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협약 비준을 ‘최종 목적지’로 여기는 논의 프레임에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16일 주최한 창립기념 토론회에서다.

참가자들은 ILO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도달할 목표가 아닌 합의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했다. 한국은 8개 ILO 핵심협약 가운데 4개 협약(강제노동·아동노동 금지)만 비준했다. 차별금지와 결사의 자유 협약 4개가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이 오는 6월 초 ILO 총회 참석을 앞둔 현재가 비준할 마지막 적기란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협약 비준에 앞서 이에 걸맞은 입법과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선입법 후비준’론이다.

▲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16일 주최한 'ILO 100주년, 한국 노동정책 과제와 새로운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16일 주최한 'ILO 100주년, 한국 노동정책 과제와 새로운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핵심협약은 정부 개입이나 간섭 없이 노사가 자율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토대”라며 “정부가 노동계에 주는 ‘보상’으로 여겨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런 의미에서 핵심협약보다 ‘기본협약’이 더 걸맞은 이름”이라고 했다.

이에 윤효원 인터스트리올 컨설턴트는 ‘입법 먼저 하자’는 주장은 사실상 ‘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역대 ILO 협약을 비준할 때, 선입법이든 후입법이든 의미 있는 입법이 없었다. 역대 한국 정부가 비준한 ILO협약 29개 중 21개 가운데 90%가 선비준됐다. 정부가 이미 비준한 4개 핵심협약도 선비준됐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협약만 놓고 입법 여부를 묻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로 먼저 비준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협약 비준은 목적지가 아니다. 서울에 가려면 일단 기차를 타자는 얘기다. 노동기본권과 체제를 바꾸려는 논의는 비준과 무관하게 당연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주 서울시 노동협력관은 “비준이라는 결과보다 사회적 인식을 넓히는 과정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먼저 의결한 뒤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던져 갈등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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