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 조항이었던 집시법 11조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현재 국회에는 이에 대한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개정안의 대부분이 집회 금지 규정을 유지하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단서를 두는 식이다. 공권력은 제한과 금지가 넘쳐나는 집시법을 들먹이며 언제나 탄압해왔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면서 끊임없이 목소리와 행동을 이어온 것이 집회의 자유를 지켜온 역사다. 집회 금지 성역 규정에 다름 아닌 집시법 11조를 이유로 가로막혀왔던 목소리들을 다시 들어본다. 국무총리공관, 국회의사당, 대사관, 법원, 청와대 앞, 그때 그곳에서 내고자 했던 다양한 외침들이 모여 지금 함께 요구한다. 집회 금지 성역을 열어라! 집시법 11조를 폐지하라! - 편집자주

3년 전, 세상은 크게 흔들렸다. 2017년 3월,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문장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시민이 승리했다.” 171일간 이어진 거리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 이후,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 나라에 살고 있을까. 세상이 흔들렸다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나의 자유는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까.

2016년, 시민은 당시 대통령 박근혜와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싸움은 이게 나라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권력과 너무 가까워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참여연대가 2016년 10월에 한 ‘릴레이집회신고’도 이 싸움 중 하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깃발아래에서 “이게 나라냐” 외치는 동안, 참여연대는 이 외침이 더 퍼져나갈 수 있도록 광장의 권리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싸웠다.

이 싸움의 경과가, 2017년 3월 이후 우리가 그때와 얼마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좋은 기준이 되지 않을까. 권력과 너무 가까워 시민으로부터 광장을 뺏었던 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는 그때와 달라졌을까?

▲ 지난 2016년 11월19일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 지난 2016년 11월19일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청와대 앞 상소문 대회” 청년참여연대의 새로운 싸움 방식

물론 광장에서의 싸움만이 싸움의 전부는 아니다. 청년참여연대도 새로운 싸움의 방식을 찾은 청년들 중 하나였다. 2016년 10월, 청년참여연대는 나라에 불만 많은 청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상소문 백일장 대회”였다. 대통령과 가까운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상소문을 함께 써보자는 취지였다. 이 나라의 청년으로서 대통령에게 할 이야기는 많았다. 노동개악, 위안부합의, 그리고 청년참여연대가 관심을 두고 활동했던 대학생의 높은 입학금 문제까지. 그 시기 가장 울화통이 터지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상소문 대회의 장소를 청와대 연풍문 앞으로 잡은 것도 그 이유였다. 가감 없이 청년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청년의 목소리가 청와대에 곧바로 닿았으면 했다.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로 상소문 백일장 대회를 계획했다. 주변의 뜻 맞는 친구들을 모으고, 대회를 더 즐겁게 운영하기 위해 대회 진행안까지 짰다. 연풍문 앞에서 한복을 입고 모여, 상소문 백일장을 열고 현장 심사까지 마치겠다는 ‘깜찍’한 계획이었다. 흔히 쓰이는 확성기나, 현수막도 가져가지 않고 상소문 작성과 낭독, 시상식과 사진촬영 등의 순서만 정해놨다. 이제 남은 것은 집회신고 뿐. 30여명이 청와대 앞에 모여 대통령에게 건네는 편지를 쓰겠다는 계획을 경찰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답을 먼저 말하자면, 우리가 받은 것은 금지통고였다.

대통령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못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 11조에 따라 청년참여연대의 “청와대 앞 상소문 백일장 대회”에 금지통고를 내렸다. 집시법 11조는 청와대, 국회의사당, 국무총리공관 등 주요기관 앞 100m 이내에서는 2인 이상의 그 어떤 집회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앞 100m 안에서는 어떤 모임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청년참여연대의 상소문 백일장 대회는 참여연대의 ‘릴레이 집회신고’ 중 첫 번째 캠페인으로, 집시법 제11조의 위헌성을 드러내기 위해 계획된 캠페인이기도 했다. 청와대, 국회 앞 등의 금지장소에서 평화롭게 진행되는 소규모의 집회를 신고해, 이 정도의 집회마저 허용될 수 없는 것인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었다.

물론 모든 집회는 규모와, 평화/비평화적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해 이 집회는 불법이며, 이 집회는 합법이다 논할 수는 없다. 규모가 어떻든, 형태가 어떻든 권력은 시민의 단결을 막을 수 없다. 대부분의 시민은 언론을 이용하거나 법안을 만드는 등의 정치수단이 없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목소리를 드높이는 방법만이 유일한 수단이다. 그래서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단호히 말해 집회는 시민이 가진 가장 기초적인 정치수단이다. 가장 기초적인 정치수단을 활용하려는 청년을, 경찰이 막은 것이다.

집회의 자유가 없는 곳, 청와대 앞 100미터

청년참여연대의 ‘청와대 앞 상소문 대회’ 목적에 그 어떤 물리적인 힘의 행사나 질서를 교란할 만한 기획은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청와대 앞에서 모일 수 없었다. 금지통고를 받은 후, 청년참여연대와 참여연대는 집회금지통고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항소심 중에 금지통고의 근거가 된 집시법 11조 제2호, ‘대통령관저’ 부분에 대한 위헌제청신청도 함께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각됐다. 청와대 앞에서 의사표명할 시민의 권리가, 완전히 무시당한 것이다.

▲ 청와대 정문. ⓒ 연합뉴스
▲ 청와대 정문. ⓒ 연합뉴스

정말 우리의 문제제기가 법원이 한 번 생각해볼 가치조차 없는 정도로 엇나간 것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 집회란 결국 집권세력 등을 향한 시민의 외침이다. 주권자인 시민이 심부름꾼인 국가기관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면, 그 대상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거리에서 할 수 있어야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주요 국가 중 국회나 청와대 앞 100m에서까지 집회를 금지하는 곳은 없다. 하나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는 것 그 자체로 대통령 신변에 위험을 발생시킨다고 가정하는 것은, 집회시위를 공공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배치되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 바뀌지 못했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작년 1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동안 법원과 국회 앞에서 집회하는 것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적은 있었으나 청와대 앞은 처음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 집회는 불온하고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집회와 시위는 부패한 정권, 폭력을 일삼는 권력자,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를 반대하는 시민의 단호한 외침이다. 이 정치적 외침에서 우리는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배우며, 더 살기 좋은 내일을 그릴 수 있다.

이미 국회와 법원 앞 100m 집회금지 조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바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청와대 앞 100m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사당에 이어 국무총리공관, 법원 인근의 집회 시위 제한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오늘, 더 이상의 성역은 필요 없다. 대통령의 경비보다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가 우리 곁에 있을 때, 광장에서 성역 없이 시민이 자신의 주장을 소리칠 수 있을 때. 그때 세상은 또 한 번의 큰 ‘변화’에 다다른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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