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영광(한빛) 핵발전소 1호기가 갑자기 멈춘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영광 1호기는 1월과 3월 화재로 오랫동안 정비가 지연되다가 지난 9일 재가동됐다. 재가동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발전소가 멈추자 당시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왜 발전소가 멈췄는지 자세한 내용을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원안위가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발전소 재가동 시험 중 원자로 열출력이 제한치의 18%까지 급증했고, 원자로 조종면허가 없는 사람이 제어봉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출력 급증에도 원자로를 멈추지 않았다가 12시간 뒤 원자로를 수동정지한 것도 드러났다.

원자로 열출력이 급증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급작스럽게 늘어난 열출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원자로가 폭주해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원자로 시험을 위해서 안전장치를 끈 상태에서 폭주하는 원자로를 제어하지 못해 일어났다. 다행히 영광 1호기는 각종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출력 급증이 무시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구나 면허소지자가 지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면허자가 제어봉을 조작했다면 실정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뜻한다.

한빛 원전. ⓒ영광군청
한빛 원전. ⓒ영광군청

이에 원안위는 지난 20일 영광 1호기에 사용정지 명령을 내리고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했다. 핵발전소에 사용정지 명령이 내려진 것은 2012년 고리1호기 정전은폐사고, 2013년 한수원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이후 세 번째다. 앞서 두 사건이 모두 조직적 사고 은폐나 비리와 관련돼 원안위도 이 사건을 심각하게 본다는 뜻이다. 특별사법경찰관 파견은 2017년 법 시행 뒤 처음이다. 원안위 특별사법경찰관은 위법행위에 긴급체포, 압수수색, 구속영장 신청 등 권한을 갖는다. 과거 원안위가 자체 조사 뒤 고발 등으로 더 자세한 조사를 의뢰했던 것에 비하면 더 적극 수사가 기대된다.

오랫동안 정비를 마치고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는 일은 핵발전소 운영자 입장에서는 매우 큰 일이다. 정비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다양한 문제점을 하나씩 점검하고, 수많은 회의와 시뮬레이션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사건이 업무시간인 오전에 벌어졌는데 관리·감독자나 책임자가 왜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확인하지 못했는지 앞으로 밝혀져야 한다. 특히 발전소가 멈추고 한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모두 빠진 점도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한편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벌써부터 원인을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일부 언론은 한수원 관계자를 인용해 ‘탈원전 이후 정원 대비 인력이 부족해 안전관리 등에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을 실었다. 출처도 불명확한 ‘관계자’를 인용해 자기 의견을 전하는 소위 ‘따옴표 저널리즘’을 펼쳤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수원 인력이 줄어든 적이 없었고, 오히려 발전소 대비 인력 감소는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편 이명박 정부 때다. 설사 인력이 줄었어도 이번 같은 위법을 덮는 핑계가 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기초 사실 관계도 확인없이 ‘기-승-전-탈원전 반대’를 외치는 걸 방치해왔다. 이런 안전문제조차 탈원전을 탓하는 건 용납 안된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에 가짜뉴스나 정치적 공세는 매우 위험하다. 그간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핵발전소 부실공사로 격납건물 철판과 콘크리트에서 구멍이 생겼을 때도 안전문제보다 핵발전소 가동률이 떨어진다며 정치 공세를 펼쳤다. 눈앞에 부실과 위험이 보임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더 많은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에만 몰두했다. 이런 게 쌓인다면 핵발전소의 위험도는 점점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영광 1호기 사건은 핵발전소가 우리에게 보내는 수 많은 경고 중 하나다. 가짜뉴스와 정치 공세에 밀려 이런 경고를 새겨듣지 못하면 우리는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차분히 핵발전소 안전을 살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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