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적 진실이 아니잖아.” 최근 논란이 된 ‘사이버성범죄 기자 단톡방’ 사태를 두고 보인 일부 기자들 반응이다. 익명 오픈채팅방이라 신원이 불명확한데 언론인 단톡방이라 이름 붙이는 게 섣부르고 여론도 과열됐단 지적이다. 채팅방엔 여기자도 있었다며 ‘남성 문화’라 부르는데 불편한 기색도 있다. 과연 그럴까.

기자 단톡방은 성폭력을 놀이로,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취급한 여성 혐오 공간이었다. 일부 수위만 다를 뿐 소라넷으로 대변되는 포르노 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빼닮았다. 보도로 노출된 대화는 전체 8500여개 대화 중 1% 정도다. 문제 사례는 일부라는 반문이 있지만 불법 행위만 가려내 1% 정도지 99%는 이에 환호하는 대화였다.

 

▲ 5월3일 "불법 영상·피해자 신상 공유 ‘기자 단톡방’ 내사" KBS 보도 갈무리
▲ 5월3일 "불법 영상·피해자 신상 공유 ‘기자 단톡방’ 내사" KBS 보도 갈무리

 

 

 

“유출사진 공유 말라” 제지에 전용 공유방 만든 기자

일부 매체가 ‘기자 200여명이 참여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과 다르다. 문제 단톡방은 언론인 200여명이 속한 정보공유 단톡방(정보방)에서 파생된 별도 방이다. 비교적 건전한 정보방은 2016년 초 만들어졌다. 예명이 ‘찌라시왕’인 언론인이 2016년 초 ‘블라인드’ 앱에서 각종 보도자료, 정보, 지라시 등을 공유할 목적으로 사람을 모았다.

언론인이 다수라 추측하는 첫 번째 이유는 블라인드 때문이다. 모집 글은 블라인드 ‘언론인 라운지’에 올라왔고 참가 희망자는 댓글을 달았다. 블라인드는 회사 메일 계정으로 인증해야 가입 가능하다. 언론인 라운지는 메일 계정이 언론사나 유관 업종으로 등록돼야 입장할 수 있다. 출판이나 홍보대행 관계자가 언론인 라운지를 택할 수 있어도 상식적으로 언론인이 택할 가능성보단 훨씬 낮다.

‘찌라시왕’은 개인 카톡으로 언론인 인증 절차를 거쳤고 비언론인이 들어온 정황이 파악되면 기록을 대조해 수시로 인원을 추방했다. 구성원들은 서로를 당연스레 기자로 대했다. 취재가 안 된다는 토로는 종종 나왔고 취재원 연락처를 묻는 건 일상이었다. 참가자들은 ‘비선실세/방송/경제부’ 식의 예명을 썼다. 방송/경제부는 방송사에 근무하는 경제부 기자란 뜻이다.

정보방 운영이 잘 되자 찌라시왕은 2017년 초 참가자를 또 모집했다. 그 결과 200여명 규모의 정보방 2개가 완성됐다. 1개 당 100여명이다. 잡담이 늘면서 일부는 실제 술 모임을 할 정도로 친해졌다. 부동산 정보공유방 등 파생방도 생겼다. 사이버성범죄 단톡방도 이 가운데 생겼다. 문제의 ‘시가 흐르는 문학의 방’(문학방)으로 이후 ‘기형도 시인 30주기 추모 문학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문제의 사이버성범죄 논란 언론인 단톡방 일부 갈무리
▲ 문제의 사이버성범죄 논란 언론인 단톡방 일부 갈무리

 

 

 

보도 안 된 대화 8500개, 여성혐오 점철

문학방은 탄생 배경부터 문제다. 정보방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 유출 영상과 사진을 요구하거나 2차 가해를 하는 발언이 제지당하자 ‘마음껏 공유하고자’ 따로 만들었다. 이들을 혼자 제지하다시피 한 방송사 기자 A씨는 “그들은 기자수첩에 실린 여성 기자 사진을 보고도 얼굴평가를 했다”며 “적극적인 참여자끼리 친해지면서 단톡방 분위기는 고인 물이 됐고 지적해도 제지안 될 걸 알았지만 계속 했다. 결국 다른 방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기록이 확인됐다. 공유된 사진은 590여장, 포르노·불법촬영물 유포 사이트 링크는 140여개다. 유흥업소 후기와 즉석만남 후기 공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참가자 2명이 주로 매번 만나는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몰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잠자리 상황까지 중계했다. “이 X 코 곤다”거나 “곧 신발 컷 올릴 듯” 등이다. 둘 다 자신이 유부남이라 밝혔다.

반응은 외모 평가나 ‘더 올려 달라’는 요구밖에 없다. 여성을 맛에 비유한 성희롱은 예사고 “저 정도면 육덕 아니에요?” “견적 안 나오네” “인증샷 인증샷” 등의 낯뜨거운 반응만 줄이었다. 이 와중 ‘어린 여성’을 만난 참가자들은 자랑했다. “저 19살 모델하고 요즘 연락 중이에요”라거나 “낮 4시에 다녀왔어요. 20살입니다” “저 방금 98년생이랑 마셨어요”라는 식이다. 이들은 ‘사부’ 대접 받았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즉시 피해자 신상과 유출본을 구했다. 불법 유포 촬영물은 ‘버닝썬 유출영상’ 등 확인된 3건 외에 하나 더 있다. 지난해 11월 지라시 형태로 무차별 유포된 ‘골프장 성관계 영상’이다. 문학방 방장이 영상 2개를 올린 직후 다른 참가자가 피해 여성 사진과 이력을 공유했다. 논란 당시 피해 여성과 남성은 최초 유포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사건이 알려지며 일주일 새 모든 카톡방이 사라졌다. 문학방은 방 폐쇄 직전까지 반 나체의 여성 사진이 올라왔다. 문학방에 적극 참여한 20여명 흔적도 끊겼다. 사건을 최초 고발한 시민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은 이들을 찾아내 불법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지난 10일 이들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발했다. 적용 혐의는 불법촬영물 및 음란물 유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성매매처벌법 위반 등이다.

 

▲ 정보공유방에 가입할 언론인을 추가로 모집한다는 공고글. 사이버성범죄 논란의 기자 단톡방은이 방에서 파생됐다.
▲ 정보공유방에 가입할 언론인을 추가로 모집한다는 공고글. 사이버성범죄 논란의 기자 단톡방은이 방에서 파생됐다.

 

 

 

일부 기자, 반성보다 ‘사건 실체 없다’ 외면

익명 채팅방이라도 혐의가 특정되면 피의자 확인은 가능하다.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수사기관의 수색·감청영장 집행에 협조한다. 수사기관은 영장 집행 중 ‘추가정보 요청’을 통해 영장이 집행된 인물 뿐 아니라 익명 참가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10일 고발인 조사를 마친 후 영장 청구를 준비 중이다.

퇴사한 기자가 기존 블라인드 계정을 유지해 카톡방에 가입했을 여지나 경영국 등 비편집국 직원, 카톡방 주소와 비밀번호만 공유받은 인물이 단톡방에 가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정보방에 있었던 A씨는 “모두가 언론인은 아닐 수 있지만 대다수가 언론인이라는 건 그 방에 있는 누구나 동의할 합리적 가정”이라며 “이 사건 실체는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달 15일 찌라시왕은 “언론사 단톡방 추가 인원을 모집한다”며 “250여명 신원이 검증된 언론사 종사자들이 3개 방에서 자유롭게 대화 중인 집단 지성의 방”이라 소개했다. 그는 “단체방 내에선 익명이지만, 1사 1부서 1원칙을 지키기 위해 간단한 인증 절차가 있다”며 “제공정보는 뉴스 브리핑, 주간 동향정보, 컨택 공유, 풀 자료, 각종 트렌드 리포트, 이직정보, 짝짓기 기회 등”이라 밝혔다.

수사가 진행돼도 피의자는 소수다. 성관계·성폭력 촬영물을 불법 유포한 인물과 폭력 피해자 신상을 유포한 인물 등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머지 익명 참가자들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언론계는 침묵한다. 한 기자는 “익명의 한계 때문이라 둘러대겠지만 구조적 문제라 보지 않는 방증”이라 말했다. 유일하게 입장을 낸 곳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이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24일 “언론사와 언론노동자 모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자 개개인이 성폭력·성희롱 보도 공감 기준 및 실천 요강을 준수하겠다는 다짐과 성인지감수성 문제에 대한 교육 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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