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이 코앞에 다가왔다. 21일 밤 제주도 서귀포 경기장에서 벌어진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한국대표팀은 1대1로 선전했다. 이로써 ‘16강 진입’을 향한 국민들의 꿈은 한껏 부풀게 됐고, 월드컵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 또한 하늘을 꿰뚫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국민이고 정치권은 정치권인가. ‘월드컵 기간 동안 정쟁을 중단하자’는 민주당의 제안을 한나라당이 거부하고 나와 국민들은 한동안 짜증스런 나날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다소 장황하지만, 민주당의 ‘3당 대표자 회의’ 제안과 그에 대한 한나라당의 거부 논리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특정 정당의 주장을 옹호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21일 ‘월드컵 성공을 지원하기 위한 3당 대표자 회의’를 제안했다.

대통령 친인척 관련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의 협조를 촉구하고, “진정으로 비리 척결을 바란다면 정쟁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비리 관련 수사는 검찰에 맡겨두고 ‘적어도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정쟁을 중단하자’는 게 그 골자다.

한 대표의 이 같은 제의에 대해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는 월드컵 기간 동안 정쟁을 중단하자는 것은 한나라당에 대해 일상적인 업무를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대표자 회담을 사실상 거부했다. “지금 정쟁은 없고, 있다면 대통령 일가의 비리와 주변의 권력비리가 있을 뿐이다”는 것이다. 비리 의혹의 제기와 그에 대한 검찰의 수사 촉구는 정당의 일상적인 업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로서는 심히 곤혹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일본과의 공동 주최이긴 하지만, 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월드컵을 주최하는 것은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국가 대사’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 가정에서도 바깥손님을 맞을 때는 집안 싸움을 그치고 예의를 차리는 법”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국민정서에 호소력을 갖는다.

다른 한편,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비리 의혹 제기는 정쟁이 아니며 정당의 일상 업무라는 한나라당 주장도 부분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일단 제기하고 보거나 검찰의 수사에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는 의구심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당의 문제 제기가 과연 월드컵의 성공을 저해하는 정쟁인지 아닌지는 국민이 판단하면 된다”는 한나라당 서 대표의 발언을 기록해 둔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피차 이번 6·13 지방선거를 12월 대선의 전초전으로 보고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정쟁이냐, 일상 업무냐’를 놓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다. 정치권을 의식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같은 전제가 충족되면, 국민들이 해야할 일이 따로 있다. ‘정쟁시비’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에서 표로써 ‘발언’하는 일이다. 월드컵은 국민들의 힘만으로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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