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사태가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임금체불 문제로 촉발된 CBS사태는 지난 3일, 회사측이 이열범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쟁의대책위원 21명을 전원 해고함으로써 루비콘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회사측이 밝힌 무더기 해고 사유는 참으로 궁색하다.
쟁의대책위원들이 7일 이상 무단결근해 사규에 의거해 면직조치했다는 것이다. 회사측의 이런 주장에는 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는 일방적 해석이 깔려있다.

파업사유가 임금체불 문제인데도 사장퇴진·재단개혁과 같은 정치적인 요구를 내걸고 있다는 게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회사측의 논리이다.

회사측의 이런 주장에 일일히 응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미 불법 여부를 판정할 노동부나 노동위가 ‘합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마당에 불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부적합할 뿐더러 소모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정말 ‘불법행위’로 규탄받아야 할 것은 회사측의 무더기 해고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계는 지금 커다란 당혹감과 우려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무더기 해고조치 뿐만 아니라 그런 조치가 지향하는 종착점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CBS가 어떤 방송인가. 한마디로 ‘민주방송’의 상징과도 같은 곳 아니었던가. 폭압이 극에 달했던 유신정권 시절, 다른 언론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때 CBS는 할말을 하고야 말았다. 이런 이력 덕분에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보도기능이 강탈당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지금은 다시 ‘복음’과 함께 ‘정의’를 전파하고 있다.

CBS의 이런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가지 동력이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나는 CBS 주위에서 종교인의 양심으로 꿋꿋이 보호막 역할을 맡았던 종교지도자들의 노력일 것이요, 또 하나는 그런 종교지도자들에 믿음과 함께 민주언론에 대한 열망으로 뭉쳐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 사원들의 땀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무더기 해고조치로 이런 전통과 기운이 사그러들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회사측과 재단은 알아야 한다.
사원들에게 육체적 목숨만큼이나 중한 게 바로 사회적 목숨이란 사실, 그리고 CBS에 몸담고 있는 사원들에게 CBS를 통한 복음과 정의의 전파 외에 다른 생명수는 없다는 사실을 회사와 재단은 알아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존귀하게 여겨야 할 사회적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가.

CBS 회사측과 재단측은 무더기 해고 조치 이후 강한 톤으로 CBS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단견이다.
경영진에서 이야기하는 CBS의 정체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좀더 숙고가 필요한 부분이겠으나 그것이 좁은 의미의 ‘종교방송’이라면 그것은 결단코 단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와 재단은 되돌아 보기 바란다.

신앙인의 가슴과 교회의 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방송을 설립할 때의 그 초심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아마도 거기엔 이땅의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복음이 구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며, ‘민주언론’을 이뤄야만 그곳에 당도하는 길이 좀더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을 것이다.

다시한번 회사와 재단에 촉구한다. 교회가 성직자만의 것일 수 없듯이 CBS가 교계의 것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의 무더기 해고조치를 철회하고 전사원들이 한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숙고, 또 숙고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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