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에게 ‘언론개혁’이 평생의 화두였음을 확인할 친필 메모가 등장했다.

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직접 작성한 친필 메모 266건을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했다. 뉴스타파는 친필 메모를 두고 “국정 현안이나 핵심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고민과 심경이 여과 없이 담겼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이 가운데 한국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관점이 담긴 메모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2007년 3월 작성된 대통령 메모에는 “식민지 독재 정치하에서 썩어빠진 언론”, “그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는 철없는 언론”이란 글귀가 적혀있다. 식민지·독재시대를 거쳤던 조선·동아일보 등 보수신문과 이들의 논조를 따라가던 언론사들을 비판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대통령은 “대선 잿밥에 눈이 먼 양심도 소신도 없는 정치인들. 사리사욕, 이기주의의 동맹. 어리석은 국민이 되지 말 것”이란 메모도 적었다. 참여정부 말, 인기 없던 대통령을 향한 여야 정치권과 언론의 파상공세에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이어진 메모에는 “대통령 이후. 책임 없는 언론과의 투쟁을 계속할 것”이란 대목이 비장하게 등장한다. 퇴임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언론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퇴임 후에도 참여정부를 비판할 게 자명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봉하사저 아방궁’ 프레임 등으로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메모에서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정부를 방어할 것”이라고 적으며 “신뢰의 사회, 관용의 사회, 책임지는 사회를 위해서…천박하고 무책임한 상업주의, 대결주의 언론환경에서는 신뢰·관용이 발 붙일 땅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이 같은 메모를 적은 뒤 2개월여 뒤인 5월22일, 참여정부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일명 ‘기자실 통폐합’을 결정했고 이후 사실상 모든 기성언론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렸다. 

2007년 수석보좌관 회의 중 메모에는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이란 대목도 등장했다. 언론개혁을 위해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정치인 노무현의 삶은 ‘언론개혁’과 함께했다. 1991년 주간조선은 ‘호화요트’ 왜곡보도로 당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노무현 의원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2001년 노무현 민주당 고문이 “언론사는 당연히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자 사설에서 그를 비판한 뒤 한동안 신문지면에서 아예 ‘노무현’을 쓰지 않는 식으로 노골적인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

물론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언론사 세무조사 국면이던 2001년 6월 언론노조 강연 자리에서 “언론사주는 비리의 실체가 드러난 마당에 국민에게 사죄하고, 기자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돌려주든가 아니면 언론사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뉴스타파
각종 정부 정책에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의 ‘부당한’ 공세를 마주하며 느꼈을 고뇌와 분노가 나타난 대목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메모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야당과 보수언론 등 당시 기득권 세력을 가리켜 “끝없이 위세를 과시한다. 모든 권위를 흔들고, 끝없이 신뢰를 파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놓고 막상 추진하면 흔든 것도 한둘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 뒤에는 일례로 “균형발전·행정수도, 부동산, 작통권”이 적혀있었다. “의제의 왜곡”이라고 적은 대목에는 “성장, 국가부채, 세금”이 적혔다. 특히 “교육과 복지” 대목에선 “심각”이란 단어가 적혔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된 2009년 5월29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한 시민이 대형화면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중 고인의 캐리커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된 2009년 5월29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한 시민이 대형화면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중 고인의 캐리커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 공개된 노 전 대통령 메모에 담긴 언론 인식은 오늘날 문재인정부를 지지하는 뉴스수용자들의 언론 인식과 대단히 유사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뉴스수용자들이 그가 갖고 있던 언론불신과 언론개혁의 열망을 ‘체득’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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