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 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조선일보, 1980년 5월 28일 사설)

80년 당시 언론은 광주학살을 이렇게 얘기했다. 명백한 거짓말을 참말로 둔갑시키고도 언론은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개혁, 사회개혁을 떠들지만 스스로를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언론이 사회개혁의 진정한 파수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개혁의 감시자로서 언론을 추켜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광주언개연은 20년 동안 5·18이 언론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20주기를 앞둔 내년을 목표로, 올해엔 준비단계로 우선 80년 5·18을 보도한 기사들을 모았다. 80년 5월부터 8월까지의 관련 상황을 스크랩하여 5·18 관련자들이 언론에 어떻게 상징되었는지를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5월 17일 신군부의 ‘2차 쿠데타’가 있은 후 서울의 봄이 사그라들 무렵, 광주는 계엄해제와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김대중 석방’을 외치며 시위는 사그라들줄 몰랐다.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된 후 벌어진 ‘광주’ 얘기는 5월 21일에야, 그것도 매우 편파적 언어로 보도되었다.

계엄군이 철수한 5월 22일 이후 그동안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은 ‘유혈’, ‘혼란’으로 규정되었다.

“유혈의 거리 청소…질서찾는 광주”(5월 24일자 조선일보), “공포의 유혈 소요 6일”(서울신문 5월 24일자), “광주일원 소요사태”(조선일보 5월 22일자). “광주사태 10일째 광주·목포 제외 전남일원 평온회복 무정부상태 광주 1주”(조선일보 5월 25일자).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을 몰아내고 불미의 사건 없이 유지된 광주를 ‘무정부상태’로 보도하였다. 또한 그동안 벌어진 5·18의 발단을 불미스런 ‘유언비어’에서 찾고 있다. “폐허같은 광주…데모 6일째…자극적인 소문이 기폭제”(조선일보 5월 23일자), “목포선 복면쓰고 시위”(조선일보 5월 23일자).

광주항쟁을 근거없는 ‘간첩배후설’로 확대 보도한 기사들도 있다. “시위선동남파 간첩검거”(동아일보 5월 24일자), “북괴는 정세를 오판말라”(경향신문 5월 28일자 사설), “안보적 중태사태이다.…외적보다 무서운 내환”(서울신문 5월 22일자 사설), “북한오판막기 위해 만반의 조치.…북한 대남도발 강력대응...미 한국에 60일분 전쟁물자”(조선일보 5월 23일자).

한편 ‘광주’와 미국의 함수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들이 있다. “미, 전두환 장군지지, 미 고위군사관리 숙정으로 국민지지 획득…”(조선일보 8월 9일자), “한국민 지지에 대한 동의”(동아일보 8월 9일자).

80년 언론은 계엄사의 발표내용에 충실한, ‘공정성’과 ‘균형’, ‘객관성’을 상실한 오보들 투성이의 흔적들 뿐이다.

내년이면 5·18광주항쟁은 20주기를 맞는다. 언론도 20년 동안 5·18을 보도했다. 그러나 그 색깔은 시대를 거슬러 달랐다. 빨강색, 파란색, 노란색…언론이 색칠한 갖가지 색깔들을 찾아볼 것이다. 20년 동안 이뤄진 신문기사를 총정리하여 5·18 언론사료로 쌓아가는 작업을 구상중이다. 또한 80년 당시 “폭동을 일으킨 폭도”들에게 쉼없이 자수를 권했던 라디오뉴스도 짜집기하여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싶다.

프랑스의 드골장군은 나치협력 민족반역자를 숙청하면서 가장 먼저 언론인들을 심판에 올렸다고 한다. ‘언론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했다.’ (<프랑스의 대숙청> 중, 주섭일 저). 권력에 의한 직접 처단이 이뤄지지 않는 우리네 땅에서는 언론수용자가 언론을 심판하고 처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5월 광주와 고난을 같이한 정권이라며 김대중정부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그러나 안정적 권력유지와 배후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은 80년 무고한 광주시민을 학살한, 더구나 그는 아직 ‘사과’라고는 생각도 해 본적 없는 주인공을 자신의 든든한 ‘빽’으로 삼을 태세이다. 5월의 학살자가 동서화합의 전도사인 양 비춰지는 언론이 존재하는 한 언론을 되돌아보며 채찍질하는 작업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진정한 개혁 감시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언론을 추켜 세워주자. 타임머신을 타고 80년 5월로 돌아가, 누가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했는지, 몇 명을 쐈는지, 어디다 암매장 했는지를 다시 쓰는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학살자가 참회도 없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남녘 목포도 가고 자기네 텃밭을 거리낌없이 누비는 장면을 수수방관하며 취재대상으로 환영받는 그를 언론은 퇴출시키기 바란다.

언론개혁광주시민연대 언론감시단(http://my.netian.com/~kunion, 062-228-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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