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주체로 나섰으나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여성들을 기억하고,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980년 5월 광주의 여성들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평화당 주최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에 참여해 그날의 기억을 되새겼다.

여성시민군이었던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 회장은 “광주항쟁이 신군부의 충정작전에 의해 외형상 실패로 끝나고 항쟁에 참여했던 많은 여성들은 전국지명 수배되거나 계엄사에 끌려가 모진 가혹수사와 성고문, 인권침해를 당했다. 게다가 항쟁 기간 동안 계엄군에 의해 집단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처참한 삶은 세상 속에 갇혀 버렸다”며 “이후 여성들의 증언과 일부 언론을 통해 그 절규가 외쳐졌지만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 문화에 묻혀버렸고 성폭력은 폭력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광주항쟁에서 여성들의 저항으로 광주 5월 마지막 새벽까지 사수 투쟁을 전개했던 치열한 활동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역사 속에 늘 가려져 왔다”고 지적했다.

5월 광주의 여성들은 헌혈운동과 가두투쟁을 시작으로 광주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다. 시위대 선두의 가두방송, 대자보 및 성명서 작성 등 홍보·선전 활동과 약품 등 보급품 확보, 시신 수습 등을 도맡았다. ‘콜 박스 여성’으로 불렸던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줄 지어 헌혈에 동참했다. 여중생·여고생과 제조업체 노동자들은 가두시위에 나섰고, 가사노동자들은 식량을 조달했다. 이들 활약상을 전한 당시 시민군 보급부장이었던 구성주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회장은 “여성들의 활동과 희생이 소상히 밝혀져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이 온전히 이뤄졌다고 할 수 있고, 광주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고 역사에 교훈으로 남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주최로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주최로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으로 나오셔서 죽어가는 시민, 학생들을 살려 주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우리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1980년 5월27일 새벽2시30분, 계엄군이 포위한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새벽 방송을 했던 박영순씨는 이날 39년 만에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방송 문안을 다시 읽었다. 박씨는 “지금도 제가 마이크를 잡으면 많이 떨린다. 39년이 지났는데 증언할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한다”며 호흡을 정리했다. 당시 송원대 육아교육과 졸업반이었던 박영순씨는 방송 이후 진압군에 붙잡혀 고문에 시달리다 김대중 내란음모 가담 혐의로 1심 무기징역, 같은 해 10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지난 2015년 재심을 맡은 광주지방법원은 35년 만에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아프고 같이 잡혀 온 사람들이 고문 받는 장면이 떠올라 불면증이 시달릴 때에는 ‘차라리 총 맞아 죽었으면’하고 생각했다”고 말한 뒤 “요즘 저를 더 괴롭히는 것은 5·18을 모독하는 가해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마치 세금을 축내는 사람처럼 망언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국민이 주는 세금으로 월급 받고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있다”며 “지만원이라는 사람은 저희 보고 간첩이라 한다. 인터넷에 ‘5·18 광주북한특수군 모략 선동 주연배우 박영순’이라고 돼 있다. 제가 어떻게 간첩이 될 수 있나”라고 토로했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를 초청해 국회 토론회를 열고, 토론회에 직접 참석하거나 영상 축사를 통해 5·18 폄훼 발언을 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잇따른 파행으로 관련 징계 논의는 진척이 없다.

박씨는 “한 가지 부탁드린다. 제2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 성폭력 성고문을 말씀해 달라. 자기 일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씀하시면 제2의 피해자가 생겨서 많이, 너무 많이 힘들었다. 저희 가족들 또한 39년을 너무 힘들게 살았다”며 “좀 더 신중하게, 발언 때 조심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거듭 당부했다.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주최로 열린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마지막 새벽방송 당사자 박영순씨가 증언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주최로 열린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마지막 새벽방송 당사자 박영순씨가 증언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5·18 당시 계엄군의 성폭력은 지난해 피해 당사자들 폭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지난해 정부 차원으로는 처음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을 공식 인정했다. 당시 10~30대에 이르는 피해자들로부터 성추행·성고문 등 17건의 성폭력 피해와 43건의 여성인권침해 사례를 확인했다.

이날 참석한 천정배 민주평화연구원장은 “지난해부터 정부에서 피해자 신고를 받고 있지만 거의 진척이 없다. 5·18 성폭력 생존자들은 현재 50~60대 여성들로써 2차 피해의 두려움, 사건 당시 트라우마로 인해 증언에 나서기 매우 어렵다. 진상조사위가 꾸려지면 반드시 여성 전문가가 참여해 독립적이고도 주요한 주제로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성폭력 문제가 빠져 있는 5·18 특별법 개정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촉구했다.

천 원장은 “80년 광주에서 여성들은 항쟁 전반에 걸쳐 주체적 활동을 했다 목숨을 걸고 가두방송을 하고, 회보를 만들어 돌리고, 광주 참상을 외부로 전하기 위한 투쟁을 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5월 여성의 상이 ‘주먹밥’으로만 기억되고 있는 문제가 존재한다”며 “향후 꾸려질 진상규명위와 5월 단체들 활동을 통해 5·18 당시 여성들 활동을 온전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많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표류, 5.18역사왜곡처벌특별법 개정안도 국회에 자유한국당이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 도는 바람에 과연 특별법 처리가 될 수 있겠는가 걱정이 굉장히 많은 측면이 있다”며 “여러 기대나 바람을 충분히 안고 어려운 국회지만 처리하도록 최선의 노력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주최로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주최로 '1980년 5월 여성과 2019년 우리' 토크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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