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 미담? 우리가 좋아하는 ‘거짓말’”
“해외 입양 미담? 우리가 좋아하는 ‘거짓말’”
‘한부모가족의 날’ 지정으로 마지막 맞은 제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

“나는 미국 미네소타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나를 키워준 부모님은 친어머니가 나를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성인이 돼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 곳에서 미혼모의 ‘선택’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입양을 보내는 배경’에 대한 많은 오해 중 ‘선택’도 그 중 하나였다.”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가 9년 만에 마지막 행사를 열었다. 제니 나(Jenny Na)는 해외로 입양됐던 자신이 한국에 돌아와 해외입양인 활동가로서 ‘싱글 맘’ 지원에 나선 이유를 담담히 설명했다. 싱글맘의 날은 지난 2011년 기존 입양인의 날인 5월11일에 ‘싱글맘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시작됐다. 해외입양인과 미혼모들은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원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공감대와 한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환경을 만드는 데 동참해 왔다. 혼인 여부를 연계한 미혼모·부 대신 ‘싱글맘’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날은, 정부가 지난해 5월10일을 ‘한부모가족의 날’로 지정하면서 올해 마지막을 맞았다.

제인 정 트렌카(Jane Jeong Trenka)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는 “싱글맘의 날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념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미국 원주민이 추수감사절에 미국 원주민의 날을 기념하는 것처럼. 모두가 즐기는 즐거운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입양의 날’로 지정한 날을 ‘엿 먹이는’ 의미도 있다”며 서면 축사를 보냈다.

다만 그는 “이제는 한국이 해외 입양을 중단했나. 친 가족이 아이를 찾고자 할 때 밟을 공식 절차가 있나. 법원을 거쳐야만 입양이 가능해진 2012년 이전에 생모가 모든 상황을 알고 동의한 상황에서 아이가 입양 보내졌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나. 답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은 배상 받거나 사과 받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을 한국 사회와 정부에 던졌다.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왜 싱글맘의 날인가' 제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왜 싱글맘의 날인가' 제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한국전쟁 이후 해외 입양아는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2015년 한국은 중국, 에티오피아, 우크라이나, 우간다와 함께 해외 입양 아동이 가장 많은 5개국에 꼽혔다. 입양아 특성은 ‘대세’에 따랐다. 60년대 초반 ‘혼혈아동’ 입양이 잦아들자 ‘순수 한국 아동’으로 대세가 옮겨간 식이다. 서울올림픽으로 국가홍보가 한창이었던 1988년 국제 언론은 한국의 해외 입양을 ‘아기 수출’, 나아가 ‘인신매매’ 문제로 보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자국의 요보호 아동 해결을 해외입양에 의지하면서 이들을 위한 복지체계 구축을 게을리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김은희 미혼모협회 I’M MOM 대표는 한국 해외입양이 6·25 전쟁 이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와 혼혈아 보호정책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오히려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1970~1990년 해외 입양된 아이들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수많은 기록들은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해외 입양을 활성화한 게 아니라 해외 입양으로 국가의 경제 성장을 도모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든다”며 “1988년 아동 한 명당 5000달러, 2000년에 1만 달러, 2011년 한 해만 해도 한국에서 입양으로 3500만 달러(2012년 2월8일자 KEI 한미경제연구소)라는 어마어마한 달러가 한국으로 유입됐다”고 밝혔다.

해외입양을 ‘미담’으로 소비하는 시선에 비판도 제기됐다. 김 대표는 “올 한 해도 수차례 집 앞에서 놀던 아이가 실종되고 고아원으로 보내져 한 달 만에 해외 입양돼 30여년 만에 한국 부모를 찾은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미담 뉴스를 장식했다. 부모는 30년을 아이 찾아 헤맸고 국가는 친부모를 찾아주려는 노력은 거의 없이 해외로 입양 보낸 이야기를 미담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우리 사회가 정신적, 윤리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제니 나는 “한 언론인이 적절히 묘사한 것처럼 국제 입양 이야기는 ‘우리가 좋아하는 거짓말’(E.J. Graff)이다. 어머니가 나에게도 해준 이야기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소라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양요건을 강화하는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유기 아동이 늘었다는 보도들을 ‘선동’으로 규정했다. 소 교수는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아동유기 특히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10년 가까이 되풀이돼 왔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아동이익최우선’ 원칙에 부합하도록 어렵게 개선한 입양제도를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소 교수는 “입양기관과 기존 커뮤니티는 출산 후 7일이 지난 후에야 법원 허가가 필요하다는 ‘입양숙려제’와 입양 성립을 위해 법원 허가가 필요하다는 ‘법원 허가제’ 도입을 두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입양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져 아동이 시설에서 보내는 시간이 장기화돼 오히려 아동복리에 반한다는 주장이었다”며 “많은 언론이 이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개정법 시행 전부터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동유기가 늘었고 시설 보호 아동이 증가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소 교수는 “논거로 제시되는 통계가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다는 건데 전국 영아유기 총합적 통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언론의 주목으로 전국 유기 아동이 특정 지역 베이비박스로 몰리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며 “앞으로는 이러한 비약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언론보도가 중단되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왜 싱글맘의 날인가' 제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왜 싱글맘의 날인가' 제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입양을 민간 영역에 맡기지 말고 공적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표 사례가 2016년 대구에서 발생한 ‘은비’ 사건이다. 당시 3살이었던 은비는 예비 입양 가정에 보내진 지 7개월 만에 병원 응급실에서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했다. 17살이었던 은비 친모는 홀로 아이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려 21개월을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입양기관을 찾아갔다. 입양기관장은 가해자인 양부 형사재판에 출석해 가해자 옹호 증언을 했다. 아동의 법적 보호자인 입양기관장이 아동학대 혐의자 편을 들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소 교수는 “민간 입양기관이 입양 개시를 결정하고 아동을 인수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양육 어려움을 겪는 친생 부모는 입양기관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아동복지 체계 내에서 상담받고 직접 양육 지원 서비스를 우선 연계 받은 뒤 최후 방안으로서 입양이 검토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상 육아 선택권을 배제 당하는 미혼모의 현실은 공적 지원 확대 필요성을 시사한다. 김은희 대표는 13년 전 아이를 낳았던 때를 떠올리며 “여차하면 아이가 ‘입양’될 대상이었기에 나의 가족은 눈 감고 뜨면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 같은 불안함을 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출생 신고를 하러 갔다가 자신이 미혼모라는 걸 안 주민센터로부터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 ‘입양’ 얘기였다는 것. 그는 “한국사회에서 (미혼모가) 입양을 선택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나쁜 미래를 선택하게 만든 죄인이 되며 결혼하지 않고 영아를 양육하는 여성이 노동하기 거의 불가능한 구조에서 아이와 살아남으려면 죽을 만큼 가난함을 증명해야 죽지 않을 만큼 국가 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에 더해 빈곤과 싸워야 하는 미혼모는 상당수다. 미혼모 가운데 100만원 미만 소득자는 2010년 기준 43.2%, 2018년 43.4%로 절반 가깝다. 이는 임신기나 출산 후 병원에 가지 못해 발생하는 산모와 신생아 건강, 나아가 임신기간 또는 산후조리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 등 악순환을 낳았다. 그나마 주민센터를 통해 접하는 미혼부·모 지원서비스가 있지만, 이를 안내 받은 경우는 21.2%에 불과(임신기 및 출산 후 미혼모 지원방안, 2018 이미정 외)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혼 가족이 안정적으로 자립하고 육아하기 위한 과제로 △출산 후 미혼모 의료비 부담 해소 △태아·신생아·산모 건강 보장을 위한 전달체계 개선 △미혼모·부 초기지원 사업 개선 △한부모상담전화 운영체계 개선 △의료진과 공무원 인식 개선 △미혼모의 친가족 관계 회복 프로그램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은희 대표는 “오늘이 싱글맘의 날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동안 미혼모가 되고 운동을 접하면서 미숙함에 의해 사과드릴 여성 운동 한 축이 있다. 낙태를 선택했거나 입양을 선택한 여성을 모성 포기 혹은 모성 없는 여성들이라고 폄하한 사실에 미혼모 운동 당사자로서 공식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택한 분들에게 미숙했던 점과 잘못한 부분에 크게 사과드린다.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이자 객석에선 박수로 답했다.

김도현 뿌리의집 대표는 정부 관계당국을 향해 “현미경을 갖고 인력과 예산과 모든 걸 움직여서 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정부에 한편으론 기대감을 가진다”면서도 “공무원이 현미경 말고 역사 전체를 읽어내면서 아동이익최우선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지 진심으로 고민해주길 바란다. 그 고민이 65년 입양 역사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스스로 규명해내는 자리로 이어지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뿌리의집, 해외입양인연대 등 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위기임신출산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임신초기부터 임산부가 보호받고 모든 아동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양육할 시스템 △미혼모·부 가족 자립을 위한 주거·양육·교육·일자리 보장 △원가족이 아동을 양육하도록 지원 강화와 아동의 친부모 알권리 보장 △해외입양 중단과 공적기관 소관으로 입양제도 재설계 △해외입양인 가족 재회 지원과 ‘한국인’ 개념 지평확장 위한 노력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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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9-05-10 11:22:08
김도현 뿌리의집 대표는 정부 관계당국을 향해 “현미경을 갖고 인력과 예산과 모든 걸 움직여서 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정부에 한편으론 기대감을 가진다” <<<이 기대감을 만드는 것도 국민의 참여다. 국민의 참여가 없으면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 예산의 최종결정은 국회이고, 국회의원을 뽑는 것은 국민이다. 참여하라. 그래야, 취약계층(누구나 사고, 병, 파산으로 취약계층이 될 수 있다)이 보호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