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게이트의 주요 인물인 승리와 유인석 씨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다. 150여명이 넘는 수사 인력을 동원해 100일 넘게 수사한 결과가 불구속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하고 있다. 영장을 기각한 신종열 영장전담판사가 검색어 1위가 되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신종열의 해임을 건의하는 청원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물론 구속 수사는 처벌처럼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신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권리이기에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구속수사 여부는 해당 사건의 무게, 해당 범죄가 얼마나 중대 범죄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한국의 현행법(형사소송법 70조)에서도 불구속 수사와 구속수사를 결정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이며, 다른 하나는 중대범죄(사안의 심각성)이다.

▲ 유리홀딩스를 함께 세운 승리(이승현, 왼쪽)와 유인석 대표. 사진=승리 인스타그램
▲ 유리홀딩스를 함께 세운 승리(이승현, 왼쪽)와 유인석 대표. 사진=승리 인스타그램
승리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중이 흥분하는 이유는 바로 후자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승리의 불구속수사 결정은 그들의 범죄가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승리의 혐의는 ‘횡령, 성매매, 성매매 알선(성접대), 식품위생법 위반’이다. 이 중 형량이 높은 것은 횡령과 성매매알선이다. 현행법상 성매매 알선 혐의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성매매 알선을 ‘업’으로 삼을 경우 형량은 더 높다. 그러나 경찰은 영장을 청구할 때 3건의 성매매알선 혐의 중 2017년 필리핀 팔라완에서 열린 생일파티를 뺐다.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이는 배경이다. 승리측은 그나마 높은 형량인 버닝썬 자금 2억여 원을 빼돌린 횡령혐의에 대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방어했다. 그 결과 영장전담 판사는 횡령은 “형사책임의 유무와 범위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으며, 성매매알선과 성매수 혐의는 “증거인멸 등과 같은 구속 사유”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버닝썬게이트’로 불릴 만큼 대규모 성범죄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수많은 여성피해자가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 단순히 ‘증거인멸 여부’로만 판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묻게 된다. 구속수사는 구속해서 수사할 만큼 중대한 범죄이고, 불구속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피의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것도 목적이다. 버닝썬은 다양한 성범죄(마약에 의한 성폭력, 성매매, 불법촬영, 집단강간)가 벌어진 심각한 범죄집단이라 볼 수 있고 그곳 대표인 승리는 대표로서의 책임만이 아니라 관여 정도도 높다. 그러나 판사는 이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경찰의 부실수사와 판사의 대규모 성범죄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승리와 유인석 등은 풀려났다. 사람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왜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성폭력)는 중대범죄로 취급되지 않는가.

권력형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승리의 구속영장 기각에 분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버닝썬에서 벌어진 성범죄는 ‘게이트’가 따라붙을 정도로 조직적인 권력형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공권력(경찰)과의 유착, 유명연예인 등이 지닌 문화 권력의 사용, 유흥산업의 경제력 등이 얽혀있는 성범죄다. 권력형 성범죄는 검찰과 경찰 같은 공권력의 비호 하에 성폭력과 성착취가 일어나고 은폐되기 쉬워 수사와 처벌이 어렵다. 최근 벌어진 버닝썬 사건도 이렇게 가벼이 다뤄지는데 과연 오래된 권력형 성범죄인 故 장자연 성폭력사건(‘언론․정치권의 연예인성범죄리스트’ 사건)과 김학의 법무차관의 성범죄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고 처벌되겠냐는 회의가 들게 된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노컷뉴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노컷뉴스
권력형 성범죄로 유형화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실 모든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현격한 성별 권력관계의 차이로 성범죄(성폭력)가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성폭력은 권력형 성폭력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권력형 성폭력(성범죄)라는 명명은 동어반복일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한 사건의 특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권력형 성범죄는 가해자들의 지위에 의한 성폭력의 반복성, 가해자가 동원할 수 있는 경찰․검찰 등 공권력 같은 힘을 가진 가해(공범 또는 은폐)집단의 존재,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막강한 영향력(위력) 행사 등의 특징이 있다. 권력형 성범죄는 지배엘리트들이 당연시하고 있는 성폭력과 강간문화,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성차별적 제도와 남성중심적 권력의 뿌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상사와 부하,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교수와 학생 등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신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하기에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도 신고 이후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 때문에 고 장자연 씨처럼 죽음을 택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용기를 내 신고를 하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기소도 안 된다. 따라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어떻게 수사하고 어떻게 처벌하는가는 국가의 성폭력 근절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고 장자연 성폭력 사망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은 권력형 성범죄 근절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거대언론사 사주일가, 대기업 관계자, 고위검찰간부, 연예계의 영향력 있는 자들이 연루된 만큼 사건은 10년이 지났지만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버젓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13일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은 법무부 과거사위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제 20일 법무부 과거사위는 수사여부를 포함한 권고를 발표할 것이다. 공소시효 때문에 그나마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강제추행죄가 중심이 돼야 실효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지난 5월14일 방송된 MBC PD수첩 ‘故 장자연 누가 통화기록을 감추는가’ 예고편 갈무리.
▲ 지난 5월14일 방송된 MBC PD수첩 ‘故 장자연 누가 통화기록을 감추는가’ 예고편 갈무리.
과거사위가 재수사 개시와 가해자 처벌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권고해야 한다. MBC ‘PD수첩’이 보도됐듯이 통화기록 원본 등이 사라져 수사의 한계가 많기 때문에 공소시효는 중요하다. 이 때문에 5·18특별법처럼 공소시효의 적용을 정지할 수 있도록 장자연 사건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다른 권력형 성범죄에도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자는 논의가 되고 있다. 한 사회의 가치 지향을 알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범죄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형량), 법제도다. 어떤 범죄를 중대범죄로 판단하는가의 문제는 그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말해준다.

20일 고 장자연 사건 과거사위 발표에는 재수사가 천명되고 그에 따른 특별법 제정 등이 논의돼야 할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의 권고를 떠나서 권력형 성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회차원의 입법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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