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은 임종국 선생의 공이 팔할이다.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친일문제연구소는 지금 민족문제연구소로 자리잡았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 연구는 독보적이었다. 선생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가 집안이 어려워 2학년 때 중퇴했다.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을 장악했던 문인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 친일 글을 수없이 발표한 사실을 안 선생은 오랜 기간 자료를 모아 친일파 연구의 효시가 된 ‘친일문학론’을 1966년에 펴냈다. 이후 문인 뿐 아니라 정치, 교육, 사회, 경제, 행정 등 여러 분야의 친일 군상들을 추적했다.

그러나 임종국 선생의 최대 공적은 그가 파헤친 수많은 친일 인물들에 있지 않다. 선생은 친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발견하고 밤새 번뇌하다가 여동생을 붙잡고 “우리 아버지 이제 어떻하냐”고 통곡했다. 하지만 임종국은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빠짐없이 낱낱히 기록하고 이를 후세에 남긴다. 임종국 선생의 위대함은 이 대목에 있다.

▲ 임종국 선생. 사진=민족문제연구소
▲ 임종국 선생. 사진=민족문제연구소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근 ‘문예춘추’ 6월호에 자기 아버지가 제국주의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중국 전선에 배치된 하루키의 아버지는 포로를 참수하는 등 만행을 저지른 부대에 소속돼 있었다.

하루키는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하루키는 “자기 나라에 좋은 것만을 역사로 젊은 세대에 전하려는 세력에는 맞서야 한다”고 했다. 일본 극우세력을 향한 일침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그 고양이가 와 있었다는 ‘고양이 일화’를 통해 하루키는 부끄러운 역사 또한 우리 역사의 일부이고 인간은 그 불편함을 직시할 때에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문학동네 제공
▲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문학동네 제공
오늘날 평생을 군사독재 정권에 빌붙어 해바라기처럼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미화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그들과 맞서 싸워온 세력을 향해 밥버러지라는 막말을 퍼붓고 있다. 이들은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제 보신을 할 뿐이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의 충견으로 살아온 경찰과 검찰의 다툼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은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의 비리를 밝혀내 경찰을 향해 한 방 먹였다. 경찰은 검찰을 향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통제불가 경찰’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격에 나섰다. 도긴개긴이다.

최근 검찰은 KT 채용 비리를 수사하면서 김성태 의원 딸 등 11명의 부정채용을 용인한 이석채 전 KT 회장을 구속시켰다. 그 뒤 놀라운 반전이 펼쳐졌다. 이 수사를 담담하는 서울남부지검이 지검장 장인이 KT 채용비리에 연루돼 있음을 시인했다. 남부지검은 지검장 장인이 2012년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 때 처조카 취업을 청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이석채 전 KT 회장. 사진=노컷뉴스
▲ 이석채 전 KT 회장. 사진=노컷뉴스
이제서야 검찰이 청탁을 받은 이석채 전 회장까지 구속시키면서도 김성태 의원 등 청탁한 사람들에겐 왜 입을 싹 닫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물론 검찰은 장인의 청탁이 드러난 남부지검장을 직무배제했고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지만 얼마나 캐낼지는 모를 일이다.

제 아버지의 친일 행각까지 또박또박 기록했던 임종국 선생이 그립다. 왜 우리에겐 제국주의 군인 아버지의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낸 하루키의 용기를 가진 권력집단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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