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독일 유력주간지 슈피겔 보도를 비중 있게 인용하며 지난 7일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독일서도 밑 빠진 독 비판”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으나 ‘탈원전 비판’이란 논조에 맞게 왜곡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독일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지만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슈피겔의 5월4일자 기사를 인용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슈피겔은 “시민들의 반대로 풍력발전기와 태양열발전소 건설이 지연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풍력·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효율로 인해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전기요금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에너지원 전환 사업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값비싼 프로젝트”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25%가량 상승했다”고 보도하며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OECD 35개국 가운데 덴마크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고 강조했다.

▲ 독일의 에너지전환을 다룬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표지.
▲ 독일의 에너지전환을 다룬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표지.
그러나 슈피겔 기사 전문을 확인한 결과 조선일보 기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를 비판하려는 왜곡 기사에 가까웠다. 슈피겔은 해당 기사에서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에너지전환 프로젝트가 시작됐으나 독일에 필요한 전기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석탄으로부터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원자력 발전 중단을 결정했지만 원전은 그대로 있었다”고 지적하며 “후쿠시마 이후 8년 동안 베를린에서는 아무도 에너지전환 프로젝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슈피겔은 “에너지 전환에 지난 5년간 최소 1600억 유로가 들었다. 국가가 수십억 달러를 낭비했다”며 “오늘날의 시민들은 이 프로젝트를 비싸고, 혼란스럽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슈피겔은 다시 원전을 가동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에너지전환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독일 정부를 비판했다. 슈피겔은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기로 했지만 동시에 석탄발전도 포기하지 못했다”고 독일 정부를 비판한 뒤 “한 시스템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프로젝트는 더 많은 비용과 함께 예측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슈피겔은 “녹색발전소 인프라가 급속히 확대되지 않으면 조만간 공급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2023년 1월이면 태양도 바람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향후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더 속도감있는 에너지 전환을 주문했다. 슈피겔은 “독일은 필요한 전기의 35%를 풍력·태양열·바이오매스 또는 물에서 얻는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작년에 처음으로 석탄과 같은 전력을 생산했다”고 전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건물, 산업, 교통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실질적인 에너지전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슈피겔은 해당 기사의 후반부에 에너지전환이 성공할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슈피겔은 “지난해 프랑스에서의 전국적 시위는 연료에 대한 높은 세금에서 촉발됐다. 이 때문에 베를린은 CO2 세금으로 인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시민과 기업에 환원하는 스위스모델을 선호한다. 그것이 20년 이상 이어진 에너지전환의 핵심 교훈”이라고 전한 뒤 “독일의 첨단 기술로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원으로부터 에너지 시스템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전환 시나리오에 따라 2050년까지 시스템전환에 따른 지출은 총 2조에서 3조4천억 유로가 될 것이라며 “통일만큼이나 정교한 프로젝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9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재 독일이 전력 부족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는 (기사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은 전력을 수출하는 나라”라고 반박하며 “전기요금 상승도 기사 내용에 없었고,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 문구도 없었다”며 조선일보 기사를 비판했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과 관련해선 “2010~2013년 전기요금은 상승세를 보이지만 2013년 이후 요금이 정체돼 2018년에는 하락했다”고 밝히며 “재생에너지가 세계시장 주력 에너지로 성장하면서 단가가 하락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슈피겔 기사 내용은 에너지전환의 선구자였던 독일이 늦게 출발한 다른 국가들이 에너지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에 비해 진전을 보여주지 못한 원인을 점검하는 기사”라며 “슈피겔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려는 정치적 의지의 부족을 지적했고, 재생에너지 확산이 느려지는 상황을 우려했다”고 지적한 뒤 조선일보 보도를 가리켜 “에너지전환을 위한 과제를 제시한 슈피겔 보도내용이 한국의 에너지전환을 발목 잡는 기사로 둔갑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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