 호텔에서 186만 달러를 빌려 불법도박을 했다는 의혹이 월간<말>지 8월호를 통해 불거져 나왔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잇따라 터져나오던 언론인 비리 의혹이 평기자, 부장, 주필을 거쳐 이제는 언론사 사주로까지 번진 것이다.  한국일보측은 말지의 의혹제기에 대해 펄쩍 뛰고 있다.

‘사실무근인 허위기사’라는 것이다. 한국일보측은 그 근거로 무엇보다도 로라 최씨의 해명 편지를 제시하고 있다. 97년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 외사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186만 달러 불법도박의 주인공으로 ‘장존’이란 인물을 지명했던 로라 최씨가 “장존은 장재국 회장이 아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는다. 대다수의 언론인들은 한국일보측의 해명을 경청하면서도<말>지가 제시한 자료, 증언, 정황 등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마디로 평행선위의 진실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해법은 단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공정한 진상조사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마땅히 검찰이 돼야 한다. 97년 당시 로라 최씨를 조사했던 당사자로서, 그 누구보다 불법도박 사실에 근접해 있는 당사자로서 검찰 이외에 다른 그 누구가 진상조사에 나설 수 있겠는가. 더구나 범법 의혹이 제기된 마당에 엄정한 법집행을 위해서라도 검찰 조사는 당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당시의 수사자료나 정보를 공개하기는커녕 로라 최씨가 미국에 있어서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말만 읊조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형식논리상 로라 최씨의 증언이 없는 한 범법사실을 입증해내기가 어렵다는 말이 성립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형식논리일 뿐이다.

로라 최씨가 없어도 수사의 단서는 여러 곳에 널려있다.
로라 최씨가 검찰조사에서 ‘장존’의 비서라고 밝힌 최창식씨를 불러 조사하면 ‘장존’의 실체가 드러날 터이고, ‘장존’과 함께 여러번 미라지 호텔에 와서 도박을 즐겼다는 임무박씨를 조사해도 ‘장존’의 신원은 어렵지 않게 밝혀낼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검찰이 ‘상황’을 앞세우는 것은 ‘의지 없음’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법앞의 평등’이란 금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관행을 충실히 지켜온 검찰의 피해가기외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숱한 언론인 비리가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피래미’급 언론인만 사법처리하고 ‘거물’은 아예 수사하지도 않은 ‘보신수사’의 악습을 재연하는 것일 뿐이다.
< br> 지금 <말>지나 한국일보는 모두 곤혹스런 처지에 빠져있다.<말>지의 경우 세밀한 취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일보측의 제소방침 때문에 법정에 서야 할 처지에 빠졌으며, 한국일보는 한국일보 나름대로 명예를 심각히 훼손당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어느 일방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 결과가<말>지의 ‘특종’을 확인시키는 것이든 한국일보 장회장의 명예회복으로 귀착되는 것이든 진상조사는 엄정히 이루어져야 한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언론계의 정의와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검찰의 진상조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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