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장자연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수사 정보를 조선일보 간부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한 가운데 당사자로 지목된 전직 조선일보 간부는 10일 사실을 부인했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 전 청장은 지난 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당시 이종원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 실명을 공개했다.

조 전 청장은 이종원 전 부국장을 ‘4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아끼는 후배’라며 “언론에 조선일보 사장이 거론되니까 이종원 부국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사건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사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전했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은 이 전 부국장의 부산고 선배다.

조 전 청장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저는 조선일보 애독자였고 조선일보를 상당히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 제가 파악한 수사 관련 내용을 이종원 부국장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정말 중요한 수사 기밀은 제외하고 알려줬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경찰 수사에 따라 단계적으로 알고 있는 범위에서 알려줬다”고 했다.

경찰 수뇌부가 피의자(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쪽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자인한 셈이라 논란을 부를 만했다. 그러나 이종원 전 부국장은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는 게 없다”며 “그 문제는 내가 관여한 게 없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조 전 청장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조 전 청장에 따르면 두 사람이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중 조 전 청장이 먼저 건 전화에서 이 전 부국장이 “형님 앞으로는 장자연 사건에 관해서는 사회부장이랑 이야기하시라”고 전했고 그 후부터 이동한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이 전 부국장을 대신했다는 것.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진=미디어오늘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진=미디어오늘
조 전 청장은 지난해 7월 PD수첩 방송에서 장자연 수사 당시 조선일보 외압 의혹을 폭로했고, 경찰에 압력을 가한 당사자로 지목된 이동한 전 사회부장은 PD수첩 제작진과 조 전 청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8일 같은 재판정에 출석한 이동한 전 부장은 “신문사 사회부장의 카운터파트너는 형사과장이다. 증인(조현오 전 청장)은 경기지방경찰청 최고 간부였는데 어떻게 나와 통화할 수 있겠느냐”며 조 전 청장과 일면식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조 전 청장은 이동한 전 부장이 2009년 3~4월경 경기도 수원 집무실로 찾아와 “우리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와 한판 붙자는 것인가”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장자연씨가 성접대 등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문건,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 적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증폭되던 때였다.

판사가 조 전 청장 발언에 뒤따를 고소 등을 우려해 증언을 잠시 멈추게 했을 정도로 이날 조 전 청장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민감하고 작심한 것들이었다. 조 전 청장은 판사의 제지에도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해 PD수첩 팩트체크팀장으로 조 전 청장을 인터뷰한 박건식 MBC 시사교양1부장은 10일 통화에서 “조 전 청장이 조선일보와 야합했다는 자신의 치부를 공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아무래도 자신을 만난 적 없다는 이동한 전 부장의 발언에 화가 많이 난 듯하다. 민사소송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2009년 조선일보와 수사 정보를 주고받은 사실을 강조하며 자기 주장을 보다 명확히 입증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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