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숙해도 모자랄 사람이 왜 저런 ‘망언’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종명 의원이 어떻게 훈장을 받았는지 한 번 살펴봐.”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로 인사발령이 난 직후인 3월 초, 당시로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취재원이 전한 한마디였다.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스트레이트에 오자마자 방송 일정을 통보받았는데, 방송 날짜까지는 3주도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한시바삐 착수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이종명 의원은 지뢰사고 ‘영웅담’의 주인공이다. 육군 1사단 수색대대장이었던 지난 2000년 6월 비무장지대 수색정찰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은 후임 대대장을 구하기 위해 혼자 지뢰지대에 들어갔고, 본인도 지뢰를 밟고 쓰러졌지만 병사들의 접근을 막은 채 포복으로 탈출했다는 게 당시 군의 설명이었다. 

▲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종명 의원 페이스북
▲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종명 의원 페이스북

 

19년 전 일이다보니 관계자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좀처럼 실마리를 잡지 못하자 위대한 영웅을 두고 괜한 일을 벌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겨났다. 방황이 길어지려던 찰나, 다행히(?) ‘5·18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왜 이래”라며 역정을 낸 분이 화제가 됐다. 자연스럽게 3월말 데뷔 방송에는 그 분을 모시는 데 주력할 수 있었고 방송 직후 잠시 내려놓았던 영웅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다른 소대 출신의 수색대대 병사 몇 명과 접촉했지만 이들의 기억은 군 발표와 대동소이했다. 직접 목격자가 필요했다. 당시 이종명 대대장과 비무장지대 수색정찰에 함께 나섰던 수색대대원 15명을 만나야 했다. 사고 경위를 잘 아는 부사관 한 명이 어느 도시 시장통에서 잡화점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잡화점 특색을 토대로 유력 후보지 몇 곳을 추려낸 끝에 운 좋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만남 직후 수색대대원 전원의 명단을 파악하게 됐고, 이들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급기야 지뢰사고 당시 헌병 고위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사고 조사 보고서와 상황일지 등을 모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분이었기 때문에 ‘영웅담’의 문제점은 선명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수색로 이탈 정황이었다. 정해진 수색로를 벗어나 지뢰를 밟았다는 것인데, 당시 군 보고서는 수풀이 우거져 수색로를 식별하기 어려운 곳에서 사고가 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무성한 수풀 때문에 심지어 폭발지점을 찾지도 못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혈흔이 남고 구덩이가 생겼을 텐데 왜 폭발점을 못 찾았던 것인지 쉽게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대대장들의 위치도 큰 문제다. 모든 보고서에는 후임 대대장이 현 대대장보다 앞서가다 지뢰를 밟았다고 돼 있다. 현 대대장이 후임 대대장보다 앞서가며 지형을 설명해주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이 때문에 왜 후임이 앞섰는지를 두고 사고 직후부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지뢰사고 발생지역에 무리하게 들어가면 안 된다는 철칙을 어기고 이종명 대대장이 후임 대대장에게 접근하다가 2차 피해를 유발했다는 것도 당시 조사에 참가한 수사관을 만나 새롭게 확인한 내용이었다.

이 같은 문제점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은 채 군은 사고 직후 이종명 대대장을 ‘살신성인’의 지휘관으로 규정했다. 훈장과 각종 상을 수여하고 군가·뮤지컬을 만들었으며 기념탑까지 세웠다. 하지만 후임 대대장을 구한 진짜 영웅은 따로 있었다. 대검으로 땅을 찔러가며 지뢰지대에 들어가 후임 대대장을 구출해온 사람은 당시 소대장이었다. 이 때문에 취재 과정에서 연락이 닿은 한 육군 장교는 이종명 영웅담을 ‘엽기적인 오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지난 13일 방송한 MBC 스트레이트 ‘의문의 DMZ 지뢰 폭발 이종명은 영웅이었나?’ 갈무리. 사진=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 지난 13일 방송한 MBC 스트레이트 ‘의문의 DMZ 지뢰 폭발 이종명은 영웅이었나?’ 갈무리. 사진=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살신성인’의 ‘영웅담’은 언론을 타고 퍼져나갔다. 당시 국방부 기자실에는 안전사고의 경우 심하게 책임을 묻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그 결과 “아! 이 중령…”이라는 제목 아래 이종명 대대장이 부하 20여 명의 목숨을 살렸다는, 날조에 가까운 왜곡 기사가 버젓이 확대 재생산됐다. 이후 국방부 기자실에는 지뢰사고 당시에 있었던 규정 위반 사실이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단 한 차례의 문제 제기도 없었다. 검증을 포기한 언론이 어떤 폐해를 낳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 정설로 굳어진 것에 대항해 진실을 바로 세우는 작업은 고되지만 기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선배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첫 발을 내디뎠다. 지난 방송은 물음표 하나를 던진 것에 불과하다. 이종명 의원이 강력하게 부인한 기념촬영 의혹, 현·후임 대대장들의 정확한 위치 등 계속 추적해야 할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 이용주 MBC 스트레이트 기자
▲ 이용주 MBC 스트레이트 기자

최근 국방부 브리핑에서 재조사 여부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육군은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육군참모차장이 주관한 내부 회의의 결론, 즉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5·18 이후로 최대한 미루고 이슈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좌고우면하고 있을지 모를 군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전 헌병 고위 관계자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징계 대상에게 포상한 것을 지켜본 후배 군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군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 정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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