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빈 손으로 맞으면서 이후 관련 사안들에 대한 추진 동력이 떨어져선 안 된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5·18 관련법 합의안은 휴짓조각이 됐다. 5·18진상조사규명위원회는 구성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을 5·18 폄훼의 장으로 만들어 비판받았던 자유한국당 의원들 징계 절차도 표류하고 있다.

여야 4당이 지난달 “늦어도 금년 5월18일 이전에 처리한다”고 합의했던 이른바 ‘5·18 왜곡 처벌법’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선거제 개혁·공수처 설치·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지정)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장외투쟁을 이어가고 있어 국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4당이 5·18 전 처리하기로 했던 특별법은 5·18민주화운동 정의를 명확히 하고, 5·18을 왜곡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자로 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및 무소속 의원 166명이 공동 발의했다.

구체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을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항해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하고, 이를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다. 신문·잡지·방송 그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 전시물 또는 공연물 전시·게시 또는 상영, 기타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간담회·기자회견·집회·가두연설 등 발언이 대상이다. 다만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기타 이와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위법성 조각사유를 뒀다.

▲ 3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오월단체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이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에 협조하지 않으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 참석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 3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오월단체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이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에 협조하지 않으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 참석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보인권단체 오픈넷은 지난달 국회에 의견서를 내고 “규제 대상을 불명확한 기준으로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했다”며 “국론 분열 방지를 이유로 표현행위나 사상 표출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방식의 규제는 국가와 정치권력이 반대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남용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앞선 국회 토론회 등에 참석한 법조계 인사들도 공통된 의견을 보인 바 있다.

물론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우려하는 이들이, 5·18 폄훼 세력에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오픈넷 역시 “일부 정치세력 망언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직 사퇴를 포함한 정치적인 책임과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엄격히 물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왜곡 처벌법이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도 여전히 높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진행한 ‘5·18 왜곡 처벌법’ 필요성 여론조사 결과 찬성 비율이 지난 2월 55%에서 지난 15일 60.6%로 상승했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정당 지지층과 지역에서 찬성율이 우세한 흐름도 이어졌다. [리얼미터-tbs 조사: (5월1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7833명 접촉 501명 응답, 6.4% 응답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 / (2월1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8396명 접촉 501명 응답, 응답률 6.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한국당 김순례·김진태·이종명 의원 징계안을 논의해야 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특위 산하 윤리심사자문위원회 파행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 추천 자문위원들이 민주당 추천의 장훈열 자문위원장이 5·18 유공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의를 밝힌 데다, 바른미래당 추천위원 역시 불참해 자문위 자체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자문위 ‘의견 없음’으로 보고 윤리특위에서 징계 논의를 진행하자고 주장했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요건이 충족되지 못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당 당 차원의 징계 역시 이종명 의원 당적 제명을 위한 의원총회가 소집되지 않아 사실상 멈춰 있다. 한국당은 지난달 중앙윤리위원회에서 김순례 의원 당원권 정지 3개월, 김진태 의원 경고, 이종명 의원 제명 처분을 내려 솜방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제정돼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법 제정에 따른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한국당 몫 추천위원 3명 중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등 2명이 법적 자격 요건에 미달한다며 재추천을 요구했지만 한국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동욱 전 기자의 경우 1996년 ‘검증, 광주사태 관련 10대 오보와 과장’ 제목의 기사에서 계엄군의 탱크 진압 보도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사실상 발포 명령자라는 검찰 발표 등을 부정한 바 있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 자체의 보완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차 피해 우려 등으로 침묵했던 5·18 당시 성폭행·성고문 피해자들 증언이 이어지면서 특별법상 진상규명 범위에 이를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1980년 보도통제에 저항했던 언론인들은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불법 해직 사태 등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특별법 3조 진상규명 범위는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사망·실종·암매장 사건 및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및 조작의혹 사건 △ 군의 시민들에 대한 최초 발포 및 헬기 사격 경위와 사격 명령자 및 시민 피해자 현황 △1988년 군 보안사와 국방부 등이 구성한 ‘5·11연구위원회’ 조직 경위와 활동상황 및 진실 왜곡과 조작의혹사건 △집단학살지·암매장지 소재 및 유해 발굴·수습 △행방불명자 규모 및 소재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사건 △기타 법의 목적달성을 위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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