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언론사에서 오셨는데, 정작 지상파와 종편은 방송 스태프노동자들 인권문제를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산안법이 통과돼 현장의 변화를 기대했는데, 시행령 등 하위법령을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고 이한빛 PD와 김용균씨의 유족과 현장 노동자들은 이날 ‘정부여당이 산안법 하위법령에 보완책을 담겠다고 약속해 놓고 오히려 역행하는 시행령·규칙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왼쪽)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산재 피해자 유족과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왼쪽)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산재 피해자 유족과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용관 이사장은 “죽음의 외주화가 어디보다 심각한 곳이 방송촬영 현장”이라고 했다. 16부 드라마 제작진 100명 가운데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연출 등 7~8명을 빼면 모두 일시 용역계약 노동자다. 이 이사장은 “스태프노동자는 산재 처리도 못 받고, 안전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장시간 촬영에 내몰린다. 오죽하면 요즘 우리가 외치는 구호는 주 52시간이 아니라 ‘12시간 일하고 12시간 쉬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산안법은 이런 위험한 현장이 사라지게 해야 하는데 시행령은 오히려 법 취지를 후퇴시켰다”고 했다. 시행령은 산안법 적용 대상 특수고용직종을 9개로 한정했는데, 영화‧드라마 스태프와 화물운송노동자, 운수노동자 등은 여기에서 빠졌다.

산재가 난 사업장 작업중지는 더 어려워지고, 해제 절차에선 노동자 참여를 배제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일 내놓은 ‘작업중지의 범위 해제 절차 및 심의위원회 운영기준’을 보면, “산재가 재발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동일한 작업”에 한해 작업중지 명령하도록 요건을 추가했다. 해제할 땐 사업주가 신청한 지 나흘 안에 심의하도록 했고, 이 심의위원회에 노조 추천 전문가는 포함하지 않았다. 단 노동자 과반 의견을 청취하도록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은 “수많은 집배노동자가 죽지않도록 막아야 할 제도가 산안법이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작업중지해 본 적이 없다. 아침에 인사한 동료가 저녁에 죽어도, 퇴근한 동료가 침대에서 자다 죽어도, 우정사업본부에선 울면서 편지를 배달한다”고 호소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산안법 전면 적용 사업장으로, 지난 12일과 13일 이틀새 3명의 집배원이 숨졌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이 21일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이 21일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새 시행령에 따르면 구의역 김군과 고 김용균씨가 일하는 업장도 ‘도급승인’ 업무에서  빠졌다. 도급승인은 원청이 하도급을 줄 때 노동부 승인을 받도록 한 제도로,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시행령은 도급승인 업무 범위를 4개 화학물질의 설비보수‧해체‧철거작업 등으로 한정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산안법이 통과됐는데, 누가 하위법령을 이렇게 쓸모 없게 만들어놨는지 모른다. 이것으로 어떻게 산업재해를 막을지 모르겠다.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은 아직도 당연하다는 듯 목숨이 버려지는데, 정부가 말하는 국민에 노동자가 들어가지 않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 산재 피해자 유족과 현장 노동자들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산재 피해자 유족과 현장 노동자들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한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은 “정부는 산재사망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법개정 땐 반대세력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과 노동부장관이 전권을 가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마저 약속과 반대로 간다”며 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전면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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