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비판하며 여성혐오·비하적 표현을 사용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두고 정치권 안팎 여성계가 들끓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정확한 의미와 유래를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비판 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13일 공동논평을 내고 “정치인들의 막말 대찬치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제1야당 원내대표가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일베)에서 사용하는 여성 혐오 표현을 대중집회 장소에서 사용한 것은 결코 단순한 실수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치인들이 그동안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해 온 ‘막말’을 똑같이 답습한 구태이자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당 장외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문(재인)빠’, ‘달창’이라 표현했다. ‘달빛창녀단’ 줄임말인 ‘달창’은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사용된 표현으로, 나 원내대표 발언 이후 대중에 확산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나 원내대표는 논란이 불거지자 “인터넷상 표현을 무심코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사과드린다”며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특정 단어를 썼다. 결코 세부적인 그 뜻을 의미하기 위한 의도로 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해명했다.

▲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를 연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일부 의원들. 사진=노지민 기자
▲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를 연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일부 의원들. 사진=노지민 기자

여성단체들은 “여성 혐오와 공격을 일삼는 극우커뮤니티의 행태는 단순한 정치적 지지자 공격만이 아닌 여성혐오와 낙인을 조장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표현 확산에 책임을 통감하고 철저한 성찰과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박경미·백혜련·서영교·이재정·제윤경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여성의원 일동 명의 성명서를 통해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여성과 국민을 모욕한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다시 한 번 강한 유감을 표하며, 국민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하고 원내대표직을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상희 의원은 “정말 참담하다는 표현 밖에 할 말이 없다. 어떻게 제1야당 원내대표 입에서 국민을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여성을 모욕하는 말을 여성 대표성을 띄고 국회에 진출한 나경원 원내대표가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나 원내대표는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진출했다. 비례대표 숫자가 대폭 늘어나고 여성들이 최초로 50% 할당 받아서 많은 여성들이 진출했다”며 “여성들이 국회에 진출하면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지고 품격 있어지고 폭력적 정치 문화가 없어질 거라 기대했는데 나 원내대표는 모든 걸 배반하는 의정활동을 원내대표로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나경원 원내대표는 과거 홍준표 전 대표에게 홍 전 대표의 막말이 당 혁신의 걸림돌이자 보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등 돌리게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고 지적한 뒤 “‘보수당 최초 여성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제1야당의 원내대표 자리에 오른 나경원 대표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최소한 여성을 모욕하는 표현을 모르고 사용해도 되는 그런 가벼운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백혜련 의원은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성명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향후 계속적으로 책임을 촉구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상희 의원은 “(오늘 기자회견은) 민주당 의원 중심으로 시급하게 했지만 다른 당 여성의원과 연대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한국당을 향해 “정상적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극단적·극우적 지지자에 기대 정치하려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다만 국회 정상화를 강조하는 민주당으로서 제1야당 원내대표를 당장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의원은 “도저히 대화할 수 없는 이들과 대화해야 하는 답답하고 곤혹스러운 처지를 국민들께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원내지도부는 지도부대로 고민하겠지만, 여성의원들은 여성 의원대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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