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세무조사와 언론개혁을 저주해 온 조선일보 편집인 김대중씨가 “불쌍한 기자여, 네 꼴을 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18일자).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슬로베니아에서 열렸던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에 참가하고 온 소감을 적은 것으로 돼있다.

이 칼럼은 총회 마지막날에 본 한 비디오의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놨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언론탄압 실상을 담았다는 비디오 내용을 칼럼의 80%에 걸쳐 설명했다.

조선 김대중 편집인의 독설

그는 마지막 짤막한 결론에서 한국이 IPI의 “언론감시대상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언론 후진국”이라고 규정하고,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난폭한 소음과 욕설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 짤막한 비난을 위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마치 한국의 상황인 것처럼 장황하게 늘어놨다. 허무맹랑한 최면술이요, “주문(呪文)과 같은 독설들”이다.

IPI라는 국제적 언론귀족들의 사교클럽이 천문학적인 탈세를 밝혀낸 한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그리고 언론개혁운동을 ‘언론탄압’으로 낙인찍은 배경에도 이처럼 허무맹랑한 논법이 있다. 김대중 편집인은 아무래도 베네수엘라의 언론자유를 위해 베네수엘라가 필요로 하는 인물인 것 같다. 그가 베네수엘라로 가겠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칼럼보다 더 허무맹랑한 것은 IPI총회 둘째 날 편집권독립을 위한 토론에서의 그의 발언이다(<미디어오늘 designtimesp=10666> 16일자).

그는 “언론사주와 광고주들에게서 받은 압력은 정부압력에 비해 미미하다”고 했다. 사주가 황제처럼 군림하는 한국언론사의 현실, 과점신문 사주들이 천하의 최고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을 거꾸로 바꿔놨다.

그는 또 사주들의 천문학적인 탈세와 동아일보 편집인의 아파트 특혜분양 의혹도 정당화했다. “정부가 언론사주의 개인적 약점을 들추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비리가 나쁜 게 아니라 비리를 들추는 게 나쁘다는 것이다. ‘도둑이 매를 든다’는 속담을 실감케 한다.
그는 또 한나라당처럼 ‘빨갱이 시비’를 벌였다. “조선·중앙·동아가 좌파적인 신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계유일의 냉전지대인 이 나라에 ‘좌파적 정치인’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좌파적 신문’도 있을 수 없다. ‘좌파’라는 이름 밑에 ‘빨갱이’로 모는 수법은 민주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세계에 유례 없는 ‘여론의 과점지배’를 방어하려는 가소로운 중상모략이다.

40년 집권 집단과 유착해서 강력한 기득권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여론의 지배자들은 그동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비록 김대중 정부는 사실상 ‘선거관리 내각’으로 밀려났지만, 아마도 40년 동안 언론이 누려왔던 ‘탈세의 특권’은 박탈됐고, 언론개혁의 압력이 소멸될 것이라는 그들의 희망적 전망도 위태롭다.

김대중 편집인의 터무니없는 사실왜곡은 이들 ‘여론의 지배자들’이 당황하고, 공황상태에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언론사 세무조사와 언론개혁 문제의 표면화 이후 국제기자연맹(IFJ)과 달리, IPI와 ‘국경없는기자들(RSF)’은 한국을 ‘언론탄압’의 이름으로 매도했다. 그동안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치외법권 지대에서 특권을 누려왔던 과점신문들은 이들 오만하고 무지몽매한 ‘국제 언론경찰’을 현혹해서 그 그늘 밑에 기생하려 하고 있다.

김편집인이 IPI총회에서 터무니없는 욕설을 퍼부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각나는 것은 고려말기의 ‘가짜 왜구’다.

우왕(禑王) 8년(1382년) 4월 한 떼의 왜구가 경상도 영해군 일대에서 관아와 민가를 불태우고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이들을 추격해서 남녀 50여 명과 말 200여 마리를 노획했다. 그러나 이들을 조사해보니 왜구를 가장한 천민 ‘수척(水尺)’의 무리였다.

현대판 ‘가짜왜구’ 보는 듯

이듬해 6월에도 평창·원주·순흥 등에 왜구가 출몰해서 50여명을 참살했다. 그러나 이들도 왜구를 가장한 천민 ‘수척(또는 화척·禾尺)’의 무리였다. 수척(또는 화척)은 원래 ‘무자리’를 한자로 적은 것으로, 뒷날 ‘백정’이 됐다는 설도 있다(다산 정약용). 이들을 <고려사 designtimesp=10693>는 ‘가짜 왜’라 해서 ‘가왜(假倭)’라고 적었다.

오만하고 무지몽매한 국제언론경찰 IPI앞에서 사실을 왜곡한 김편집인의 망언은 그 옛날 왜구에 기생했던 ‘가왜’의 현대판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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