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로 경찰서를 출입하던 시절에 내게도 수습기자가 배정됐다. 그 수습기자는 주요 사건·사고의 취재 내용을 내게 보고하고, 기사로 쓸 만한 아이디어를 발제했다. 

하루는 그가 ‘가출 청소년에겐 잘 곳이 필요하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의 PC방, 찜질방 출입을 허용하라’는 내용을 기사로 발제했다. 난 그때 매뉴얼대로 수습기자를 상대했다. “어떤 사실을 전달하려 하는지”, “기사와 칼럼을 혼동한 것이 아닌지” 등을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런 취지를 밝혔다.

“가출 청소년들을 따라다니며 많은 얘기를 듣다보니 그들이 겪는 성폭력과 착취의 문제는 결국 잘 곳이 없어 생기는 문제였어요. 쉼터는 사실상 감금 시설이라며 꺼려요. 그들에게 안전하며 불편하지 않은 잘 곳을 충분히 제공해줄 것이 아니라면 일단 가능한 방법부터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PC방, 찜질방 야간 출입이라도 허용하자고 하는 것이에요.”

▲ 한겨레 2012년 9월19일자 1면 기획.
▲ 한겨레 2012년 9월19일자 1면 기획.

2012년 9월 한겨레 사회부가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는 청소년 성매매 기획 기사를 내보낸 적 있다. 여러 기자들이 설득하고 마음 쓰며 만난 여러 가출 청소년들의 삶이 잘 담긴 훌륭한 기사였지만 기존 저널리즘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해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해법을 다룬 기사는 전체 7건의 기획 기사들 가운데 한 건에 불과했다. 그 기사에도 여러 방안들이 나열돼 깊이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어쩌면 언론 역할이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그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기자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답답했던 사안은 ‘문제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여전한데도 언론은 한번 지적한 문제를 다시 꺼내길 주저한다는 점’이었다. 가출 청소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아니면 그럴 만한 사안을 발굴하지 못하면 이 문제를 다시 조명하기가 쉽지 않다.

최저임금을 비롯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무수한 사안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출간된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는 알바 노동자들 대다수가 여전히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을 하고 있고, 최저임금 위반, 임금 체불 등의 법 위반 사안이 만연한 천태만상을 고발했다. 

하지만 정부가 발간한 고용노동백서를 보면 적발된 최저임금 위반 업체는 급격히 줄고 있다. 정부가 적발한 위반 업체는 2011년 1만3187건에서 2017년 1671건으로 줄었다.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통계가 나온 이유는 1696명(2015년 5월 기준)에 불과한 근로감독관이 모든 노동 현장을 제대로 감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자를 그만둔 지금에 와서 남은 아쉬움은 현직이었을 때 해법에 별로 천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던 부동산 사기, 아동학대, 노동 쟁의에 따른 손배가압류 문제에 있어서 꽤 많은 보도들을 쏟아냈지만 천착하며 해법을 모색하진 못했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저널리즘의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솔루션 저널리즘은 비판만 하는 기사들에 대중이 질렸기 때문에 그보단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맥락으로 이해되곤 한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하지만 이런 시각에 반대한다.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드러내며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언론에는 비판한 이후에 해법을 모색할 만한 여유와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그래서 한국의 언론들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 문제들을 담당하는 기자들을 정하는 것이다. 출입처와 분야 별로 편제된 편집국을 의제 중심으로 재편제하자는 제안이다. 

그런 다음 문제에 천착할 시간을 기자들에게 줘야 한다. 언론사는 문제를 드러내고 해법을 고민하며 천착한 결과, 바꿔나간 사례들을 주기적으로 보도한다. 이런 변화가 비현실적일까. 오히려 언론 본령에 부합한다. 언론도, 정치도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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