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택. 그가 다시 언론계에 나왔다.
지난 98년 2월 경향신문을 떠나 1년간 잠적했던 그가 지난 2월 27일 중앙일보에 안착했다. 자민련의 내각제 추진을 5.16쿠데타에 빗댄 3월 2일 첫 만평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그는 또다시 언론계의 관심 인물이 되고 있다.

언론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왜 중앙일보를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왜 경향신문을 떠났느냐는 질문이 따른다.

먼저 경향신문. “경향만 생각하면 마음 한곳이… 나를 키워준 엄마품 같은 곳인데…”라며 경향신문에 대한 그의 부채의식은 아직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경향신문 얘기만 꺼내면 계속 가슴아픈 추억을 곱씹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왜 경향을 떠났을까.

그는 “사람이 살다보면 어디든 떠날 수도 있고 다시 만날 수도 있다”며 선문답처럼 답변했다. 중앙일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남자가 여자를 선택할 때 여러 명 가운데서도 특히 마음이 끌리는 데가 있지 않느냐”는 게 그의 답변.

그는 다른 언론사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카웃 조건에 대한 여러가지 소문을 자신도 듣고 있었지만 모두가 ‘거짓’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펜을 한차례도 들지 않았다는 김 화백은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뒤적거리며 소일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놀만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아침에 출근한다는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라는 말로 백수생활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만평에 대한 외부의 평가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 ‘저격수 만평’으로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에서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나에게 직접 항의가 온 것은 없다. 만약에 항의가 있었으면 회사에서 차단했을 것이고 만평과 관련한 외압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말한 후에 “내만평이 그렇게 셌느냐”고 반문했다.

“아직 감이 회복되지 않아 만평이 센 지 약한 지도 가늠이 잘 안된다”며 “지금은 그동안의 ‘통박’으로 그리고 있지만 머리회전이 예전만 못하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는 화백실에 들어가지 않고 편집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기존의 화백들과 불편한 관계 때문이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기자들과의 정보유통을 원할히하고 편집국의 분위기를 익히려는 것일 뿐”이며 “정운경 화백에게는 사전 양해를 구했으며 화백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화백은 지난 12일 이사대우로 발령이 났다. 중앙일보에서 편집국장급의 대우를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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